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봐도 제 정신이 아닌 듯한 스포츠 경차 3인방
변성용 입력 2018.01.31 08:19 수정 2018.01.31 08:21
경차로 슈퍼카라니, 오토잠 'AZ-1' (1)
[변성용의 사라진 차 이야기] 버블경제 시절, 마쓰다는 5채널 전략이라는 것을 쓴 적이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브랜드를 다섯 가지로 나누고, 각각의 대리점을 죄다 따로 돌렸다는 이야기다. 원래의 마쓰다에 더해, 고급차와 고성능차만 다루는 앙피니, 유럽차의 이미지를 강조한 유노스, 소형차와 경차를 취급하는 오토잠, 제휴선인 포드의 차를 파는 오토라마까지 다섯 개의 브랜드가 한 지붕 아래에서 복닥거리며 지낸 것이다. 렉서스처럼 ‘본가’의 존재를 숨기기 위한 해외 진출용 브랜딩이였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마쓰다를 뺀 나머지는 철저히 내수용 브랜드에 머물렀으니까.
왜 그랬냐고? 그냥 토요타를 따라한 것이다. 토요타, 토요펫, 카로라, 오토, 비스타의 다섯 개 채널을 통해 차를 돌리던 ‘마음 속’ 경쟁자의 모습을 본 마쓰다는, 이걸 그대로 따라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덩치를 키우고 싶었던 나머지 벌인 일이였지만, 열 배가 넘는 규모의 회사를 따라 하려다 보면 탈이 나는 건 당연하다. 1996년 경영악화로 포드에 매각된 뒤 완전히 자회사 신세로 전락한 마쓰다는 한동안 포드의 ‘개발 셔틀’로 지내야 했다. 오늘의 이야기는 오토잠, 그러니까 한때 마쓰다의 경차 브랜드였던 곳이 어디까지 달려가 버렸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 독자적 세계를 만든 일본 경차
일본의 독자적인 규격인 경자동차(輕自動車, K-car)의 다양성은 익히 알려진 바다. 내수 시장의 40%는 늘 경차가 끌고 가고 있다 보니 어떤 회사도 수익이 적다고 무시하지 않는다. 법규에 맞추다 보니 다른 시장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희한한 차들로 끝없는 가능성을 추구한다. 한편으로는 제조사들끼리 돌려 막기도 활발하다. 직접 개발하기엔 비용 대비 수익이 안 나온다 싶을 때는, 처음부터 같이 쓰기로 약정을 하고 개발비를 분담하기도 하며 그냥 차를 가져다 조금 손본 뒤 파는 뱃지 엔지니어링도 서슴없이 이루어진다. 미쓰비시의 경차가 닛산 브랜드로 팔리고, 분명 다이하츠인데 스바루 뱃지를 달고 다니는 경우가 이 때문이다. 마쓰다의 빈칸 메우기 파트너는 스즈키였다. 오토잠이 팔던 차 대부분이 스즈키의 OEM이었으며 덕분에 생산기술과 부품에 대한 양사의 교류는 원활했다. 심지어는 개발하다 만 차를 통째로 넘겨받는 일도 있었다.
1985년 도쿄 모터쇼에 스즈키는 RS/1 이란 컨셉트카를 선보인다. 토요타의 MR2를 시작으로 요동치기 시작한 양산 미드십 스포츠카 시장의 한가운데 스즈키 컬터스의 엔진과 변속기를 그대로 중앙에 가로 배치한 소형 미드십 스포츠카는 그냥 컨셉트로 끝나기에는 아까운 차였다. 2년 뒤 같은 장소에서 스즈키의 컨셉트는 RS/3라는 이름으로 한층 업데이트 되어 모습을 드러낸다. 당장 양산해도 좋을 듯한 디자인 속에는 일본의 안전규정과 충돌법규 준수 같은 보다 현실적인 내용이 가득했다. 양산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는 명백한 메시지였다. 또 하나의 소형 미드십 스포츠카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다.
하지만 스즈키는 이 차를 만들지 않는다. 차기 스포츠 모델을 위한 사내의 품평회에서 최종적으로 선택된 것은, 미드십이 아닌 전통적인 FR 구동계의 로드스터 모델이였다. 나중에 ‘카푸치노’라는 이름으로 발매될 바로 그 차 말이다. 이대로 사장되어 버리나 싶었던 MR 프로젝트는 뜻밖의 임자를 만난다.
