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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성용의 '사라진' 차/독일 3인방 타도를 외친 르노 고급차의 아주 허망한 시도

바래미나 2018. 1. 31. 14:02

변성용의 '사라진' 차 변성용의 '사라진' 차

독일 3인방 타도를 외친 르노 고급차의 아주 허망한 시도

변성용 입력 2018.01.12 08:19 수정 2018.01.12 08:21


프랑스인 자존심에 깊은 상처 남긴 박스스타일 럭셔리카 벨사티스

[변성용의 사라진 차 이야기] 전 세계 고급차 시장은 독일 메이커들이 독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 아우디의 독일 3인방은 본고장인 유럽은 물론 미국과 아시아 시장에서도 고급차 시장의 선두를 달리고 있다. 같은 유럽의 재규어나 볼보도 이들의 아성을 넘보지 못하고 있으며, 미국 브랜드인 캐딜락이나 링컨은 물론 후발주자인 렉서스, 인피니티, 어큐라 등 일본 럭셔리카들도 북미 이외의 지역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이 시장에 뛰어든 현대차 제네시스 역시 북미 시장부터 노크 중인 브랜드일 뿐 유럽의 고급차 시장에는 명함도 못 내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들만큼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면서도 의외로 이 시장에서 맥을 못 추고 있는 나라가 있으니, 바로 프랑스다. 이탈리아의 경우 페라리와 마세라티라는 고급 스포츠 브랜드와 알파로메오가 명맥을 이어 오고 있지만, 유독 프랑스산 고급차의 명맥은 대가 끊긴 상태다. 미국에 판매를 하지 않는 점, 또 작고 실용적인 차를 좋아하는 국민성을 탓하는 건 쉽다. 그렇다고 메이커 입장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고급차 시장을 그냥 버려두는 것은 아까운 일이다.

사실 프랑스 자동차의 역사를 살펴보면 고급차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불모터스를 통해 국내에 수입되었던 푸조 607이 있었으며 시트로엥에서 독립한 DS 브랜드 역시 과거 고급차 DS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1970년대 말 기아자동차가 조립 생산했던 푸조 604는 현대의 그라나다를 능가하는 고급차로 기억되고 있다. 르노 또한 기함이자 고급차인 르노25를 만들었으며 1980년대 수입차 개방 초기에 쌍용을 통해 아주 극소수의 고객에게 판매된 적도 있다. 하지만 르노는 잘 알고 있었다. 현행 플랫폼으로 아무리 발버둥 쳐 봐야 번번이 독일차의 아성 앞에 좌절하고 말 것임을. 그들의 룰로 싸워봐야 질게 뻔하다면 아예 룰을 바꿔 보는 것은 어떨까? 1990년대 말, 21세기를 앞둔 상황에서 르노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고급차 시장을 만들어 버릴 것을 결심한다.

벨사티스의 발매 전까지 르노의 기함 위치였던 사프란, 모난데 없는 차였지만 독일차의 맹공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FF 세단일 뿐이였다

◆ 고급차를 위한 새로운 제안, 원박스 스타일

2001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르노의 새로운 고급차 벨사티스((Vel Satis)가 선보인다. 선대 모델인 르노25(1983~1992년)와 사프란(1992~2000년)도 결코 평범한 차들이 아니었지만 벨사티스는 전작들보다 훨씬 파격적인 모습이었다. 고급차임에도 세단이 아니라 원박스카 개념을 뒤섞은 2박스 해치백 스타일이었던 것. 당시 르노는 고급차 시장에서 독일 빅3와 직접 대결해서는 승산이 없다는 판단 아래 자사의 특기인 원박스 스타일을 과감하게 고급차에 도입한 것이었다.

사실 이러한 디자인의 고급차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니밴 시장을 개척한 에스파스(1984년~현재)라는 걸출한 모델도 있지만, 무엇보다 당시 르노 디자인팀을 이끌고 있었던 파트릭 르쿼망(Patrick Le Quement)의 역할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르노의 디자인 치프 패트릭 르쿼망. 2009년까지 장장 22년동안 르노의 디자인을 이끌었다

