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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인물 /부임 3년 앞둔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美대사

바래미나 2011. 5. 15. 22:26

[인터뷰] “北 진정성 있는 행동해야 긴장완화… 아니면 대가 치를

부임 3년 앞둔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美대사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 대사는 우리 국민에게는 역대 어느 미 대사보다 친근하게 느껴지는 사람이다. 늘 밝고 온화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모습, 약간의 어색함이 남아있지만 유창하게 구사하는 한국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계층을 넘나드는 한국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스티븐스 대사는 지금껏 정치적인 역할의 비중이 컸던 주한 미 대사의 이미지에 '친근한 좋은 이웃'이라는 인상을 더해가고 있다. 스티븐스 대사는 "한국민들과 만남은 한국 정치를 이해하고 한국 경제의 움직임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소통의 통로"라고 말했다.

스티븐스 대사를 지난 12일 주한 미 대사관 집무실에서 만났다. 주한 미 대사관은 보안검사가 철저하다.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 이후 전 세계적으로 불거지고 있는 테러 위협 때문에 긴장도가 조금 더 높아진 것 같았다. 그러나 대사의 집무실은 평온해보였다.

스티븐스 대사는 한국과 미국 양쪽 모두에서 한·미 관계가 가장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시기에 대사직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한국민들이 자신에게 보여주는 따뜻하고 열린 마음이 감사하다고 전했다. 그런 그에게 가장 큰 좌절을 안겨주는 것은 북한 문제다.

그는 "북한과 관련된 사안은 솔직히 말해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진전은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북한이 이제껏 걸어온 길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한국과 국제사회는 바람직한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그간 북한에 분명하게 제시했지만 북한은 외면하고 있다"면서 "잘못된 길에는 대가가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2005년 6자회담에서 채택된 9·19공동성명에서 약속한 원칙을 북한에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북한이 올 들어 잇따라 화해를 원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있지만 말로 그쳐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그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행동"이라며 "북한이 진정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긴장 완화를 원한다면 진정성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과 미국이 북한에 일관되게 원칙 있는 대응을 해 온 것은 신중하고 적절한 방식이었다"며 "북한이 좀 더 건설적인 길로 들어서고 한반도가 보다 안정되게 유지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일관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남북 간의 대화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북한의 도발이 잦았던 지난해의 경우를 비춰보면 남북한의 화해와 대화는 중요하다. 그러나 남북 간 분위기를 어떻게 끌어가느냐는 북한에 달려있고 북한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시작전통제권이 한국군에 이전되면 유사시 한국에 대한 미군 증원이 약화될 것이라는 한국사회 일각의 우려를 일축했다. 전작권 전환은 한·미 간 한반도 방어를 위한 보다 효율적이고 강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지난해 천안함 피격, 연평도 도발 이후 한·미가 북한의 국지도발에 공동 대응키로 하는 등의 노력에서 보듯 양국은 한반도 방어를 위한 보다 체계적이고 치밀한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북한 핵에 대응하는 미국의 핵 확장 억지 약속도 양국이 함께 참여하는 확장억제위원회를 통해 협력과 조율이 이뤄지고 있다"며 "한반도에서의 분쟁발발 억제를 위한 미국의 공약은 확고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국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대해서는 "양국 모두에 혜택을 주는 윈-윈(win-win) 협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인은 훌륭한 지성을 갖추고 있으며 또 그간 균형 잡힌 판단을 해왔다"며 "앞으로 수주 또는 수개월 내 충분한 토론을 거쳐 좋은 결론에 도달할 것으로 본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로 올해 곤란한 입장에 처하기도 했다. 스티븐스 대사가 우리나라 외교관들과 나눈 이야기가 담긴 외교전문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한국 외교관들과 어색한 관계가 되지 않았는지에 대해 그는 구체적으로 답을 하지 않았다. 다만 주한 미 대사를 포함한 외교관들의 일반적인 임무를 설명했다.

