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나와 싼타페 사이에서 신음하던 스포티지의 반격
김형준 입력 2018.08.28 10:53 수정 2018.08.28 10:54 댓글 39개
인생의 방향이 바뀌는 시점이 있다. 학업을 마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딜 때, 평생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만난 날, 아이가 태어나거나 반려동물과 함께하기로 결심한 순간 등이다. 그리고 그 시점, 많은 사람이 자동차 구입을 고려한다. 실상 대부분 상황은 선택이 어렵지 않다. 자신의 취향이 우선된 차를 고르면 돼서다. 골치 아픈 건 전에 없던 새 가족이 생겨나는 시점의 선택이다. 나의 취향이나 쓸모뿐 아니라 가족이 누리고 느낄 편리와 만족까지 고려해야 해 따져볼 일이 한둘이 아니다. 신생아 형편에만 맞춰 차를 구입할 수도 없다. 자동차라는 소비재의 가격을 생각하면 적어도 자녀가 초등학교 졸업할 즈음까지는 탈 수 있어야 구매에 당위가 생긴다. 출퇴근부터 쇼핑, 여행, 심지어 부모와 함께하는 집안 대소사까지 차 하나로 모두 해결하는 대부분 한국 가정의 생활상을 생각하면 새로운 가족용 차 구입은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다.
이는 한국에서 중형, 준중형 자동차가 인기인 배경이기도 하다. 특히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애써온 국내 제조사의 승용차들은 크기와 공간, 편의사양에 있어 자연스럽게 동급 경쟁모델보다 조금씩 더 나은 면모를 지니곤 한다. 덕분에 중형 세단 하나면 한국적 생활상에 모자람이 없었다. 중형차의 가격이 살짝 부담스럽다면 준중형 자동차가 현실적 대안이었다. 실상 준중형차는 한국의 실질적인 엔트리 패밀리카로 기능해왔다. 가장 부담이 적은 건 준중형 세단이었고 약간의 편리를 더하고자 하면 조금의 웃돈을 보태 준중형 SUV를 고려하는 게 한국 가정의 일반적인 구매 패턴이었다.
그런데 최근 2~3년 그 흐름에 적지 않은 균열이 갔다. 소형 SUV의 등장 때문이다. B 세그먼트로 구분되며 C 세그먼트 승용차의 가격대를 지닌 소형 SUV는 시장이 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연간 10만대 이상 규모 시장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그리고 준중형 SUV 시장은 그 타격을 직접 입었다. 시장 규모가 빠지기 시작해 지난해는 10만대 미만(9만8556대)으로 떨어졌고 전체 SUV 시장과 전체 승용차 시장 내 비중도 각각 21.4%와 7.6%로 하락했다. 지난해 약 14만대가 팔리며 전체 SUV 시장 내 비중 30.4%, 전체 승용차 시장 내 비중 10.9%를 차지한 소형 SUV와 대비되는 대목이다.
이 흐름은 올해도 여전하다. 지난 7월까지 소형 SUV(8만3345대)는 준중형 SUV(4만5585대)의 두 배 가까이 판매됐다. 여기에 싼타페(TM)와 쏘렌토 등 고급화된 중형 SUV의 인기까지 더해지면서(지난 7월까지 중형 SUV 시장 11만9186대 판매) 준중형 SUV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는 분위기다. 전체 SUV 시장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살피면 한결 이해가 쉽다. 소형 SUV는 28.7%, 중형 SUV는 41.0%인 반면 지난해 21.4%를 차지했던 준중형 SUV 비중은 현재 15.7%다.
하지만 준중형 SUV의 시대가 끝났다는 단언은 금물이다. 시장의 주력 상품인 기아차 스포티지와 현대차 투싼 모두 라이프사이클 중후반에 진입했고, 그 사이 자동차 시장엔 첨단운전자보조장치(ADAS)와 같은 새로운 기술이 구매를 결정하는 핵심 사양으로 자리 잡았다. 시장 변화의 템포와 엇박자를 낸 게 최근 부진의 무시못할 요인 중 하나라는 이야기다. 분위기 전환의 특효약은 제품의 완전변경이다. 세대를 갈아타기까지 시간이 남았다면 그 다음 단계는 상품성 개선과 보강이다. 2015년 선보인 기아차 스포티지가 최근 ‘더 볼드(The Bold)’라는 꼬리표를 달고 등장한 까닭이다.
