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100년 만의 화려한 부활!
오토티비 입력 2018.12.14 11:01
- 전기차 부활의 일등공신은 역시 배터리!
최근의 전기차는 배터리의 기술 발전 덕에 지금처럼 상용화될 수 있었다. 내연기관 자동차가 개발되기 전 토마스 파커가 만든 양산전기차가 나온 것이 1884년의 일. 세계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로 특허를 받은 벤츠 1호차(페이턴트 모터바겐, 1886년)보다도 역사가 오래됐다. 양산전기차 등장 이전에도 전기를 이용한 자동차 개발은 1830년대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자동차 시장에서는 전기 구동계와 증기기관, 내연기관과 패권을 다투고 있었다. 내연기관이 기술 개발 초기 불안정할 때 전기차는 간단한 구조와 진동 및 소음, 매연이 없는 장점을 앞세워 오래된 증기기관을 밀어내며 20세기 초 한때 자동차의 주력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내연기관의 급격한 기술발전이 이루어지면서 이내 시장에서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었다. 배터리의 크기와 무게, 효율, 충전시간, 가격 등이 내연기관에 밀렸기 때문이다.
이후 수십 년간 전기차는 골프 카트 등 자동차의 보조 운송수단으로만 쓰이다가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세기 말에 와서다. 환경문제가 불거지면서 전기차의 상용화 가능성이 싹트기 시작했고, GM EV1(1996~1999년)의 실험적인 단계를 거쳐 21세기에 와서 본격적인 양산 전기차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전기차의 성능은 사실 모터보다는 배터리에 좌우된다. 배터리의 용량과 효율, 단가에 따라 전기차의 성능은 물론이고 상업화의 성공 가능성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GM의 첫 대량생산 전기차인 볼트(Bolt) EV도 사실상 차량 개발을 일찌감치 끝내놓고 LG화학이 배터리를 경쟁력 있는 가격에 납품하기만을 기다리다 지난 2016년에야 출시된 바 있다. 그만큼 전기차에서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대단하다.
그렇다면 배터리는 누가 언제 개발한 것일까? 요즘의 리튬이온 배터리와 다른 초보적인 배터리는 일반적으로 알레산드로 볼타(1745~1827년)가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있었던 몇 명의 위대한 과학자가 없었다면 볼타가 배터리를 발명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전기는 인류 시작 이전부터 존재했다. 자연 현상에서 얼마든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기를 특정 물체에 담아두고 사용하는 배터리의 개념은 18세기 들어 시작됐다. 전기를 만드는 방법은 많았지만(이를테면 정전기) 저장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1746년 전기 저장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실험으로 입증되면서 저장 기술은 급속히 발전했다. 이러한 축전의 성공과 활용 가능성, 그리고 상용화를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몇 명의 과학자들이 있다.
전기의 아버지, 벤자민 프랭클린
미국이라는 나라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주목받는 인물로 꼽히는 여러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년)이다. 역대 대통령을 제치고 100달러짜리 지폐에 얼굴이 들어갈 만큼 미국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정치가다. 하지만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기 전까지 그는 과학자이자 사업가였다. 영국에서 태어나 인쇄기술을 익힌 뒤 미국으로 건너와 인쇄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하지만 과학에 대한 열정은 늘 식지 않았고, 발명품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1740년 초반에 만든 난로는 ‘프랭클린 스토브’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생산되는 중이며, 피뢰침도 프랭클린의 아이디어가 현실화된 발명품이다.
특히 그는 전기에 관심이 많았는데, 여기에 영감을 준 인물은 사업가이자 과학자, 의사, 그리고 목사였던 아치발트 스펜서(Archibald Spencer, 1698~1760년)였다. 과학의 거장인 아이작 뉴턴의 업적을 소개하던 스펜서의 강의를 들은 후부터 프랭클린이 전기 현상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스펜서는 당시 네덜란드 과학자였던 피터 반 뮈스헨브루크(Peter Van Musschenbroek, 1692~1761년)의 라이덴병(Lyden jar)을 소개했다. 이른바 축전지 분야의 최대 업적으로 일컫는 전기 저장 도구로, 담아 둔 전기를 이용해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역사적으로 배터리(Battery)의 기원을 ‘라이덴병’으로 보는 것도 전기를 저장(축전, 蓄電, capacity)한 최초의 기구였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에서 연구자로 있던 뮈스헨브루크가 라이덴병을 발명한 것은 우연이었다. 마찰로 만든 정전기로 전기 실험을 하던 중 물이 들어 찬 유리병을 오른손으로 잡고, 왼손은 전기발생장치에 연결된 철사를 잡은 후 전기를 통하게 했더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철사 한 끝을 병 속의 물에 넣으니 전기 충격이 발생했고, 감전의 고통을 겪었다. 다시 말해 물에 저장된 전기가 철사를 통해 이동했고, 뮈스헨브루크의 몸에 흘렀던 것이다. 배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전기가 저장될 수 있고, 밖으로도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 실험이었다.
스펜서를 통해 프랭클린에게 소개된 뮈스헨부르크의 라이덴병은 전기에 관한 실험에 상당한 도움이 됐다. 병을 이용해 번개가 곧 전기라는 사실을 입증했고, 전기와 관련된 다양한 용어 정립도 이뤄냈다. 음전자, 양전자, 전하, 도체 등 현재 전기에 사용되는 단어를 만들어 낸 인물이 바로 벤자민 프랭클린이다. 쉽게 보면 전기의 에너지 사용 가능성을 제기한 셈인데, 이를 증명하기 위해 번개를 대상으로 시행한 연 실험은 유명하다. 1752년 번개가 치던 어느 날 연에 열쇠를 매달아 띄웠다. 번개에서 흐른 전하가 연줄을 통해 흐르며 초인종을 울렸다. 이 원리를 이용해 만든 발명품이 바로 피뢰침이다.
