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봐도 신선한 디자인..1억엔 日슈퍼카 왜 실패했나
변성용 입력 2017.06.23 16:09 수정 2017.06.23 16:11
버블붕괴와 함께 터져버린 일본 슈퍼카의 꿈
지오토 카스피타 (Jiotto Caspita) (2)
[변성용의 사라진 차 이야기] 1989년 28회 도쿄모터쇼. 지금은 예전의 위세를 짐작하기 힘들 정도로 사그라져 버렸지만, 과거 도쿄 모터쇼는 프랑크푸르트, 디트로이트와 함께 세계 3대 모터쇼로 손꼽히던 자동차 기술의 제전이었다. 일본은 명실 공히 세계 자동차의 중심지였으며 일본은 물론 유럽 브랜드까지 세계 최초의 컨셉트 모델을 쏟아내던 곳이다.
하지만 28회 토쿄 모터쇼의 백미는 지오토 카스피타였다. 길이 4.5m, 무게 1톤이 조금 넘는 차는 사실상 그룹C 르망 머신을 도로주행용으로 옮겨 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라운드 이펙트를 위해 프론트와 리어에 가변 스포일러를 달고, 초고속 주행 시 사이드 미러가 도어 속으로 접혀 들어가기까지 했다. 30년이 흐른 지금의 시각으로도 신선한 디자인, 그룹C 레이스카의 골격과 제작 공법을 그대로 이어받은 카본 컴포지트 바디에 실제 F1용 엔진을 탑재한 자국 최초의 슈퍼카에 일본인들은 열광했다. 차를 구입한 고객이 원한다면 바로 르망 레이스에 투입할 수 있도록 사양 변경 서비스까지도 계획되고 있을 정도였다.
생산계획 대수는 고작 30대. 시판가격은 무려 1억엔(!), 엄청난 가격이지만 막대한 개발비를 생각하면 이 가격으로도 이익을 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차가 계획대로 남성 브랜드 지오토의 아이콘이 되어 준다면, 전 세계에서 들어올 라이선스비로 지금까지의 개발비를 충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츠카모토 사장의 생각이었다.
◆ 스바루, 발을 빼다
그러나 프로젝트는 뜻밖의 지점에서 삐걱대기 시작한다. 단초가 된 것은 스바루였다. 박서엔진의 장점을 홍보해 보려 뛰어든 F1이었지만 사실 스바루의 역할은 이탈리아의 레이스팀과 엔진에 그저 돈만 대는 ‘물주’에 불과했으며 팀은 F1 본선을 단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하는 굴욕을 겪어야 했다. 스바루-콜라니의 F1머신은 무거운 샤시에 더해 경쟁차보다 엔진 출력이 현저히 떨어졌으며, 당시 예선규정에 따라 치러진 프리 퀄리파잉에서 랩타임 미달 아니면 리타이어로 F1의 비웃음거리가 됐다. 미치도록 답답했지만 상황을 타개할 기술과 경험이 전무했던 스바루는 결국 돈과 자존심만 버린 채 6개월 만에 F1 철수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것은 지오토에게 엔진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부랴부랴 일본의 자동차 회사를 대상으로 새로운 엔진을 수급하려는 시도가 시작된다. 닛산과 혼다에 엔진공급을 타진해 보지만 이미 스바루가 한번 삼켰다 뱉어낸 차에 누구하나 선뜻 타기를 꺼려했다. 결국 일본 브랜드의 엔진을 포기한 뒤 해외로 눈을 돌려 가까스로 구한 것은 영국의 레이스 엔진 제작사인 저드(Judd)의 V형 10기통 F1 엔진. 이걸 달기 위해서는 수형대향 12기통에 맞추어진 카스피타의 구조를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했다. 그렇게 꼬박 2년의 시간이 흐른다.
저드의 엔진은 F1에서 막 한 시즌을 보낸 엔진으로 내구성을 위해 디튠이 된 상황에서도 최대 출력 585PS / 10,750rpm 최대 토크 39.2kgm / 10,500rpm의 더 좋은 성능을 냈다. 엔진에 맞추어 차를 손보면서 생산성을 위한 세부 수정도 함께 가해졌다. 일본 교통성의 까다로운 완성차 규정을 피하기 위해 영국에서 먼저 인증과 등록을 마친 뒤 수입하는 방식을 취한다. 1993년 7월 일본에 반입된 2호차가 드디어 일본 번호판을 취득하게 되면서 정말로 시판을 목전에 둔 상황에 이른다. 그러나 정작 와코루는 이 차의 시판을 포기해 버린 뒤였다. 엔진교체와 인증을 위한 고군분투가 진행되던 사이, 시장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 일본 버블경제의 붕괴
1980년대 중반, 일본의 성장률이 둔화되자, 일본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인하와 부동산 대출규제를 완화시키고, 그것도 모자라서 기업이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도록 길을 열어줘 버린다. 손쉽게 대출받은 엄청난 양의 돈이 각종 자산들에 투자 명목으로 퍼부어지고 이것이 다시 기업의 주가와 부동산을 올리는 ‘악순환’, 이른바 버블경제가 시작된 것이다. 란제리회사가 슈퍼카를 만들고 그 차에 1억엔이 넘는 가격을 붙일 수 있었던 비정상의 배경에는 넘쳐나는 돈을 써보기 위해 벌이던 발악과도 같은 돈의 향연이 있었다.
실물경제에 낀 거품은 결국 1991년을 기점으로 터지기 시작한다. 터무니없이 올라버린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일제히 폭락했고 이는 소비 심리를 급속하게 위축시키면서 경제를 만신창이로 만든다. 그리고 일본은 그 대가를 현재까지도 치르고 있는 중이다.
1993년 2호차가 일본 번호판을 받을 때 즈음, 1억엔짜리 슈퍼카를 소비할 수 있는 시장은 진즉에 사라진 뒤였다. 원래 가격의 몇 배를 받는다 한들 손해만 날 차를 만들 방도는 없었다. 그렇게 지오토 카스피타는 조용히 사라진다. 스바루가 가져간 프로토타입 1호는 현재 일본의 한 사설 자동차 박물관에 방치되어 있으며, 2호차는 야타베의 고속 주회로에서 있었던 단 한 번의 테스트를 마지막으로 도무의 창고에서 영원히 잠에 빠져들었다. 지오토 브랜드를 접은 뒤, 와코루는 본업인 남녀 속옷 이외에는 어떤 사업영역으로도 사세를 확장하지 않는다. 카스피타를 개발했던 도무는 다행이도 레이스카 영역에서 여전히 분투하며 숱한 업적을 남겼지만, 다시 일반도로용 차를 만들 일은 없었다.
일본 최초의 슈퍼카는 그렇게 사라졌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변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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