◆ 스즈키가 버린 차, 마쓰다에서 부활
당시 마쓰다의 디자인 수장이던 히라이 토시히코는 협력사 스즈키의 RS프로젝트를 눈여겨 보고 있었다. 2인승 로드스터 시장을 부활시킨 주역으로 칭송받는 MX-5(북미명 미아타) 탄생의 장본인이기도 했던 그에게 RS/3는 경량 스포츠카로서 갖추어야 할 또다른 이상이 구체화된 차였다. 이대로 사장되기에는 아까운 프로젝트라 생각한 그는 스즈키와 본사 사람들을 열심히 설득해 미완의 프로젝트를 가져오는데 성공한다. 한 번도 만들어본 적 없는 실험적인 차에 배정된 예산과 인력은 빠듯했지만, 꺼져가는 불씨를 살린 것만 해도 어딘가.
애초부터 경차의 규정 내에서 만들어지는 차였기 때문에 차의 크기와 엔진은 이미 정해진 상태. 당시 경차의 기준인 전장 3.2m, 엔진 배기량 550cc에 맞추어 개발이 진행된다. 하지만 신차를 만드는 방식은 기존의 대량양산방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벌집모양의 알루미늄 벌크헤드를 중심으로 스페이스 프레임을 짜 넣고, 파이버 글래스의 외피를 씌운 방식은 크기만 작을 뿐 그냥 레이스카의 구조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였다. 응력을 받을 필요가 없는 외부 패널은 볼트로 쉽게 붙이고 뗄 수 있어 프레임을 유지하는 선에서는 마음대로 바꿔 끼워 디자인을 바꿔버리는 것도 가능하다.
장점을 활용해 세 가지 형태의 디자인이 제안되었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그냥 세 가지를 다 만들어 보기로 한다. 과연 버블의 시대, 명분만 있다면 이런 저런 시도가 자유롭게 통용되었다. 마쓰다 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들 또한 여러 가지 실험적인 시도가 거침없이 이루어지던 일본 자동차 업계의 황금기이기도 했다. 1989년, 브랜드와 배기량을 딴 이름의 컨셉트모델 AZ550 스포츠가 도쿄 모터쇼에서 공개된다. 지금 보기에도 제 정신이 아닌 듯한 스포츠 경차 3인방의 면면은 다음과 같았다.
타입 A: 유럽산 슈퍼카의 축소판이 테마인 차. 팝업 헤드라이트와 핀 타입 측면 공기 흡입구에서 당시의 몇몇 차의 모습이 떠오른다. 마치 갈매기의 날개처럼 위로 열리는 걸윙(Gull wing) 도어는 단순히 멋을 위한 것이 아닌 차체 강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구조 설계의 일환이었다. .
타입 B: 고성능 튜닝 스포츠 모델이 테마다. C 필러를 아예 없애 버리는 것도 모자라 B 필러를 앞으로 밀어 버리는 것으로 그린하우스(측면 유리창이 있는 부분)의 면적을 극단적으로 줄인 스파르탄한 하드탑 쿠페. 스파르타니까 거주성 같은 건 당연히 날려 버려도 된다. 커다란 원형 램프에 펜더를 부풀려 남성적 이미지를 강조해 놓았다. 세 모델 중 유일하게 문이 정상적으로(?) 열린다.
타입 C: 마쓰다가 참전하던 르망 그룹C카를 경차 규격 안에 밀어 넣었다. 걸윙 도어는 물론 레이스카 그 자체인 버블형 캐노피, 리어윙과 미러, 에어 인테이크와 브레이크 냉각용 BBS ‘스타일’ 휠까지 온통 내구 레이스 머신의 오마쥬다. 데칼이나 차량 번호까지 당시 마쓰다 그룹C카의 것을 옮겨 붙여 놓았다.
1989년 모터쇼에 공개된 차는 화제를 독차지 했다. 예상 외의 호평이 쏟아지자 양산 결정까지 내려진다. 가장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던 것은 역시 타입 C, 비율이 무너지며 다소 만화적인 모습이 되었지만, 이것이 오히려 매력으로 작용해 버렸다. 르망 머신의 특징을 모조리 담은 디테일은 사랑스럽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실제로 간택 받은 차는 타입 A였다. 셋 중 가장 대중적인 성공 확률이 높으리라 여겨진 탓이었다. 양산을 위한 수정 작업 지시가 내려지고, 타입 A기반의 양산차 준비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2부로 이어집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변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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