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전 제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에 비해 추석을 즐기는 모습은 이제 많이 바뀌었습니다. 더 이상 추석이 예전처럼 농촌의 생활 리듬과 추수와 밀접하게 이어져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특히 올해 추석은 예년보다 빨리 찾아와 여름도 채 가지 않고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대며 싱싱한 초록잎이 아직 그대로일 때 추석을 맞았지요. 하지만 시원한 바람과 어느새 더욱 파래진 하늘을 보니 천고마비의 계절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명절 교통 체증과 함께 한국에서 추석은 아직도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모여 음식과 선물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아이들에게는 (꼬맹이들일 경우) 온 가족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거나, (시험을 앞두고 있는 학생일 경우) 한바탕 훈계를 듣는 시간이기도 하지요. 한국에 있기에는 더할나위없이 좋은 시간입니다.
저는 시골의 추석도 좋아하지만 추석 때 서울에 남아 있는 것도 좋아합니다. 한국에 있는 외국인이나 점차 많은 한국분들도 이렇게 하고 계시죠. 도시 전체가 텅텅 빈 것처럼 모두 문을 닫은 가운데 좀 더 여유있게 서울을 즐길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사랑하는 저희에게 추석은 1년 중 평소의 복잡한 교통 체증 없이 서울의 거리와 샛길을 자전거를 타며 즐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중 하나랍니다.
2011년 9월 12일, 서울 한강에서 대사관 자전거팀과 친구들이 함께 포즈를 취했습니다.
올해는 기대했던만큼 도로가 한산하지는 않았지만 날씨는 정말 좋았습니다. 탐 언더우드 지역총괄담당관은 심지어 저보다 자전거를 더 많이 타는 (자전거 여행 기획도 많이 하는) 분인데요, 이번에는 서울 근교 “Eight Rivers tour (서울 8대천 자전거 투어)”를 생각해냈습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통행로였던 곳들을 포함해 서울의 주요 천과 강을 따라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는 곳을 위주로 자전거로 서울을 한바퀴 돌아보았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의아해하실 수 있겠지만 한강과 그 일곱 개의 지류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큰 원이 하나 만들어집니다. 물론 그 사이에 만만치 않은 북악스카이웨이가 버티고 있지요! 다양한 지형에 꽤 난이도가 있는 80km 코스랍니다. 8대천은 한강, 창릉천, 순창천 (천이라고 부르기엔 좀 작은 개울입니다), 불광천, 홍제천, 성북천, 그 유명한 청계천, 그리고 중랑천입니다. 아래 언더우드 담당관이 직접 손으로 그린 사진을 첨부했으니 녹색 화살표를 따라가면 이해가 편하실겁니다.
가장 처음 멈춘 곳은 강매동 석교였습니다. 조선시대에 서울과 평양을 잇는 주요 도로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답니다. 중랑천을 건널 때는 살곶이 다리를 지나갔는데요, 화살이 꽂힌 다리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가장 긴 석조다리였다고 합니다. 모두 다 유서깊은 한국의 소중한 기반시설이자 유산입니다.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별로 없어 안타깝습니다.
강매동 석교를 건너는 모습
근처 덕양산 기슭에 있는 행주산성은 한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요새로 1593년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상대로 대승리를 거둔 행주대첩이 있었던 곳입니다. 이곳에 있는 충장사는 이순신 장군과 함께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지켜낸 데 큰 공을 세운 권율 장군을 기리는 곳입니다. 작은 상영관에서 역사적인 행주대첩에 관한 영상물도 관람했습니다. 추석날 영업을 하는 식당을 찾아 점심을 먹는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더군요. 다행히 서오릉 근처에 냉면과 돼지갈비를 파는 훌륭한 식당을 발견했습니다. 창릉천과 순창천을 쭉 따라가면 서오릉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자리에 앉은지 20분도 안되었는데 식당은 어느새 손님들도 가득 찼습니다. 우리말고도 식당을 찾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던 거죠!
잠시 가진 충전의 시간! 맛있는 음식과 안전하게 자전거를 보관할 수 있는 장소에 감사했습니다.
잠깐동안 복잡한 도로를 지나 자전거 도로가 놓인 두 개의 천을 더 거쳐, 고려 보도각 백불, 홍지문, 창의문 이렇게 빼어난 건축물 세 개를 지나치니 산행길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몬태나를 늘 가슴에 간직하고 살았고 평생 산을 사랑해 온 사람이지만 북악산은 정말 만만치 않은 산이었습니다. 새로 산 저의 산악자전거로도 오르기가 쉽지 않더군요. 마침내 정상에 올라서 내려다본 서울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확 트인 시야에 들어온 그 광경을 보니 힘들게 올라온 보람이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다시 수직낙하하듯 가파르게 다시 천으로 내려가는 길이었습니다.
멋진 전경에 감탄했습니다!
잠시 쉬어가는 곳에서 만난 소리꾼 장사익씨
그리고 성북천을 따라 새로 조성된 자전거길을 타고 청계천으로 계속 달렸습니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이 두 천을 중심으로 성장했습니다. 정말 많이 변했죠! 이 글을 읽고 있는 많은 분들도 복원된 청계천을 따라 많은 볼거리를 즐기며 산책을 해보셨을텐데요, 그 중 하나가 청계천의 과거, 현재, 미래를 살펴보는 청계천 문화관입니다. 50 미터에 걸쳐 재연된 판자촌이 한국전쟁 전후에 청계천을 따라 생성된 빈민촌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1960년대 청계천은 복개되었고 1970년대에는 그 위로 고가도로가 건설되었습니다. 이 시기 지하에서 흐르던 청계천을 복원하는 시뮬레이션도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청계천이 복원되는 모습을 그래픽 패널과 영상, 모형을 통해서 관찰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즐거운 추석이었습니다. 참, 그리고 송편까지 먹었답니다.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는 길에 백불에서 만난 한 여자분이 친절하게도 집에서 만든 송편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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