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하가 꿈꾼 일반인용 최종병기 슈퍼카 OX99-11
변성용 입력 2017.11.20 13:48 수정 2017.11.23 13
야마하 OX99-11, 슈퍼카가 아닌 일반도로용 F1 머신 (1)
[변성용의 사라진 차 이야기] 문어발처럼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것이 대기업의 특징이기는 하지만, 야마하라는 회사의 족적은 들여다볼수록 특이한 점이 있다. 악기, 반도체, 스포츠와 모터사이클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는 이 회사의 주력 사업분야는 문어발식 확장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알고 보면 미묘한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 전자악기를 만들기 위해 사운드 칩셋을 직접 설계하기 시작하고, 악기를 만들기 위해 다루기 시작한 유리섬유와 복합소재 기술을 활용해 골프채와 건축 내장재를 만든 것은 이미 알려진 이야기다.
이는 엔진도 예외가 아니었다. 때는 2차 대전기, 군부의 명령에 따라 피아노를 만들던 공장에서 프로펠러를 깎아 공급하기 시작했고, 이는 곧 금속악기의 가공장비를 활용한 엔진 부품으로 이어졌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폐허 속에서 재건을 도모해야 했던 그들은 대전기 키워냈던 능력을 활용한 이동수단을 만들 것을 결심한다.사람과 물건을 실어나르는데 제격이였던 소형 모터사이클은 곧 큰 인기를 얻으며 팔려 나가기 시작한다.잘 만들어진 엔진은 원동기 시장에서도 각광을 받았다.
농업과 수산은 물론 산업 전반에 사용되기 시작한 야마하의 엔진은 결국 자동차 분야까지 진출하기에 이른다. 모터사이클을 통해 숙성된 고성능 엔진 기술은 숱한 양산 스포츠모델에서 빛을 발했다. 일본 최고의 클래식이라는 토요타 2000GT의 엔진을 시작으로, 명기 3S-GTE를 따라 현재에 이르는 토요타 스포츠 엔진의 역사에서 야마하는 그 일부를 맡거나 아예 개발과 생산을 모두 담당하는 식으로 개입했다.
폭발적인 사운드가 매력적인 렉서스의 자연흡기 V8, V10 엔진까지도 이 회사의 손길이 닿아 있다는 것은 업계에서는 공공연한 비밀. 포드의 고성능 디비전인 SHO와 볼보도 이들의 V8엔진을 사용했다. 구색을 갖추어야 하지만 막대한 투자비가 부담스러운 자동차 회사들에게 설계와 생산을 통으로 맡아 줄 야마하는 여전히 매력적인 존재다. 4륜차는 만들지 않는 야마하가 4륜차용 엔진 기술을 확보해 가는 과정은 과연 정석의 방법이라 할 수 있었다.모터스포츠,그 중에서도 포뮬러 레이스에 출전하는 방법을 택했다.
◆ 모터스포츠를 통한 야마하의 도전
1984년, 야마하는 4륜 레이스 진출을 선언한다. 양산 자동차를 만들지 않는 야마하의 입장에서 레이스 진출은 딱히 매출이나 마케팅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지만, 야마하의 관점에서 볼 때, 모터스포츠는 선행개발 엔진 연구기지에 가까웠다.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실증한 뒤 다시 양산엔진에 투입하는 선순환 구조를 바란 것이다. 전용 머신들이 각축을 벌이는 포뮬러야말로 이들의 이상에 딱 부합하는 장소였다. 특이하게도 4륜 프로젝트는 모터사이클 사업부가 아닌, 요트와 테니스 라켓을 만들던 스포츠 사업부에서 전적으로 담당했다.
레이스 프로그램을 관장할 별도 법인 입실론 테크놀러지가 세워진 곳은 영국의 밀톤 케인즈. 지금도 대부분의 프로 레이스팀이 베이스로 삼고 있는 레이스카의 산실 같은 곳에서 엔진을 개발할 인력과 시스템이 구축되기 시작한다. 1985년, 최초의 F2용 엔진 OX66을 선보인 뒤, 가변 실린더밸브 기술을 탑재한 OX77로 일본 F3000을 제패한 야마하는 최종 종착지인 F1으로 향한다.
최초의 엔진이었던 V10엔진이 신뢰성 문제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자, 야마하는 완전히 새로운 신형 V12엔진, OX99의 개발에 나서게 된다. 궁극의 F1 엔진 완성이 목전에 다다르게 되자, 야마하는 오랫동안 생각해 왔던 일을 직접 실천에 옮길 것을 결심한다. 그것은 F1의 엔진과 매커니즘을 그대로 품은 채 일반도로를 달리는 슈퍼카였다.
