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자동차 관련-여러가지-

변성용의 '사라진' 차/일반도로용 F1 머신의 최후 그리고 부활의 날갯짓

바래미나 2018. 1. 31. 13:54

변성용의 '사라진' 차 변성용의 '사라진' 차

일반도로용 F1 머신의 최후 그리고 부활의 날갯짓

변성용 입력 2017.11.24 15:20 수정 2017.11.29 18:07 


야마하 OX99-11, 슈퍼카가 아닌 일반도로용 F1 머신 (2)


[변성용의 사라진 차 이야기] (1부에서 계속됩니다)

◆ 프로토타입 완성, 그리고 삐걱임

1년이라는 빠듯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개발은 순조롭게 진행된다. 3대의 프로토타입이 제작되었고, 영국 밀부룩의 테스트 트랙과 미라 풍동시험장을 오가며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도 진행된다. 트랙 테스트를 야밤에 할 정도로 철저한 보안 속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였지만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단 한 사람이 비밀리에 초대된다. 외부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르망 챔피언이자 저명한 평론가였던 폴 플레르가 이 차를 몰고 트랙을 달렸다. 수많은 차를 타며 글을 남긴 그 조차도 평생 이 차를 기억하며 이야기 했을 정도였다. 6000RPM을 넘어 10000RPM으로 치닫는 도로용 레이스카의 세계는 그의 표현에 따르면 ‘관능의 영역’에 한없이 가까웠다.

정중앙에 자리한 OX99-11의 운전석. 원래는 1인용으로 기획된 차였다. 당시 F1머신의 레이아웃이 거의 그대로 반영된 것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프로토타입이 마무리 되어갈 즈음, 야마하는 IAD와 결별을 선언한다. 양산모델이 갖추어야 할 세부사항에 대한 이견은 결국 시간과 비용에 대한 타협하기 힘든 입장 차이로 벌어지고 만다. ‘엔진의 라이프사이클’ 이라는 전제로 인해 데뷔시기를 늦출 수 없었던 야마하는 초기부터 프로젝트를 맡겼던 자회사 입실론 테크놀러지에게 직접 마무리를 담당할 것을 지시한다. 주어진 시간은 고작 6개월. 내장과 사양에 대한 수많은 조정과 타협이 이루어진 끝에 1992년, 최종 양산 모델이 선보인다. 최초의 일본제 슈퍼카, 지오토 카스피타가 지지부진하던 와중에 혜성같이 출현한 일본제 슈퍼카에게 세상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된다. 하지만 금방 발매로 이어질 것만 같던 차는 수차례의 연기 끝에 결국 양산 포기 선언으로 끝난다.

프로젝트 종료 뒤 남은 세대의 프로토타입은 현재도 최고속을 낼 수 있는 상태로 관리 중이며 야마하의 이벤트에도 종종 모습을 비춘다.

◆ OX99-11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이유

OX99-11이 결국 생산에 이르지 못한 이유로 일본의 버블경제 붕괴를 생각하기 쉽다. 확실히 일본의 경제는 엉망이 되어 버렸고, 당시 가격으로 80만 달러나 되는 슈퍼카를 사 줄 수요는 급격하게 사라진 상태였다. 그러나 돈 때문에 야마하가 이 차를 내던졌다는 것은 사실과는 좀 다르다. OX99-11의 양산포기가 선언된 뒤에도 야마하는 F1 엔진 서플라이어로서의 지위를 1996년까지 이어 나갔으며, 조단과 티렐 같은 명문팀에 무료로 엔진을 제공했다.

원래의 목표였던 ‘기술의 단련’을 투자와 함께 이어 나간 것이다. 이미 악기와 반도체, 모터사이클과 같은 사업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야마하에게, 슈퍼카 개발비가 당장의 시련으로 다가올 일은 아니었다. 세 차례나 연기를 이어가며 기회를 엿보던 야마하가 결국 포기한 것은 경쟁자 때문이였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막강한.

맥라렌 F1. 그대로 F1을 도로에 옮긴 차. 성능과 품질 모두 OX99-11을 뛰어넘고 있었다.

◆ 고든 머레이, 그리고 맥라렌 F1

‘현재까지 발매된 일반도로 주행용 시판차 중 가장 뛰어난 차.’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맥라렌 F1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수식어이다. 당대 최고의 F1머신 설계자로 이미 전설의 영역에 도달한 고든 머레이가 맥라렌과 손잡고 만든 최초의 일반 도로용 차. F1머신의 구성방식을 그대로 차용한 섀시, 정중앙에 달린 운전석, 종래의 방식을 깡그리 무시한 에어로 다이나믹스와 패키징은 야마하의 콘셉트와 대동소이했다.

그러나 0-100km/h 3.2초, 626마력의 출력과 386km/h의 최고속도는 OX99-11을 압도했고,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품질과 완성도에 이르면 아예 압살당할 수준이었다. 자신들의 결과물을 까마득하게 뛰어넘는 차의 출현을 애써 부정하던 야마하였지만, 실물을 마주하게 되자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F1을 일반도로에 옮기겠다는 그들의 이상은, 이미 타인에 의해 완벽하게 실현된 뒤였다.

1994년, 야마하는 그렇게 OX99-11을 버린다.

◆ 20년 뒤, 야마하의 파트너는

레이스와 슈퍼카 세계 양쪽에서 충분한 업적을 쌓은 고든 머레이는 2007년 자신의 회사 ‘고든 머레이 디자인’을 세우고 새로운 자동차 제작기술을 실체화 시킨다. 구조화된 강철 튜브로 차대를 만들고, 그 위에 플라스틱 패널을 붙이는 특유의 제작방식은 ‘아이스트림’ (iStream)이라 이름 붙여진다. 마치 맥라렌 F1처럼 중앙에 자리한 운전석이 특징인 차는 흔한 소재를 사용해 비싸지 않으면서도 강성이 높고, 초경량 제작이 가능하면서도 쉽게 형태를 변화시킬 수 있어 종래의 자동차 제조방식을 갈아엎는 혁신적인 공정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만들기에 따라서는 2인승 전기차도, 고성능 스포츠카도 될 수 있는 이 자유도 높은 플랫폼을 바탕으로 누구든 양산차를 만들 것을 그는 제안한다. 그의 손을 잡는 첫 파트너는 다름 아닌 야마하였다.

야마하 스포츠 라이드 컨셉트. 고든 머레이가 만든 카본 모노코크 기반의 스포츠카. 750kg의 초경량을 자랑한다.

2013년의 도쿄모터쇼, 야마하가 돌연 4륜 차량 한대를 내 놓는다. ‘모티브 시티 컨셉트’라 이름 붙인 소형 시티 커뮤터는 그 구성방식이 아이스트림을 그대로 가져왔으며, 실제로 고든 머레이와 협업을 통해 완성시킨 것이었다. 야마하가 고든 머레이와 함께 네 바퀴 차를 만들지도 모른다는 예상은 2년 뒤인 2015년 모터쇼에서 구체화 된다. 카본 파이버 기반의 신형 아이스트림 플랫폼을 사용한 스포츠카 ‘스포츠 라이드 컨셉트’의 발표와 함께 유럽에 건설 중인 자동차 공장이 발표된 것이다. 2년 뒤면 야마하의 첫 2인승 소형차가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며, 또다시 2년 뒤면 야마하 슈퍼바이크의 엔진을 장착한 고성능 스포츠카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시간은 가고, 사람의 관계도 변한다. 한 때 야마하에 드리웠던 그림자가 이제 미래를 비춰주는 횃불이 되는 것처럼 세상사 또한 돌고 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변성용

관련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