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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여정 200km 째: 변화하는 지형과 변화하는 풍경| 심은경의 한국 이야기

바래미나 2011. 6. 2. 00:33

#110 여정 200km 째: 변화하는 지형과 변화하는 풍경| 심은경의 한국 이야기
스티븐스 대사 조회 88 |추천 0 | 2011.05.31. 19:28

2011년  5월 30일

 

여행 3일째에 접어들었습니다. 10일 여정의 3분의 1지점이고요. 오늘까지 총 260km를 달려왔습니다. 지형은 평탄한 편이지만 수원과 오산, 천안, 아산, 예산, 서산, 태안간의 옛 경계에는 꽤 높은 언덕들이 위치하고 있어서 우리가 여러번 군 경계선을 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자전거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 한국의 중요한 특성 가운데 하나를 생생하게 볼 수가 있었는데요, 바로 농업과 공업이 서로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농촌 마을들 사이로 갓 모를 심은 논과 잘 가꾸어진 채소밭 곁을 지나치다가 모퉁이를 하나 돌면 커다란 공장이 눈앞에 나타납니다. 아산시가 좋은 예가 될텐데요, 아산시장님을 만나서도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1970년대에 예산에 살 때, 온양은 인근의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아산시장님께 온양에 대해 여쭤보니, 1995년 온양시와 아산군이 합쳐졌다고 말씀해주시더군요. 이제 농업과 공업이 공존하는 지역이 되었고, 이는 서울 밖으로 나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농업 자체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저는 1970년대, 온 마을의 일손이 동원되었던 노동집약적 쌀농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모내기철에는 마을 주민들과 학생들이 농부들을 도와 허리를 굽히고 한 포기 한 포기 손으로 모를 심었지요. 오늘날에는 기계화가 진행되어 노동집약적인 모습은 많이 사라지고 효율성이 높아졌지만, 요 며칠 농촌의 모습을 직접 살펴보니 여전히 모내기는 고된 작업이더군요. 농사를 짓는 분들은 남녀 할 것없이 어르신들이 대부분인데, 컨베이어 벨트에서 모판을 직접 내리는 작업을 하고 계셨습니다. 분명 기계화된 부분이 있지만 여전히 사람의 손이 많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 자전거팀에는 미국 루이지애나주에서 온 분이 계신데, 미국에서는  관개 용수의 높이를 레이저로 측정하고, 다 익은 벼를 수확해서 낱알까지 한 번에 분리할 수 있는 기계도 등장했다고 하시더군요. 쌀농사가 많은 이들에게 훨씬 더 편해진 것이 사실이지만, 제가 현장에서 직접 본 바로는 여전히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인 듯 합니다.

 

모내기가 막 끝난 논 옆을 지나며

 

클린턴 장관님의 표현대로 한국 농촌에서 여전히 온 마을의 일손이 필요한일이 한 가지 있는데요, 다름아닌 배 인공수분입니다. 저는 몇 해 전에 미국 대표로 생물다양성을 주제로 한 회의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 당시 미국은 벌 개체수의 감소 및 수분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소에서 비롯된 세계적인 꽃가루 수정 위기에 관심을 집중시키고자 했습니다. 꽃이 피어나는 광경은 장관이지만, 요즘은 이와 같은 기적을 일으키려면 자연도 도움이 필요한 모양입니다. 한국의 배, 특히 신고배는 더더욱 그렇고요.  올해 4, 성환읍의 배농장을 방문해 지순태 사장님께 신고배의 복잡한 인공수분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배꽃이 만개하는 계절이 되면, 일일이 손으로 인공 수분 작업을 하여 암술과 수술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요일에 우리는 배농장을 다시 방문해, 인공 수분의 다음 단계인 적과 작업을 지켜보았습니다. 지사장님께서는 다시 한번 이 과정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막 열매를 맺기 시작한 배 중에 어떤 것을 남겨두어야 하고, 어떤 것을 따내야 하는지 구분하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엄격한 심사를 통과한 배는 손으로 일일이 포장해서 흠 없이 크고 둥글게 자랄 수 있도록 합니다. 지사장님께서는 이 일을 사랑한다고 하셨지만, 손이 많이 가는 힘든 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잘 자라서 미국으로 수출될 배를 직접 포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힘든 과정이지만, 지사장님을 비롯한 여러 농부들은 미래를 바라보며 열심히 땀을 흘리고 계십니다. 지순태 사장님은 과수원 일부를 이미 미국 수출용으로 지정해두셨고 다른 농부들도  미국 수출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적용하는 수입배에 대한 관세는 이미 매우 낮은데, 한미 FTA가 체결되고 나면 관세가 철폐됩니다. 가격 우위가 생기면 소비도 늘어날테고, FTA가 통과되면 한국 상품에 대한 미국 소비자들의 관심도 전반적으로 증대될 것입니다. 아직 가족, 친구들과 한국배를 나눠먹는 즐거움을 누려보지 못한 미국 소비자들도 하루 빨리 이 맛있는 과일을 맛볼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For U.S.A(미국수출용)’라고 표기된 봉투가 보이시나요?

 

시골길, 도시길을 따라가면서 환경에 대해서도 계속 생각했습니다. 월요일에는 서산 마애삼존불상을 보러 갔었는데요,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국보 84호로 지정된 마애삼존불상은 6세기 중반의 작품으로, 바위에 새겨진 한국 불상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세 분의 부처님이 각각 과거, 현재, 미래를 의미한다고 배웠습니다. 서산 마애삼존불상은 1950년대에 와서야 발견되었는데, 당시 이곳에 불상을 새긴 백제인들은 주변 환경을 고려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무성하게 자란 주변의 나무들과 지붕을 이루고 있는 바위가 부처님 세 분을 보호했고, 그래서 오늘날에도 조각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입니다. 해설사분은 실제로 이 조각이 여섯 개의 불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셨지만, 아쉽게도 네 번째 불상까지밖에 찾지 못했습니다.

 

경이로운 서산 마애삼존불상

 

긴 여정이 끝나고 맞바람이 불어오는 저녁이 되어, 천리포 수목원 관계자와 천리포 지역의 공무원분들을 만나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환경이라는 주제가 다시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수목원을 세운 칼 페리스 밀러는 한국으로 귀화한 미국인이었습니다. 해방 직후에 한국으로 와, 몇 해 전 돌아가시기 전까지 반 세기 동안 한국을 고향처럼 여기고 사셨다고 합니다. 천리포 수목원은 이제 세계적인 수준의 수목원이 되어 일반 대중에게도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천리포 수목원은 특히 410여종의 목련나무로 유명합니다. 여러분 모두 꼭 한번 방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