◆ F1을 일반도로로 옮기다
그러나 완성차를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야마하로서는 실제 생산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 줄 전문 회사가 필요했다. 독일 업체 한 곳과 개발을 시작했지만, 만들어져 온 프로토타입은 알루미늄 섀시 베이스의 매우 전통적인 스포츠카였다. F1을 도로에 옮긴다는 이상과는 거리가 먼 결과물에 크게 실망한 야마하는 새로운 회사를 물색하기 시작한다.
최종적으로 손을 잡은 곳은 영국의 엔지니어링 컨설팅 회사인 IAD. 양산 자동차 회사와 협업에 도가 튼 이 회사는, 스타일링부터 차체 설계는 물론 패키징까지 광범위한 부분에서 자동차 회사와 협조하고 있었으며, 마쓰다와 포드, 벤틀리의 차를 성공적으로 개발해 준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IAD가 선택된 것은 말이 통한다는 점. IAD의 섀시 엔지니어링 치프인 데이브 설리번은 스스로가 포뮬러 레이스를 즐기는 레이스팬이었다. 야마하의 취지를 빠르게 이해하고 이를 기술자의 언어로 바꾸는 재주를 가진 사람 덕분에 개발 컨셉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시작한다.
-엔진: 야마하 3.5리터 V12. 최고 회전수10,000RPM로 제한 (F1의 600마력 대신 400마력으로 디튠)
-섀시: 풀 카본 파이버 욕조 (bath tub) 구조
-바디: 핸드 메이드 알루미늄 패널
-프론트 서스펜션: 더블위시본. 푸시로드 타입 인보드 서스펜션
-리어 서스펜션: 더블위시본 푸시로드 타입 인보드 서스펜션. 기어박스에 직결
-기어박스: FF디벨롭먼트제 F1용 6단 수동 변속기
-브레이크: AP 레이싱제 F1용 6피스톤 앞 캘리퍼, 4피스턴 뒤 캘리퍼, 주조 디스크
-인테리어: 2인승 탠덤 방식. 최소 내장
이 정도의 스펙만 봐도 그 결과물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차는 당시 F1의 기술적 특징과 구성 요소를 그대로 옮겨 온 뒤 거기에 카울을 씌운 포뮬러 머신에 한없이 가까운 물건이었다. 박스카의 형식을 차용한 일반적인(?) 슈퍼카의 방식을 깡그리 무시한 과격하기 짝이 없는 구성방식이었다. 카본으로 섀시를 만든 뒤 F1의 인보드 서스펜션을 이식하고, 엔진은 리어 벌크헤드에 직결한 뒤 뒷 서스펜션을 기어박스에 그대로 매달아 버렸다.
F1의 골조를 그대로 유지하다 보니 운전석은 정 가운데에 있으며, 2명의 탑승 조건을 만족 시키기 위해 협소하게나마 운전석 바로 뒤에 조수석을 달아 놓은 것이 다였다. 내부는 운전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만 달아 놓았을 뿐, 일체의 편의 시설을 무시해 버렸다.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차의 이름도 정해진다. OX99-11라는 팩스머신 같은 이름은 그냥 엔진의 이름에 1+1의 탠덤 시트 구조를 덧붙인 것이었다. 1991년, 신형 V12 엔진의 F1 투입이 확정되면서 프로토 타입 개발까지 단 12개월만이 주어진다. 엔진의 라이프 사이클 안에 차가 나올 것을 기대한 야먀하의 독촉 때문이었다. 부지런히 차량이 실체를 갖추는 중에 디자인도 함께 진행된다. 아무리F1의 메커니즘을 차용했다 해도 이 차는 엄연한 공공도로 주행용 차.안전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프론트 오버행에 충돌 방지 구조물이 자리해야 하지만,그러면F1머신의 다운포스를 만들어내 줄 프론트 윙을 달 방법이 없어진다.
일본의 레이스카 전문 디자이너였던 유라 타쿠야가 고심 끝에 만들어 낸 방식은 앞부분 자체가 차를 아래로 눌러 주도록 에어로 터널 구조를 집어넣는 것이었다. 윙 립 상하면을 흐르는 공기의 속도로 인한 압력차가 바로 접지력으로 연결되는 구조는 효과는 좋았지만 확실하게 이질적이었다. 전투기를 연상시키는 탠덤시트 구조의 콕핏, 마치 전투기처럼 한쪽으로 열리는 캐노피. 찬 공기를 빨아들일 공기 흡입구가 루프에 배치된 차는 안 그래도 전위적인 차의 인상을 더 유별나게 만들어 버린다. 1992년, 드디어 OX99-11이 실체를 드러낼 준비를 마친다.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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