인생, 이름 따라간다더니 스포티지 더 볼드가 꼭 그렇다. 새로운 얼굴의 인상이 이름처럼 선명하고 강렬하다. 당장 헤드램프부터 방향지시등과 주간주행등, 하향등뿐 아니라 하이빔까지 LED를 적용해 눈빛이 또렷해졌다. 라디에이터 하단을 가로지르며 LED 안개등이 담긴 양 옆 가니시를 잇는 메탈 질감 장식, 핫스탬핑 디테일로 입체감을 살리고 다크크롬 테두리를 두른 타이거 노즈 그릴이 전하는 분위기도 한층 공격적이다. ‘ㄷ’자로 차체 양끝을 아우르는 새로운 그래픽의 LED 테일램프도 이전과 다른 뒷모습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만하면 이름값에 걸맞은 제법 성공적인 성형수술이다. 단, 기본 트림(럭셔리)에 마련된 바이제논 프로젝션 헤드램프는 디자인 변경이 없다. 스포티지 더 볼드의 일신한 분위기를 맛보고 싶다면 스타일 업 패키지를 추가하거나 중상급 이상 트림(노블레스, 인텔리전트)을 선택하는 게 답이겠다. 103만원인 스타일 업 패키지는 풀 LED 헤드램프와 LED 테일램프, LED 안개등에 핫스탬핑 라디에이터 그릴, 크롬 사이드몰딩과 도어핸들, 블랙 헤드라이너 등을 포함한다.
인테리어는 송풍구와 8인치 UVO 인포테인먼트 디스플레이를 은색 프레임 하나로 아우른 센터페시아가 먼저 눈길을 끈다. 조각조각 나 있던 구성요소를 한데 담아 실내 분위기가 한결 간결하고 고급스러워졌다. 운전대도 최근 기아차의 그것을 따라 가지런히 정리했다. 엔터테인먼트와 트립컴퓨터, 운전자 지원장치 등의 기능이 짜임새와 조리 있게 배치돼 보기에 편안하고 조작도 손쉽다. 탄탄한 우레탄 소재 크러시패드와 우레탄 텍스처의 단단한 플라스틱 내장재를 짜맞춘 예의 견고한 구성은 변함없지만 좌우 개별제어가 가능한 풀 오토 에어컨은 ‘공기청정모드’라는 새 기능을 더했다. 내기순환 버튼을 2초 가량 길게 누르면 작동하는데, 대기 오염물질의 유입을 막은 채 오염된 실내공기를 정화한다.
디스플레이와 인포테인먼트 버튼, 공조장치 패널은 살짝 꺾여 운전자를 향하고 있다. 조수석 쪽으로 내려오는 플라스틱 내장재도 운전자와 보조석 승객의 공간을 구별하는 기능을 한다. 전반적으로 소형 차급에 걸맞게 운전자를 먼저 챙기는 구성이다. 그렇다고 보조석 승객이 얻어 타는 기분을 느끼는 건 아니다. 이쪽 창문 틀에서 카울포인트를 거쳐 반대쪽 창문 틀까지 호(弧)를 그리며 이어지는 랩 어라운드 스타일과 수평선을 강조한 대시보드가 공간에 차분함과 여유로움을 더한다.
뒷자리는 등받이도 뒤로 꽤 눕힐 수 있다. 롤 타입 트렁크 선반은 프레임을 거치하는 자리가 앞뒤로 두 곳인데, 앞쪽에 두면 뒷자리 승객이 몸을 기대기에 제일 안정적인 자세가 나오고 뒤쪽에 두면 거의 눕듯이 앉게 된다. 등받이를 90°로 세우면 적재공간을 확장한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폴딩 레버가 등받이가 아니라 쿠션 쪽에만 있어 등받이를 뒷자리에서만 접을 수 있는 건 조금 아쉽다.
뒷자리 송풍구는 승객 무릎 근처에 위치하고 USB 포트와 파워 아웃렛은 각각 하나씩 있다. 앞자리에는 파워 아웃렛 2개와 USB 커넥터가 하나씩 있고 여기에 무선충전 패드까지 더해진다. 뒷자리 공간은 갓 태어난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까지는 불편 없이 뒹굴(?)만큼의 여유가 있다. 여기에 등받이와 트렁크 바닥을 활용한 적재공간 활용도, 앞뒤 큰 차이 없는 편의성 등 객실의 쓸모는 요즘 인기 있는 소형 SUV보다 훨씬 낫다. 준중형 SUV가 새 식구를 맞이하는 가정의 다목적 가족용 차로 경쟁력이 여전하다 말하는 배경이다.
스포티지 더 볼드의 경우 최신형 SUV들에 뒤처져 있던 첨단 운전자보조 장치(ADAS)와 커넥티비티 기능을 단숨에 보완했다. 모든 트림에 전방 카메라 센서를 기본 적용해 전방 충돌방지 보조(FCA)와 차로 이탈 경고 및 이탈방지 보조 등의 안전 사양 역시 기본이다. 여기에 드라이브와이즈 II의 패키지 옵션에 전방 레이더와 후측방 레이더 센서를 기반으로 하는 보행자 충돌방지와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후측방 충돌경고와 교차충돌 경고 같은 발전된 보조 안전장치도 포함했다. 드라이브와이즈 II 패키지는 98만~113만원에 추가할 수 있는 옵션이다.
