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못생긴 차 부동의 1위, 폰티악 아즈텍
변성용 입력 2018.01.03 13:36 수정 2018.01.04 17:31
GM을 최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폰티악 아즈텍
[변성용의 사라진 차 이야기] 이런 저런 파고를 거치는 와중에도 미국 최대의 자동차 회사 타이틀만큼은 굳건히 유지하고 있는 GM. 이들이 오늘날의 덩치를 만들어낸 것은 단순히 미국의 고도성장 때문만은 아니다. 2차 대전이 터지기 전까지 GM의 상태는 경쟁사끼리 먹고 먹히는 흡수 합병이 거듭된 끝에 만들어진 다수 브랜드의 동거상태 쪽에 가까웠다. 이렇게 합쳐진 브랜드들을 특성에 따라 다양한 위치에 포진시키는 것으로 GM은 스스로의 제국을 완성시켜 나갔다.
한 때는 열손가락을 세도 모자라던 GM 패밀리의 위세는 이제 전과는 다르다. 남은 것은 GMC와 쉐보레, 캐딜락과 더 이상 본국에서 차를 팔지 않는 ‘중국 전용’ 뷰익 정도다. 올즈모빌, 새턴, 허머, 그리고 폰티악이 모두 문을 닫고, 오펠과 복스홀은 팔려 나갔다. 한두 가지의 사건만으로 이들의 몰락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말년에 나온 상품을 보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차 랭킹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는 차, 폰티악 아즈텍은 그 좋은 예이다.
◆ 공룡 관료조직 GM
고용인원 20만명, 연간 생산량 1000만대. 세계 최대의 자동차 회사인 GM이 유명했던 것은 또 있었다. 수십 년 동안 독보적인 우위를 향유하며 성장한 회사는 그 덩치만큼이나 경직된 관료체계로 악명이 높았다. 업무가 세부적으로 나누면서, 책임과 한계도 덩달아 흩어졌으며, 뭔가를 결정하는 것은 위원회를 통해서나 가능해 졌다. 아무도 주도하지 않다 보니, 실패와 그에 따른 책임도 지지 않았다. 이런 조직에서 나오는 상품이라는 건 당연히 위험가능성을 최대한 낮추되 단가에 목을 맨 재미없는 물건이 되기 마련이다. 이렇게 마케팅이 ‘설계’하고 재무팀이 ‘만든’ 차들의 한복판에 일본차의 공습이 시작된 것이다. 한없이 얻어터지고 있던 1990년대 중반, 상황을 뒤집어 보고 싶었던 GM은 외부에서 전문가를 데려 온다.
존 스메일, 생활용품 전문회사 P&G를 최정상으로 올려놓은 뒤 GM의 회장으로 부임한 그가 착수한 것은 그가 해왔던 대로 상품 라인업을 ‘트렌디’하고 ‘섹시’하게 뒤집어엎는 것이었다. 모름지기 상품이라는 것은 당대의 유행에 발맞출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으니까. 당연하지만 트렌드에 부합하는 상품이 된다는 것은 이를 예측하고 미리 만들어야 함을 의미한다. 디자인과 개발에 3년은 족히 걸리는 자동차 개발이 최신 유행과 함께 달린다는 것은 원래부터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게다가 이런 속행 개발을 관료 시스템에 쩔어 있는 GM이 후다닥 해 치운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찌되었던 지시는 지시. 개발이 시작된다.
때는 20세기의 끝자락으로 달려가던 시대, 당시 가장 트렌디 했던 X세대를 타겟으로 한 차량을 디자인하라는 오더가 떨어진다. 프로젝트 매니저는 톰 피터스, 나중에 최고의 콜벳으로 추앙받게 되는 현 세대 C7을 빚어내는 재능 넘치는 인물이었지만, 이 때의 역할은 각 부서로 일감을 나눠주고 다시 모으는 운영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전달받은 디자인 요구사항은 지금까지의 GM을 생각하면 나름 파격적이긴 했다.
- GM의 보수적 디자인에서 완전히 탈피한 차일 것
- 호불호가 갈려도 상관없으니 대담한 시도를 담을 것
- X세대의 크로스오버를 지향하는 SUV일 것
- GTO 같은 폰티악의 역사적인 모델에 담긴 헤리티지를 살릴 것.
