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디의 결번이 된 A2,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변성용 입력 2017.12.18 13:48 수정 2017.12.22 15:20
왜 우리는 아우디 A2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을까
[변성용의 사라진 차 이야기] 아우디의 작명법은 꽤 단출하다. 고성능이나 스포츠 라인업을 제외한다면 A1에서 A8까치 덩치를 기준으로 줄을 서있는 모양새이며, 여기에 SUV 라인업 Q시리즈가 착실하게 그 숫자를 늘려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이들의 숫자를 보다 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A1도 A3도 잘만 돌아다니고 있지만 A2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유럽의 골목길을 걷다가 희한하게 생긴 아우디를 봤다는 목격담이 간간히 전해지긴 하지만 독일의 아우디 사이트에 가보아도 A2는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사실은 A1보다 먼저 나온 차
시작은 1997년의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였다. 아우디 부스에 Al2스터디라는 이름을 가진 차가 홀연히 출현한다. A2와 알루미늄의 중의적 의미를 담은 이름이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 차의 진짜 목적은 3리터카의 실제 구현 가능성에 있었으니까.
3리터카. 뜻은 의외로 간단하다. 3리터 미만의 연료로 100km를 달릴 수 있는 차를 뜻한다. 우리 식으로 환산하면 33.4km/L 이상의 연비를 가진 차를 부르는 것이기도 하다. 최신의 하이브리드도 내기 힘든 숫자를 20년 전에 내연기관만으로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대부분 자동차 회사는 포기한 영역이었지만, 한지붕 아래였던 폭스바겐과 아우디는 이 차를 현실로 만들기로 결심하고 실제로 이를 실행에 옮긴다. 고연비 디젤엔진과 알루미늄 경량화 기술에서 성과를 본 아우디는 이 기술을 극한으로 밀어 붙일 플랫폼을 구체화하고 있었다. Al2콘셉트는 이러한 선행개발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었으며, 2년 뒤에는 정말로 이 차를 시판하는 기염을 토한다.
◆ 최초의 시판 3리터카
목표인 3리터카를 실현하기 위해서 차는 가능한 한 작아야 했다. 4미터가 채 되지 않는 차는 현재의 슈퍼미니급 정도였지만, 그러면서도 5인승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루프라인이 높은 미니밴스러운 차가 형상화 된다. 디자인을 맡은 사람은 당시 아우디에서 근무하던 루크 동커볼케. 나중에 람보르기니와 벤틀리를 거쳐 현대 제네시스의 디자인을 총괄하게 될 약관 25세의 인물은 회사의 요구사항을 깔끔하게 담아낸 차를 완성시킨 뒤 그해의 유럽 디자이너상을 거머쥔다.
A2는 특이한 기술이 가득한 차이기도 했다. 모노코크 바디 대신 아우디가 개발한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 공법을 사용했다. 외피는 차체의 강성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는 대신 견고한 알루미늄 구조체가 차체를 떠받치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1.2리터 디젤부터 1.6리터 가솔린까지 여러 종류의 엔진이 준비 되었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주목을 끌어낸 것은 1.2 디젤 모델. 대부분의 부품을 알루미늄으로 도배하다시피 했지만 이 모델은 더 심하게 경량화에 집중했다. 알루미늄 파워트레인, 알루미늄 엔진 블록을 비롯하여 서스펜션과 댐퍼, 브레이크까지 알루미늄을 썼고, 가벼워진 덕분에 필요성이 낮아진 파워핸들은 아예 빼버렸다.
규정을 지키는 한도에서 가능한 얇게 만든 유리의 무게는 19kg에 불과했으며, 시트 뼈대에 플라스틱 샌드위치 소재를 사용하여 무게를 더 줄였다. 던롭과 브리지스톤이 A2를 위해 만든 145/80 R14 타이어는 가볍고 저항이 낮아 연료 절약에 도움을 주었다. 집요하게 감량에 매달린 결과 덜어낸 무게는 135kg, 최종적으로 달성한 공차중량은 895kg에 불과했다. 휠과 차체의 공기저항을 줄인 덕분에 공기저항계수(Cd)는 0.25를 달성했다. 양산차로서는 기록적인 수치였다.