UVO 내비게이션 패키지(123만~157만원)를 보태면 준 자율주행 기능인 고속도로 주행보조 기능까지 구현 가능하다. UVO 3.0 인포테인먼트의 경우 애플 카플레이에 안드로이드 오토 연결이 가능하다. SK텔레콤 ‘누구’나 KT ‘기가지니’ 등 집안에 있는 AI 스피커를 통해 원격시동, 도어잠금, 온도조절 같은 기능도 명령할 수 있다. 서버형 음성인식 기술인 카카오 i도 음성명령 인식률이 나날이 나아지는 모습이다.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IoT)으로 가정과 자동차가 연결되는 홈투카(Home-to-Car) 시대가 시나브로 다가온 셈이다.
시승 모델은 인텔리전트 트림의 R 2.0 디젤. 파워트레인은 2.0L R 디젤 엔진에 새로운 8단 자동변속기 조합으로 186마력/41.0kg·m의 파워를 오롯이 앞바퀴에 집중한다. 더 볼드 모델에 새롭게 추가한 스마스트림 D 1.6의 경우 1.6L 디젤 터보와 7단 DCT, FF 구동계 조합으로 리터당 16.3km의 출중한 연료효율을 낸다. R 2.0 디젤 2WD 모델 역시 연료효율은 기존 13.9km/L에서 14.4km/L로 나아졌다. 강화된 EU6 배출가스 규제에 맞춰 SCR 요소수 후처리 장치가 더해진 점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
도로에서 엔진이 보여주는 성능은 제원표에 기재된 숫자 거의 그대로다. 1800rpm 즈음에서 파워가 솟구치고 3000rpm 부근에서 수그러든다. 8단 자동기어는 R 2.0 디젤 엔진의 불 같은 성정을 효과적으로 다독인다. 시속 100km에서 분당 엔진 회전수는 1500rpm 정도로 극단적으로 낮진 않다. 간격이 넓지 않은 8개 기어로 엔진 출력을 충분히 활용하는 편이다. 속력을 유지한 채 굽은 길을 돌아나갈 때는 인위적인 모멘텀으로 변화를 주는 일 없이 뒷바퀴가 느긋하게 따라붙으면서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연출한다. SUV답게 서스펜션 상하 움직임이 크고 스프링도 부드럽지만 자세가 쉽게 무너지진 않는다. 확실하고 단호한 제동으로 코너 진입 전 앞 타이어에 무게를 한껏 실어주면 움직임은 한층 역동적으로 변한다. 이처럼 차의 전반적인 움직임은 하중 변화가 솔직하게 반영되는 편이다.
운전대는 타공 가죽으로 감싼 얇은 림부터 조향감까지 흠잡을 구석이 거의 없다. 특히 수년 간 이어져온 전동 파워 스티어링의 단점은 찾아보기 어렵다. 어떤 시점에도 타이어와 스티어링이 격리된 느낌을 주는 적 없고, 운전대로 올라오는 정보도 분명하다. 특히 노면 상태와 출력의 정도, 속력의 크기 같은 정보가 제법 충실하게 전달돼 운전에 큰 보탬이 된다. 아이들링 스톱&스타트는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하다. 차가 완전히 멈췄을 때 엔진을 끄고,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완전히 떼었을 때 시동을 다시 건다. 연비 향상을 이유로 일찌감치 끄거나 바삐 재시동하는 일은 없다는 얘기다. 잠시 시동을 끄거나 재시동할 때의 진동이나 소음도 일상적으로 불편을 느낄 만큼 크거나 시끄럽지 않다.
앞서 준중형 SUV 시장의 위축을 언급했지만 이 시장의 두 주력상품(스포티지와 투싼)은 여전히 매달 3000대 가까운 판매량을 보이고 있다. 시장 전반의 규모는 줄었을지언정 준중형 SUV라는 제품 자체의 매력까지 떨어지진 않았다는 얘기다. 어쨌든 스포티지 더 볼드를 필두로 준중형 SUV들의 반격도 본격화됐다. 하이테크 분위기 연출, 첨단 운전자 보조장치의 보강, 커넥티비티 신기능과 파워트레인 효율성의 강화 등 완전변경 때나 기대해봄 직한 굵직한 개선이 적지 않다. 소형 SUV와 중형 SUV 틈바구니에서 신음하던 준중형 SUV가 마침내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SUV가 인기인 한국에서 준중형 SUV는 가족용 차로 더할 나위 없다. 스포티지 더 볼드처럼 시대 변화에 빠르게 호응한 준중형 SUV라면 더 말할 것도 없겠고.
김형준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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