유럽 포드와 폭스바겐을 거쳐 1988년 르노 디자인센터로 자리를 옮긴 르쿼망은 당시 르노의 레이몽 레비(Raymond Levy) 회장으로부터 브랜드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스타일을 정립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르쿼망은 공간활용성이 좋은 미니밴 개념을 다양한 분야에 이용해 나갔다. 1992년 선보인 소형차 트윙고와 중형차 메가느의 플랫폼을 이용한 소형 미니밴 메가느 세닉(1996년), 3세대 에스파스(1996년), 소형 상용차 캉구(1997년) 등 당시 르노 라인업에는 MPV 색채가 물씬했으며, 이는 뚜렷한 프랑스식 감성으로 받아들여져 나름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1990년대 후반 르쿼망은 벨사티스(Vel Satis, 1998년)와 아방타임(Renault Avantime, 1999년), 콜레오스(Koleos, 2000년), 탈리스만(Talisman, 2001) 등 일련의 컨셉트 모델을 내놓으며 르노의 아이덴티티 확립에 나섰다. 르노는 당시 유럽 시장에서 원박스카의 판매가 늘어나고 있는 데 착안해 ‘원박스 개념의 새로운 고급차’ 전략을 펼쳤다. 럭셔리카에 대한 제안 모델이었던 벨사티스 컨셉트카(1998년)나 쿠페와 GT카 성격을 버무린 아방타임 컨셉트카(1999년) 모두 원박스 스타일을 가미한 파격적인 모델이었다.

르노의 원박스 기반 컨셉트카 시리즈, 맨 위부터 벨사티스, 아방타임, 콜레오스, 탈리스만. 아마 몇몇 귀에 익은 이름이 들린다면 당신은 아마도 르노 팬?

이때 나온 벨사티스 컨셉트는 르노에게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차였다. 르노 창업 100주년을 기념하는 1998년 자국의 대표 모터쇼인 파리모터쇼에서 선보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실 이 차야 말로 르노의 차세대 고급차를 위한 핵심을 담은 제안이었기 때문이다. 설마 하던 르노의 박스형 고급차는 2001년 제네바모터쇼에서 진짜로 데뷔한다. 먼저 선보인 컨셉트카와 기본적인 형태는 같았지만 컨셉트카의 2도어 쿠페 대신 4도어 2박스 해치백 스타일로 바뀌는 등 양산 과정에서 많이 다듬어졌다. 양끝에 몰린 헤드램프는 사이즈가 커졌고 빗살무늬의 그릴 위치도 램프 높이에 맞췄다. 앞창과 보닛에 어느 정도 경사를 주고 뒷부분은 테라스 해치백처럼 약간 튀어나오게 처리함으로써 지금까지의 고급차와 확연히 구분되는 새로운 형태가 되었다. 옆 창이 넓을 뿐 아니라 곡면으로 설계한 뒷유리 덕분에 시야는 매우 좋았다.

스타일은 새로웠지만 당시 르노의 새로운 디자인 경향을 충실하게 담고 있었다. 둘로 나뉜 빗살무늬 그릴과 그 중앙에 자리 잡은 큼지막한 엠블럼, 그리고 5각형 꼴의 헤드램프가 어우러진 앞모습은 그동안의 컨셉트카와도 맥이 닿았다. 랩어라운드 스타일의 뒤창과 테라스 해치백처럼 악간 튀어나온 테일게이트, 깔끔한 에지 라인을 따라 절묘하게 대칭구조를 이루는 면 처리 등도 두드러지는 특징이었다. 원박스 스타일의 접목 덕분에 전고는 사프란보다 무려 13cm나 높았으며 당연히 실내는 여유로운 공간을 자랑했다.

고급 세단이 주종인 보수적인 시장에서 르노의 원박스 디자인은 대단한 모험이었다. 하지만 신차 출시 당시 르쿼망은 이렇게 선언한다.

“인터내셔널리즘이 자동차의 디자인을 주도해서는 안 된다. 르노는 프랑스 차만의 내셔널리즘으로 다양성을 갖춰갈 것이며 고유 색깔을 지닌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이를테면 ‘가장 프랑스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임을 확신하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했다. 자신감 하나는 하늘을 찌를 기세인 프랑스인다운 발언이었지만, 결과가 나쁘면 이런 말은 허세가 되어 버린다.