이 차를 가지고 도전한 유럽 공식 연비 시험에서 A2는 100km를 3L의 연료로 달린 최초의 4도어 세단(또는 5도어 해치백)으로 인증받기에 이른다. 단 연비 향상에 모든 것을 집중시킨 차였던 만큼, 높은 성능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3기통 터보 엔진은 4천rpm에서 61마력을 내고, 최대토크는 14.3kg·m에 불과했다. 시속 100km에 도달하는 데 14.9초가 걸렸지만, 최고시속은 168km에 달했다. 연료절약을 생각하지 않고 마음대로 달려도 연비는 25km/L 미만으로는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 에코 모드에서는 회전수가 3000rpm을 넘는 경우가 드물었고 차는 매우 조용했다.
◆ 의도는 좋았지만, 문제는 가격
당연하게도 이렇게 첨단 기술과 알루미늄으로 도배를 한 차는 ‘비쌌다’. A2는 전용라인에서 전용 부품만으로 만들어야 했고, 이는 차량 가격 상승에 더욱 부채질을 했다. A2의 당시 가격은 1만9,000유로. 경쟁 모델과 비교하면 20%는 높았다. 아무도 3리터카를 만들 엄두조차 내지 못할 때 실제로 차를 발매한 아우디의 포부는 좋았다. 하지만 고객은 기름 아끼자고 당장에 비싼 차를 사기 보다는 연비는 좀 나쁘더라도 구입비용이 저렴한 차를 원했다.
물량을 늘리려면 북미와 다른 시장에 진출해야 했지만, 그 쪽은 장기인 디젤엔진이 맥을 못 쓰는 지역. 휘발유 모델은 목표 연비를 달성하기 위해 오직 수동변속기 밖에 준비하지 않았다. 판매가 줄어들 것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첨단 공법의 알루미늄 바디는 서비스 망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야만 했다. 유럽 지역을 떠나 볼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한 채 A2의 생명은 그렇게 끝나 버린다.
생산이 최종 종료된 2005년까지 A2는 5년간 17만대 가량 팔렸다. 실패했다고 보기에는 많은 수량 같지만, 이것은 같은 기간 경쟁자 메르세데스 벤츠 A클래스가 100만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릴 동안 나온 숫자다. 이후 6년간 A2는 아우디의 목록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 희망고문-A2 EV
그러던 2011년, A2의 이름을 내세운 컨셉트카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미 시대는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는 내연기관 대신 배터리와 모터를 가지고 친환경에 도전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BMW가 i3로 프리미엄 전기차 시장을 선언하자 이에 질세라 아우디도 A2 카드를 다시 꺼내 든다. i3의 적수를 자임한 만큼 신형 A2 또한 모터와 배터리를 품고 있었다. 114마력의 전기 모터가 앞바퀴를 구동하고 4시간 충전으로 200km의 항속 거리를 가능하게 하는 차는 당장에 생산을 시작해도 좋을 수준의 현실성을 갖추고 있었다. 우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의 형태로 시작한 뒤, 2015년 완전한 전기차 사양을 내 보낼 계획이 수립된다. 발전용 소형 엔진을 실은 A1과 A3전기차를 가지고서 전세계를 돌며 테스트까지 마쳤다.
하지만 아우디의 예상과는 다르게 초기 EV시장의 팽창은 매우 느리게 진행된다. 최초의 순수전기차를 표방한 닛산 리프의 매출이 목표치의 1/3에 머무르자 신형 A2는 결국 폐기처분 되어버린다. 아우디가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위주의 라인업으로 선회하게 되는 것은 한참 뒤의 일로, 디젤 스캔들로 거의 죽다가 살아난 후였다.
내년이면 아우디의 첫 중형급 전기차 E트론이 데뷔하며 바로 스포츠 모델과 ‘콤팩트 전기차’가 뒤를 이을 것이다. 아우디의 결번이 메워지는 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변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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