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6·25 자료들(1950·06·25)

29. 인천상륙작전은 기습이었나?

바래미나 2011. 4. 22. 02:49

29. 인천상륙작전은 기습이었나?

2010/03/29 08:58 | Posted by Koreanwar60


 

  그동안 유엔군의 인천상륙은 대성공한 기습작전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1990년대 들어 중국과 구 소련의 많은 자료가 공개되면서 이와 관련하여 종종 반대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의 핵심은 인천상륙작전은 기습이 아니었다는 견해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중국이나 소련은 물론 북한 또한 사전에 상륙작전을 충분히 예견하고 있었다는 주장인데, 이에 대한 논란이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인천 외항에 집결된 상륙함대와 공중지원 중인 코르세어 공격기]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언급되는 것이 1950년 8월 유엔군의 상륙작전 가능성을 마오쩌둥이 북한 지도부에 경고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미국에서 활동하는 소련 측 첩자들이 사전에 정보를 파악하였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의견도 상당히 신빙성이 있습니다. 상륙군의 발진기지였던 일본에서는 거의 누구나 상륙작전을 예상할 수 있을 만큼 반공개 상태로 준비가 진행되고 있어서 북한 간첩이 이를 파악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또한 인천상륙작전 보름전인 8월 28일부터 경인지역에 북한군이 대폭 증강되었던 사실도 사전에 북한군이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제시됩니다.


  북한은 8월 28일 무렵, 인천방어지구사령부를 새롭게 창설하여 예하에 제106, 107연대 외에 제64해안보병연대를 추가로 배속시켰고, 9월초에는 철원에 주둔 중인 북한군 제18사단을 경인지역으로 전개시켰는데 이 부대는 3개 보병연대와 1개 포병연대를 갖춘 완편사단으로 T-34 전차 18대로 구성 된 제42독립전차연대까지 배속되어 있던 정예부대였습니다. 당시 북한군은 모든 것을 낙동강 돌파에 쏟아 붓고 있어서 후방이라 할 수 있는 서울지역에 이 정도의 정예전력을 유지하였다는 자체가 바로 상륙작전을 예상하였기 때문이라는 의견입니다.


[북한군은 전력을 경인지역에 배치하여 상륙전에 대비하는 듯 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사실 거대한 상륙작전을 오랜 시간에 걸쳐 준비하면서 완벽하게 비밀을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여 위의 주장처럼 막연하게라도 유엔군의 상륙작전을 북한 측에서 예상하고 있었다고 볼 수는 있습니다. 때문에 인천상륙작전은 기습에 의한 성공이 아니라 미군의 압도적인 화력에 의한 공격성공일 뿐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있게 다가옵니다. 그렇다면 인천상륙작전이 완벽하고 성공적인 기습이었다는 그 동안의 주장은 유엔군 측의 일방적인 과장에 불과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말인데, 사실은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도 연합군의 상륙작전을 예상했으나 지역을 정확히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노르망디상륙작전은 독일군의 의표를 찌른 기습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6·25전쟁 당시의 북한도 막연하게 상륙작전의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었을 뿐 정확한 날짜와 지역은 파악하지 못하였습니다. 1950년 8월 29일자 김일성이 행한 연설문을 보면 이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김일성은 유엔군의 상륙을 예견하면서 예상지역으로 인천 외에도 초도, 남포, 안주, 철산, 다사도, 원산, 함흥, 신포 등  한반도 해안가의 거의 모든 지역을 나열하였는데, 이런 주장은 군사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이 단지 상륙전을 대비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일 뿐입니다.


[여러 의혹제기에도 불구하고 인천상륙작전은 완벽한 기습이었습니다.]


  작전개시와 더불어 북한군을 혼란하게 만들기 위하여 동해안에서는 요충지인 삼척과 마양도에 대한 포격이 개시되었고 포항 장사동에서 소규모 상륙작전을 실제 감행되었습니다. 또한 서해의 군산 주변에서도 도로, 교량 그리고 철도 등에 대한 폭격은 물론 소규모의 미-영 해군특공대가 실제로 침투작전을 실시하기도 하였습니다. 더구나 군산 상공에 “시민들은 해안에서 철수해 내륙으로 피난하라”는 전단지가 살포되었을 정도였습니다. 또한 영국 항공모함과 순양함이 평양 근처에 있는 남포 일대와 평북 정주군 앞바다의 달양도를 공격해 북한군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북한이 유엔군의 인천상륙 가능성을 직접 깨닫기 시작한 것은 9월 13일 무렵, 함대가 인천 앞바다 출현하여 인천 도심을 맹폭하기 시작한 이후였지만 엄밀히 말해 이때부터 상륙작전은 시작된 것이었고 북한의 대책은 사후대응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여러 자료를 살펴보면 유엔군이 상륙작전 시 여러 곳에서 동시에 행한 기만작전 때문에 북한군은 상당한 혼란에 빠져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결론적으로 인천상륙작전은 완벽한 기습이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