2001년 데뷔한 벨 사티스. 동의하던 안하던, 이것이 당시 프랑스가 내 세운 고급차의 형태였다

◆ 파격적인 디자인과 비싼 값이 발목 붙잡아

고급차처럼 보수적인 시장에 원박스 디자인을 선보인다는 것 자체는 큰 모험일 수밖에 없었다. 벨사티스는 길이 4,860mm, 휠베이스 2,840mm에 높이는 당시 이 클래스의 평균보다 130mm나 큰 1,577mm로, 시트 위치도 100mm 높아 헤드룸이 넉넉하고 승하차가 편했다. 인테리어는 간결하고 부드러운 라인에 무늬목과 가죽으로 단장, 고급스럽게 완성했다. 코널리 가죽으로 마무리된 운전석은 4가지 위치 메모리가 가능하고 안전벨트는 시트 일체식으로 만들었다. 카드 모양의 전자키를 시프트 게이트 바로 앞에 있는 슬롯에 끼우고 시동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걸었다. 멀티미디어 시스템도 눈에 띄는 부분. 대시보드의 모니터 외에 센터 암레스트에 팝업식 6.5인치 모니터를 갖춰 뒷좌석에서 DVD를 통해 비디오 시청과 컴퓨터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각종 교통정보를 실시간으로 운전자에게 전해 주행코스 선택을 도와주는 지능형 카니넷, 내비게이션 시스템도 갖추었다.

인수한 닛산과 함께 개발한 첫 작품 V6 3.5L 엔진은 최고출력 235마력/6,000rpm, 최대토크 33.63kg·m/3,600rpm의 성능을 냈다. 가변식 흡기밸브 타이밍 기구를 갖추어 넓은 대역에서 토크가 나왔다. V6 3.0L의 디젤 엔진은 커먼레일 직분사 시스템과 알루미늄 DOHC 헤드, 가변식 터보(VNT)를 얹어 180마력의 최고출력을 냈다. 트랜스미션은 5단 AT 한 가지이고 수동처럼 사용할 수 있는 시퀀셜 모드가 달렸다. 그 밖에 2.0L 터보 가솔린 엔진과 4기통 2.0/2.2L 디젤 엔진도 선택할 수 있었다.

벨 사티스의 인테리어. 박스카의 형태를 가져온 만큼 실내는 넓고 쾌적했다

안전장비도 돋보였다. 기함의 이름에 걸맞게 벨사티스는 전자식 자세제어장치(ESP)와 제동력 배분장치, 듀얼 에어백과 사이드 에어백(4개), 커튼식 에어백(2개) 등을 갖추고 있었으며, 사이드 브레이크를 대체하는 자동 주차 브레이크는 시동을 끄면 자동으로 잠기고 시동을 걸면 저절로 풀려 사용하기 편리했다. 앞차의 속도를 감지해 자동으로 속도를 조절하는 레이더 내장 크루즈 컨트롤 등 최고급차에 어울리는 첨단 장비들을 넉넉히 갖추었다.

벨사티스는 고급차 시장에서 더 이상 밀려날 수 없다는 르노의 비장한 각오를 담고 있었으며, 혁신적인 요소를 과감하게 사용하고 이를 프랑스다운 미적 감각으로 포장해냈다. 하지만 이 같은 시도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원박스 스타일을 가미한 2박스 고급차는 모국인 프랑스에서조차 낯설었다. 이렇게 비싼 가격표를 달고 나온 르노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프랑스의 플래그십인 만큼 대통령의 의전차로 사용되기도 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 차를 꽤 좋아했다고

판매에 고전을 하던 벨사티스는 후계차 없이 2009년 단종됐다. 르노는 고급차의 부재를 2010년 르노삼성에서 생산하던 SM5를 래티튜드란 이름으로 들여와 판매하는 것으로 때웠지만, 사실은 벨사티스와 래티튜드가 사실 급이 다른 차임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벨사티스가 단종되던 해, 르노의 수장 카를로스 곤 회장은 르쿼망을 권고사직 시킨다. 이제 미쓰비시까지 집어 삼킨 뒤 세계 2위로 도약한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는는 더 이상 최고급 차도, 장르를 넘나드는 시도도 없이 오직 수익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소형차에만 집중하고 있다. 현재 르노의 플래그십 세단은 탈리스만(SM6). 푸조가 607을 단종시킨 후 508을 고급화한 것처럼 현재로서는 탈리스만(SM6)이 르노의 간판 세단 역할을 하고 있다. 21세기를 맞이하며 시도한 새로운 개념의 고급차는 실패했지만 시대가 흘러 BMW가 2009년 선보인 5시리즈 GT는 세단의 새로운 가지치기 모델로 시장에 안착했다. 벨사티스는 시대를 너무 앞서나간 차일까? 아니면 자국에서조차 외면당한 무리수였을까?

박스카 시장의 선구자로 르노에 남은 것은 에스파스 정도다. 정작 우리가 이 차를 만날 날이 올 수 있을까?

자동차 칼럼니스트 변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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