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보기엔 에쿠스와 견줘도 모자람 없던 스테이츠맨
변성용 입력 2017.11.03 08:02 수정 2017.11.03 08:25
당대의 어떤 국산 차보다도 길었던 GM대우 스테이츠맨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그냥 미국과 같은 차를 만들었으면 될 일인데, 어째서 본국과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서 GM과 포드의 대리전이 이어져 온 것일까? 미국과 다른 스티어링 휠 방향, 광활한 사막 ‘아웃백’으로 대변되는 거친 주행환경이 직접 개발의 필요성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2차 세계대전이었다. 전쟁 기간 동안 일본의 해상 봉쇄 걱정에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이었던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외부세계와 단절되더라도 자동차만큼은 직접 만들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곤란해 하는 자동차 회사들에게는 막무가내로 등을 떠미는 대신 막대한 정부 지원금을 쥐어주며 개발을 독려했다. 1948년, 최초의 고유모델 48-215를 필두로 오스트레일리아 전용 모델은 착실하게 그 숫자를 늘려 간다. 전후 호황기를 지난 1970년대 드디어 양사를 대표하는 세단 홀덴 코모도어(Commodore)와 포드 팰컨(Falcon)이 나온다. 오직 오스트레일리아 시장에서만 만들고 팔렸던 이들 고유모델은 이후 ‘5미터를 넘나드는 넉넉한 차체’와 ‘6~8기통 엔진을 탑재한 후륜구동’이라는 정형화된 플랫폼으로 자리 잡게 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라이프스타일을 대표하는 아이콘과 같았던 이들 두 차는 라이벌로 자리를 잡았음은 물론, 왜건과 쿠페, 트럭 같은 오만가지 파생형을 통해 영역을 넓혀 갔다. 고성능 엔진을 단 하이퍼 스포츠 모델도, 휠베이스를 늘리고 호화 옵션으로 치장한 럭셔리 세단도 빠질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중 두 차를 만났던 적이 있다. ◆ 홀덴, GM의 글로벌 전략기지 내수시장과 정부 보조금을 바탕으로 성장을 이어가던 오스트레일리아 자동차 산업은 1990년대 말 50만대를 고비로 하락세로 치닫기 시작한다. 오스트레일리아 달러의 강세, 임금 상승에 관세율 인하로 해외 모델이 경쟁력을 얻기 시작하면서 내수모델의 판매량은 아래로 쳐지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오스트레일리아의 개발조직과 공장을 놀릴 수는 없었던 GM은 홀덴에 나름의 역할을 부여하기에 이른다. GM의 중대형차 개발과 생산의 전진기지 역할을 맡긴 것이다. 이것은 고배기량 대형차에 특화되어 있던 홀덴의 시스템에 가장 적합한 역할이기도 했다. 부랴부랴 내수 모델을 개비한 폰티악과 뷰익의 새 모델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2002년, GM의 일원으로 다시 영업을 개시한 GM대우도 본사 방침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라인업을 채울 플래그십 세단에 대한 요구가 분출되자 GM대우 앞에 던져진 것은 홀덴이 만드는 플래그십 모델이었다. ◆ GM대우가 받은 오스트레일리아산 ‘대형차’ 당시 홀덴은 뒷바퀴굴림 플랫폼 하나로 VZ 코모도어(Commodore), 벌리나(Berlina), 칼라이스 (Calais)에 휠베이스가 더 긴 모델로 WL 스테이츠맨(Statesman)과 카프리스(Caprice)에 이르는 다양한 가지치기 모델을 만들고 있었다. 언뜻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세분화된 모델정책은 사실은 어떻게 든 시장을 넓혀 보려던 고육지책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스테이츠맨과 카프리스 또한 완전히 동일한 차체를 가진 최고급 쌍둥이 차였지만, 컴포트와 스포츠를 테마로 그릴의 형태나 내장재, 그리고 댐퍼 세팅을 달리한 미묘한 차이에 머물렀다. 한국에 들어온 모델은 외형과 이름은 좀 더 권위적인 스테이츠맨을 가져 왔지만, 구성과 장비는 아주 약간 더 윗급이었던 카프리스를 섞은, 나름의 현지화 작업의 결과였다. 파워트레인도 마찬가지였다. 오스트레일리아 내수용 스테이츠맨은 V6 3.6L 258마력과 V8 5.7L 320마력 엔진을 얹었지만, 국내에 수입되는 모델은 3.6L 258마력 엔진이 최상급으로 여기에 더 작은 2.8L 210마력 엔진을 추가했다. 실린더 블록과 헤드를 모두 알루미늄으로 만든 GM V6 알로이텍 엔진들로, 둘 다 패들 시프트를 지원하는 5L40 5단 자동 변속기와 조합해 뒷바퀴를 굴렸다. 한국에 그 모습을 드러낸 스테이츠맨은 리무진을 제외하면 당대의 어떤 국산 차보다도 길었다. 5195×1845×1445mm의 덩치는 현대 에쿠스보다 75mm, 쌍용 체어맨보다 60mm가 길었고, 너비는 체어맨보다는 20mm 넓지만 에쿠스보다는 25mm 좁았다. 높이는 에쿠스보다 35mm, 체어맨보다 20mm 낮았다. 2940mm의 압도적인 휠베이스는 에쿠스보다 100mm, 체어맨보다 40mm 길어 다리를 뻗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같은 GM의 자회사였던 오펠과 사브의 손길이 닿은 내장은 디자인과 품질감에서 충분한 고급차의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GM대우의 기함 역할을 하기에는 모자람이 없는 차처럼 보였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스테이츠맨은 처음부터 오스트레일리아 시장에서도 기사가 딸리는 쇼퍼 드리븐 (chauffeur driven) 시장에 특화된 차였다. 크고 안락한 뒷좌석 공간에 앉아서 운전은 전문기사에게 맞기면 그만인 차 말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 차의 주소비층은 국산 대형차를 직접 운전하는 사람들이었다. 