"한국의 외교관들과 마찬가지로 미 외교관들도 주재하고 있는 나라의 주요 인사나 국민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이해하려고 한다"며 이는 마치 언론인들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정보를 알려고 노력하는 것과 같은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기밀에 해당하는 부분에 대해 사적인 견해를 나누는 것은 그 사안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티븐스 대사는 "현지 외교관들이 알게 된 사안을 본국 정부에 보고하고 공유하는 것 또한 외교관의 중요한 임무"라며 "이런 점은 한국 외교관들도 이해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위키리크스의 폭로로 몇몇 나라는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지기도 했다"며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는 없지만 훔쳐서 공개한 내용들 가운데 사실이 아닌 것들도 있다"고 말했다.

첫 여성 주한 미 대사인 스티븐스 대사에게 '여성 최초'라는 말은 낯설지 않다. 스티븐스 대사가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 1970년 초반에는 미국에서도 여성 외교관은 결혼하면 그만둬야 했다. 그만큼 보수적이었다. 그럼에도 78년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 그는 워싱턴과 중국, 한국, 북아일랜드에서 맡았던 직책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여성 외교관으로서 최초로 수행한 것들이었다. 80년 중국 광저우에 문을 연 영사관에 파견된 최초의 여성 외교관이었고, 83년 주한 미국 대사관 정치과에 근무한 첫 여성 외교관이기도 하다.

지금은 어디서든 여성 외교관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스티븐스 대사는 당초 여성이라는 사실로 큰 주목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자신의 존재가 한국 여성들 특히 여학생들에게 큰 격려가 됐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더 감동적이었다고 한다. 특히 딸의 결정을 존중하고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많은 아버지를 만난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한 음악회에서 한 신사가 다가와 자신의 딸이 나와 같은 외교관이 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며 "좋은 역할모델을 해주고 있다고 해 제가 한국사회에서 여성 리더십의 발전을 위해 작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YWCA가 수여하는 한국여성지도자상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이전 대사들과 달리 다양한 계층의 한국인과 교류를 하고 있다. 특히 자전거는 그와 한국인을 이어주는 중요한 도구이다. 그는 자전거 마니아다. 어렸을 때부터 자전거타기를 좋아했던 그는 국무부에서 일할 때도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했고 한국에 와서는 주말에 한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지난해 8월 29일 그는 '심은경 대사와 달리는 자전거길 600리' 행사를 갖기도 했다. 한국전역에서 자원한 대학생들과 함께 한국사의 중요한 이정표인 낙동강 방위선을 둘러보는 행사였다. 올해는 이달 28일부터 서해안 자전거 여행에 나선다.

그가 지난해 대학생들과 자전거여행을 했던 것은 한국 젊은이들이 주한 미 대사라는 고위직에 가질 수 있는 장벽을 허물기 위해서다. 궂은 날씨, 어려운 지형에 고생을 같이 하면서 스티븐스 대사는 학생들과 끈끈한 유대를 쌓았다. 굳이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런 방식이 한국 정치와 경제, 사회를 이해하는 더 깊은 길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에게는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진다. 그를 자주 접하는 김관진 국방장관은 "한국을 참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부드럽고 친근한 대사'라는 인상을 주고 있는 반면 정치·외교적으로 무게감 있는 발언은 적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에 대해 그는 외교관으로서 당연히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 여정을 직접 지켜봤다고 말했다. 그가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서 활동했던 75∼77년은 사회분위기가 경직된 시대였고 주한 미 대사관 정무팀장과 부산 미국 영사관 선임영사로 근무했던 84년부터 89년까지는 한국사회의 민주화 열기가 뜨거웠던 시절이었다. 그는 "20여년 만에 한국에 다시 부임하게 됐을 때 한국의 민주주의 여정이 어떤 결실을 맺고 있는지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설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올해 9월이 되면 부임 3년이 된다. 통상 주한 미 대사들의 근무기간을 감안하면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할 일이 너무나 많다"며 "바쁜 일정으로 그간의 활동을 차분히 돌아볼 시간이 없었지만, 무엇보다도 21세기 들어 새로운 한·미 관계를 구축해가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