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보르기니가 우루스를 첫 SUV라고 우기진 못할 거다
입력 2017.07.17 15:48 수정 2017.07.17 15:55
우루스, 람보르기니 최초의 SUV일까 아닐까
군용차가 되고 싶었던 비운의 람보르기니, LM002 (2)
[변성용의 사라진 차 이야기] 쏟아 부은 돈이 아까웠던 것일까? 법정관리 상황에서도 람보르기니는 한 번 손에 넣은 오프로더의 꿈을 좀처럼 버리지 못한 채 만지작거린다. 험비의 프로토타입이 한참 국방성의 테스트를 받고 있을 즈음인 1981년, 치타의 맥을 이은 차가 제네바모터쇼에서 등장한다. LM001이라는 이름은 람보르기니의 군용차(Lamborghini Military)의 첫 번째 모델이라는 뜻. 치타의 디자인을 손질한 LM001은 AMC의 V8 5.9L OHV 180마력 엔진을 미드십에 얹고 크라이슬러제 AT를 더한 풀타임 4WD였다.
LM001은 일반도로에서 최고시속 160km, 오프로드에서도 시속 120km로 달릴 수 있었지만, 리어 엔진으로 인한 핸들링 문제는 여전했다. 람보르기니는 엔진을 앞으로 옮기기로 결심한다. 바뀐 엔진 베이에 올라가는 것은 양키제 V8이 아닌 자신의 수퍼카용 V12 엔진이었다. 미군 입찰은 이미 물 건너 간 상황이였지만, 이젠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듯 개발을 계속했다.
1982년 제네바모터쇼에서 LM001의 발전형 ‘LMA002’가 선보인다. 이름에 추가된 A는 앞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Anteriore로 엔진이 앞으로 옮겨 왔음을 뜻했다. 단점이 되었던 뒤쪽 엔진을 앞쪽으로 옮기고, 크라이슬러 엔진 대신 카운타크에 얹었던 V12 4.8L 332마력 엔진을 올렸다. 1년 뒤 양산을 위한 최종형 LM002가 다시 쇼장에 나타난다. 배기량을 5.2L로 키워 최고출력 450마력/6,800rpm, 최대토크 51.0kg·m/4,500rpm의 강력한 힘을 냈고. 뒷바퀴굴림을 기반으로 수동식 전환레버를 이용, 앞바퀴를 작동시킬 수 있는 파트타임 4WD를 갖췄다.
6년간의 법정관리를 마친 뒤 새 주인을 맞은 람보르기니는 브랜드의 재도약을 알릴 새 모델이 절실하던 상황이었다. 1986년 벨기에 브뤼셀모터쇼에서 드디어 LM002가 ‘일반’ 고객용으로 시판된다. 치타로 오프로더 제작에 뛰어든 지 10년 만이었다.
LM002의 크기는 오리지널 험비를 바탕으로 한 허머 H1과 비슷하다. 길이가 조금 더 길고 너비와 높이는 조금 작은 정도. 하지만 슈퍼카의 엔진을 품은 채 있는 대로 각을 세운 대형 SUV의 모습은 존재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일반 양산차로는 보기 드문 345/60 R17 사이즈의 커다란 타이어는 피렐리가 제작한 전용 제품으로, 일반 용도와 사막 전용 용도의 두 가지 트레드를 갖췄다. 좋지 않은 연비로 장거리를 달려야 했기 때문에 연료탱크의 크기는 무려 290리터나 되었다. 적재함 양쪽으로 2명씩 앉을 수 있는 벤치형 시트를 달아 최대 8명(실내 4명+적재함 2+2명)까지 탈 수 있도록 한 것도 군용차의 흔적이었다.
단순하고 기능적인 실내에서도 군용차로 만들어졌던 LM002의 흔적이 남아있다. 모든 스위치를 큼직하게 직관적으로 배치하고 스위치는 모두 먼지가 들어가지 않도록 밀봉해 놓았다. 네 개의 윈도 업다운과 도어 온오프 스위치는 두툼한 장갑을 낀 손으로 조작하기에 어렵지 않도록 멀찌감치 분리해 놓았다. 좌석 간의 거리가 넓지만 대시보드와 시트 등 실내 곳곳을 고급 가죽으로 감싸고 원목으로 장식해 프리미엄 SUV의 느낌을 강조했다. 스티어링 휠조차 람보르기니 배지가 들어간 나르디(Nardi) 제품이었다.
LM002의 보디는 대부분 유리섬유(fiberglass)로 만들었지만 도어는 알루미늄으로 제작했다. 길이×너비×높이가 4,790×2,000×1,850mm, 무게가 2,700kg (장비 탑재 시 3,500kg)에 달했으나 ZF제 5단 수동변속기와 조합한 강력한 엔진에 힘입어 최고시속 188km의 성능을 냈다. 5기통 3.6L 디젤 터보 150마력 엔진(VM모토리제)을 얹은 LM003과 보트용으로 만든 V12 7.2L 420마력 엔진을 쓴 LM004도 준비했지만 시판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가장 성능이 좋았던 LM004는 최고시속 200km, 0→시속 100km 가속 8.5초의 성능을 냈다.
여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LM002의 특이함은 슈퍼리치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첫 차는 모로코 국왕에게 전달되었고, 브루나이의 술탄을 위한 에스테이트 버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실제로 출전은 하지 못했지만 파리 다카르 출전을 목표로 한 랠리차도 만들어서 몇몇 랠리에 참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게 다였다.
당초 목표였던 군용차로 채택되지 못한 채, LM002는 고가의 가격을 붙이고서 소수 마니아의 수집용이나 아랍 부호들의 경호용 차로 적은 수가 판매되었다. 8년간 320대 남짓한 총 판매대수를 뒤로 한 채, 1993년 LM002는 람보르기니의 라인업에서 조용히 사라진다. 손해만 내는 회사를 어떻게든 팔아치워 보려 발버둥 치던 당시의 주인 크라이슬러의 구조조정 때문이었다. 창업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가 떠난 후 늘 풍전등화 같았던 람보르기니의 운명이 비로소 안착하게 되는 것은 그로부터 10여 년 뒤, 주인이 두 번이나 더 바뀌고 나서의 일이다.
람보르기니가 신형 SUV인 우루스를 내놓으면서 LM002의 존재를 부각시킬지, 아니면 우루스가 자사의 첫 SUV라고 우길 것인지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LM002가 람보르기니의 첫 양산 SUV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변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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