알레산드로 볼타의 전지
뮈스헨브루크와 벤자민 프랭클린의 과학적 활동으로 전기가 저장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자 이탈리아의 과학자인 알레산드로 쥐세페 안토니오 아나스타시오 볼타(Alessandro Giuseppe Antonio Anastasio Volta, 1745~1827년)의 활약이 시작됐다. 시기적으로 앞선 두 과학자가 전기 저장과 활용의 가능성을 열었다면 볼타는 하나의 물체 안에서 전기를 만들고, 밖으로 흐를 수 있는 장치 고안에 주력했다. 물체 안에서 전기가 만들어지면 말 그대로 전기를 뽑아서 사용할 수 있고, 이 경우 전지가 곧 일상생활에 들어올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볼타 또한 주목한 것은 라이덴병이었다. 1747년 윌리엄 왓슨(Willam Watson)이 라이덴병에 얇은 주석을 붙여 성능을 개선시켰는데, 이후 볼타는 서로 다른 두 개의 금속이 젖은 물체에 닿으면 전기가 지속적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소금물과 알칼리 용액을 활용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전지가 이른바 화학물질을 이용한 최초의 전지로 알려진 ‘볼타 전지’다.
하지만 정작 전지의 역사에서 과학자 볼타를 치켜세우는 진정한 이유는 그의 끊임없는 호기심과 탐구 정신 때문이다. 처음 만든 전지는 전자가 흐르게 할 수 있는 힘(전압)이 생겨도 전류의 지속 이동은 어려웠다. 볼타는 전지 발명 초기에 아연을 납에 연결하고, 납을 주석에 붙이고, 주석을 철에 연결하고, 다시 철을 처음의 아연에 연결시켰다. 이때 전기는 발생했지만 이동이 일어나지 않았고, 그 해결책으로 액체를 주목했다. 게다가 당시 과학자 갈바니가 전자를 개구리에 흘려보냈더니 뒷다리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주목했는데, 갈바니를 비롯한 과학자들은 전자의 연결 통로로 개구리 몸 안의 체액을 꼽았다. 볼타가 전자의 흐름을 파악해 내놓은 볼타 전지의 원리를 구축한 배경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볼타 전지의 원리는 지금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볼타는 전자가 통하는 금속이나 고체 물질을 1종 도체, 이외에 전자가 이동 가능한 액체나 동물의 몸 등을 2종 도체로 규정했다. 그리고 1종 도체는 회로를 만들 수 있어도 전류는 얻을 수 없는 반면 2개의 다른 1종 도체를 2종 도체로 연결하면 전류가 흐른다고 설명했다.
볼타의 발명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곳은 프랑스였다. 나폴레옹이 볼타의 업적을 인정하며 연구소를 지원했고, 그는 전기가 인류의 미래를 많이 바꿀 수 있으며, 활용 범위도 무궁무진하다는 점을 세상에 알렸다. 그리고 그의 예측대로 이후 전지는 빠르게 산업사회로 들어왔다. 1836년 영국의 화학자인 존 프레드릭 다니엘(John Frederic Daniell, 1790~1845년)이 발명한 다니엘셀은 최초로 실용적인 전기 공급원으로 인정받으며 통신 네트워크의 전원으로 보급됐다.
하지만 황산 및 아연과 같은 물질이 액체 전해질을 거쳐 전자를 이동시키는 과정은 볼타전지의 원리와 같았고 유리병은 깨지기가 무척 쉬웠다. 그러자 1886년 독일의 과학자 칼 가스너(Carl Gasner)가 액체 구성의 습식 전지 단점을 개선한 건식 전지를 고안했다. 이전의 습식과 달리 가스너의 건전지는 견고한 데다 유지 보수가 필요 없고 액체 누출이 없었다. 전압은 1.5V였는데, 최초의 대량 생산은 1896년 내셔널 탄소회사 처음 판매 한 콜럼비아 건전지였다.
전기차의 화려한 부활
뮈스헨브루크와 벤자민 프랭클린, 그리고 알레산드로 볼타 등 배터리 개발에 기여한 여러 선각자 덕분에 전기는 인류의 일상으로 바짝 들어왔다. 그리고 당연히 전기를 이용한 전기차 개발도 시작되었다. 전기마차 등 전기차의 초보적인 형태는 이미 1830년대부터 시작되었고, 1840년대에 이미 주목할 만한 형태로 발전하기도 했다. 축전지의 발명으로 1860년대 전기차의 획기적인 발전 토대가 마련되었고, 1880년대 차량으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한 후 1890년대에는 본격적인 전기차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덕분에 20세기 초에는 내연기관 자동차에 앞서 자동차 시장의 주력이 되었지만 이내 내연기관의 급격한 발전으로 시장에서 자연스레 도태되었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내연기관에 자리를 내주었던 전기차는 20세기 말에 와서 환경문제로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21세기에 와서는 배터리의 기술발전에 힘입어 이젠 내연기관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특히 최근의 자율주행 기술과 접목한 전기차는 수십 년 이내 내연기관을 완전히 대체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0세기 100년 동안 내연기관에게 시장을 내주었던 전기차의 반격은 이미 시작되었고, 21세기 자동차 시장의 판도가 전기차로 바뀔 것이라는 데에는 더 이상 이견을 내는 사람이 없는 상황. 세상은 돌고 돈다는 평범한 이치를 전기차의 부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글 오토티비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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