한국시장을 위해 GM대우가 요구한 오너 드라이버 위주의 요구사항들은 죄다 묵살됐다. 센터콘솔의 터치스크린 LCD 모니터가 빠지면서 내비나 DMB는 물론 후방 카메라도 몽땅 삭제된다. (나중에 재털이 자리에 우겨 넣은 사제 내비는 잊는 게 낫다) 사이드 미러는 전동을 지원하지 않아 손으로 접어야 헸고, 오디오를 켜면 솟아나오는 고색창연한 안테나는 실소를 자아낼 지경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조작 방법도 가득했다. 글로브박스 속에 숨은 트렁크 버튼, 변속 시프트 뒤에 모아 놓은 창문 스위치, 좌핸들 차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오른쪽에 자리한 파킹 브레이크 레버는 ‘원래 그렇다는’ 이유로 그대로 달려 나왔다. 최고급 세단을 사러 온 사람들에게 ‘주는 대로 타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배포 하나는 인정해야 하겠지만, 당연히 고객은 이를 곱게 보지 않았다. ◆ 원래 그렇다는 말은 그냥 안 하는 게 낫다 스테이츠맨은 2005년 6월부터 2007년 3월까지 1년 9개월간 팔렸으며, 최종 판매량은 1,976대였다. 당시 경쟁모델이 연간 1만5,000대 가량을 팔렸던 것을 생각하면 처참한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착 홀덴의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스테이츠맨은 오스트레일리아 내수시장에서도 한해 평균 4천여대 가량 팔리는 차종이었지만, 전체 해외 시장의 밀어내기 덕분에 수출 생산량은 내수의 7배가 넘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에 고무된 홀덴은 9000억원에 달하는 돈을 들여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 기반의 스테이츠맨/카프리스를 2006년 선보인다. 내수시장만 보고 만든 전작에 비해 신형 제타 플랫폼을 기반으로 만든 차는 확실히 해외시장의 불만을 껴안기 위한 노력이 가미된 모습을 나타냈다. 플래그십 시장을 선뜻 포기할 수 없었던 GM 코리아 또한 다시 한 번 홀덴의 차를 가지고 들어온다. 2008년 10월, 풀모델 체인지된 카프리스사양의 차가 ‘베리타스’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발매된다. 전작의 단점을 개선하고 장점은 더욱 강화한 차였지만, 이미 스테이츠맨을 경험했던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전작보다 아주 조금 나아진 2,128대의 성적표를 들고 베리타스 또한 1년 6개월 만에 판매를 중단한다. 이 차를 마지막으로 또 다른 홀덴이 한국을 찾을 일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홀덴은 더 이상 GM의 대형차 전진기지가 아니었다. ◆ 오스트레일리아의 자동차, 막을 내리다 타협한 현지화 끝에 차를 밀어낸 해외시장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여기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구석에 몰린 GM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홀덴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다. 홀덴의 주요 매출처였던 폰티액이 문을 닫고 뷰익이 미국에서 철수한 뒤, 쉐보레 배지를 단 홀덴의 후륜구동 세단들은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하고 겉돌기만 했다. 해외시장에서 고전하는 동안 오스트레일리아의 내수판매도 바닥을 친다. 한 때 50만대를 넘던 연간 생산량은 17만대 수준까지 떨어져 버린다. 오스트레일리아 달러 강세에 생산단가마저 치솟으면서 홀덴이 만든 차는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었다. 독자 자동차 산업의 명분도 사라진 지 오래, 이제 정부 보조금은 자동차 산업을 지탱할 마지막 산소호흡기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막대한 재정지출이 국가 부담이 된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보조금을 줄이기 위한 협상에 나선다.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협상은 결렬되고 결국 보조금 지급 중단이 선언된다. 오스트레일리아용 차량을 제작하던 세 회사, 홀덴과 포드, 그리고 토요타가 오스트레일리아 생산 철수를 선언한다. 2016년 포드는 6억 오스트레일리아 달러(한화 약 5,200억원)의 적자를 안은 채, 오스트레일리아의 개발 생산 조직을 모두 폐쇄하며, 해외 생산 모델을 수입해 파는 판매법인으로 전환한다. 홀덴 또한 포드의 전철을 피할 수는 없었다. 결국 지난달 20일 홀덴의 엘리자베스 공장이 문을 닫는다. 90년간 이어졌던 오스트레일리아의 자동차 생산 역사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라인을 빠져나간 마지막 생산 물량 중에는 은색 카프리스도 섞여 있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변성용
GM대우 스테이츠맨-오스트레일리아 자동차의 끝
[변성용의 사라진 차 이야기] 홀덴(Holden) 그리고 포드 오스트레일리아(Ford Australia) 둘 다 오스트레일리아를 대표하는 자동차 회사다. 홀덴은 그렇다 치더라도, 미국회사 포드를 ‘호주’ 회사로 쳐 준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포드가 오스트레일리아 공장을 지은 것이 1928년. 홀덴이 GM 산하로 편입된 것이 1931년의 일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이 탈 차를 직접 개발하고 만든 시간만 90여년이다. 미국의 모 기업과 독립된 회사로 여겨지기엔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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