1999년 디트로이트 오토쇼에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컨셉트 형태로 선을 보인다. X세대를 지향한 폰티악 최초의 SUV이었지만 GM은 이 차가 아예 다른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길 원했다. SRV (Sports Recreational Vehicle)라는 새로운 장르를 표방한 차는 말 그대로 다용도 (Utility)를 놀이문화(Recreation)로 대체한 차였으며. 확실히 이제까지의 SUV와는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GTO에서 따 왔을 법한 강렬한 에어벤트를 넣은 차는 전고가 낮은 편이였으며, 다양한 좌석 배치가 가능해 적재 공간 활용능력도 뛰어났다. 무엇보다도 과격하다 싶을 정도로 각지고 날선 디자인은 GM의 차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호불호는 있을지언정 컨셉트카에 대한 높은 기대와 호평이 쏟아지자, GM은 곧장 양산모델 개발에 나선다.
◆ 그리고 본격적인 재앙이 시작되었다
개발과 함께 GM이 해오던 대로 예산 태클이 시작된다. 있는 플랫폼을 활용하여야 했지만, 당시 폰티액이 사용할 수 있던 ‘저렴한’ 가로배치 앞바퀴굴림 플랫폼이라곤 미니밴 몬타나가 유일했다. 중형 크로스오버에 쓰기에는 턱없이 덩치가 컸지만 예산에 맞추려면 이것밖에 없다는데 별 수가 없다. 디자인 팀은 엔지니어링의 요구에 따라 차량의 여기저기를 잡아 늘려 플랫폼에 끼워 맞춘다. 문제는 이게 분업형 디자인 작업에서 개별 팀 단위로 이루어 졌다는 것이다.
모두가 요청에 따라 자기 일을 한 것 뿐이겠지만, 차는 답이 없이 망가져 간다. 휠베이스가 길어지고 오버행이 늘어나면서 애초 의도했던 균형미는 박살이 나 버렸고, 타협을 거친 디테일은 모조리 따로 놀았다. 그 와중에도 GM은 비용절감을 위한 또다른 궁상짓을 감행한다. 플랫폼과 파워트레인을 공유하는 자매차 뷰익 랑데부를 위해, 도어패널과 유리창, 내장재까지 모조리 공유하라는 오더가 떨어진 것이다.
2000년, 멕시코 공장에서 선보인 아즈텍의 양산 버전은 이렇게 생겼다.
하지만 상품이 어찌 생겨먹었든 간에 GM은 이 차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았다. 어쨌든 GM이 만들어 본 적 없는 ‘혁신적인’ 모습의 차였으니까. GM이 예상한 연간 판매량은 무려 7만대. 그들은 GM의 시스템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정말로 신세대의 크로스오버로 통용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집단 최면이라 불러도 무방할 지경이다. 차를 받은 딜러들은 울상을 지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양극단을 달렸다. 좋아 죽거나 아니면 화를 내며 발길을 돌리거나. 고객을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정작 이 차를 산 사람들의 평가는 대단히 좋았다. 아즈텍은 그 자체로서는 품질에 문제없는 잘 만들어진 차였다. 미국의 소비자 품질 만족도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J.D파워의 2001년 평가에서 아즈텍은 SUV등급 최고 평가를 받았으며. 이는 다른 고객 평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취향 독특한 북미 소비자의 호응과 폭풍 할인 덕분에 아즈텍은 손익 분기점인 년 3만대가 조금 못되는 양을 팔며 힘겹게 라인업을 유지하다가 판매량이 곤두박질 치기 시작한 2005년 바로 단종된다. 6년간 총판매량은 무려 12만대나 되었지만, GM이 애초 세운 계획인 80만대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량이었다.
◆ 덕분에 GM의 세계화는 가속화
아즈텍은 GM의 실패한 제품 개발 시스템을 상징하는 차였다. 그나마 GM이 뛰어난 점이라면, 빨리 문제를 인정했고, 시스템을 바꾸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속도는 타이타닉이 방향전환을 하는 것만큼이나 느렸다. GM이 유럽과 오스트레일리아 심지어는 한국의 스튜디오에서 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한 배경에는 이런 속사정이 존재한다. GM이 원하던 ‘신속한 생산, 짧은 라이프 사이클, 좋은 품질과 저렴한 비용’은 본사가 아닌 해외의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졌다.
다시 뭔가를 만들어 본들 아즈텍이 재현되리라 생각한 폰티악은 스스로 차 만들기를 포기한 채, 해외 GM의 차를 가져다 파는 것으로 한동안 버틴다. 하지만 한 때 GM을 대표하던 젊고 스포티한 브랜드는 이미 중병에 걸려 있던 상황이었다. 무려 10조원(!)에 달하던 누적적자는 결국 서브프라임 모기시사태와 함께 터진다. GM은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돈 안 되는 브랜드를 싹 정리한다. 폰티악은 0순위 정리대상이였다.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의 주역 월터 화이트의 차로 아즈텍이 쓰인 것은 참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의 인생만큼이나 아즈텍은 기괴하며, 우울했으며 그와 주변 사람들을 모조리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변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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