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6·25 자료들(1950·06·25)

12.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한 승전보

바래미나 2011. 4. 22. 02:41

12.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한 승전보

2010/02/04 13:52 | Posted by Koreanwar60


  본격적인 미군의 개입이 시작되었어도 전세 역전은 고사하고 북한군의 진격을 정지시키는 것조차 여의치 않아 7월이 되어서도 아군의 후퇴는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와중에도 불구하고 개전초의 정신없던 상황을 조금씩 수습하고 나름대로 선전을 하며 위기의 순간에도 빛을 발한 부대가 있었습니다. 개전 초에 춘천지역에서 북한군 제2군단의 진출을 효과적으로 지연시켜 전략적으로 의미 있는 대승을 엮어내었던 국군 제6사단이 어둠 속에서 다시 한 번 빛을 발했던 것이었습니다.


[고난의 시기에 빛난 승전이 있었습니다]
(무극지구 승전기념관-사진출처 : 음성신문)


  제6사단은 육군본부의 지시에 따라 원주를 거쳐 이천-충주 일대까지 철수하면서 북한군 제2군단의 진격을 막아내었습니다. 춘천과 홍천에서 망신을 당하여 지휘부의 대부분이 교체되었을 만큼 독이 올라있던 북한군 제2군단은 공격 속도를 만회하기 위해 그 동안 예비로 두었던 제15사단을 원주에서부터 제1선에 내세웠습니다. 7월 3일에 북한군 제15사단이 장호원을 점령하자 충주-이천에 걸쳐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던 제6사단은 순식간 양분될 상황에 처하였습니다. 위기 상황임을 직감한 제6사단장 김종오 대령은 예하 제7연대에게 즉시 장호원을 탈환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명령을 받은 제7연대는 즉시 장호원에 인접한 음성 북방에 투입되었고 연대장 임부택(林富澤) 중령은 제1대대에게 음성에서 무극리로, 제3대대에게 동락리에서 생극 방향으로 각각 공격하도록 지시하고, 제2대대를 음성 북쪽의 부용산 일대에 배치하였습니다. 반격에 나선 국군 제7연대와 남진하여 내려오던 북한군의 선두가 부딪친 곳은 무극리와 동락리 일대였는데, 이때 동락리 일대를 공격하던 제3대대장이 대규모의 북한군이 출현하자 포위를 우려해 연대장의 승인도 없이 음성으로 철수하면서 동락리에서 산양리에 이르는 축선이 순식간 무주공산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제3대대의 철수를 동락리 주민들이 지켜보았는데 이런 우연한 결과는 아군에게는 대승을, 동락리 주민들에게는 비극이 되었습니다.


[동락리 전투 요도]


  아군 철수 직후 북한군 제15사단의 선두였던 제48연대는 동락리를 점령하고 “국군이 차량을 타고 철수했다”는 주민들의 증언 때문에 주둔지를 안심하고 인근 초등학교에 조성하였는데, 이런 북한군의 행태를 부용산에 배치된 아군 제2대대가 관측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동락초등학교 교사인 김재옥(金在玉)이 제공한 첩보에 따라 북한군이 경계병도 세우지 않고 식사준비를 하고 있을 만큼 경계태세가 상당히 약해져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런 판단에 따라 비록 경무장의 300여명의 제2대대였지만 중장비를 갖춘 2,000여명 규모의 북한군 제48연대를 급습하였고 순식간 북한군은 허물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더불어 독단적인 임의 철수에 대해 연대장으로부터 질책을 받은 제3대대가 동락리로 재출동하였는데 7월 7일 오후, 동락리 동쪽의 신덕 저수지 부근에서 제2대대의 공격에 허겁지겁 도망쳐 나오던 북한군잔당과 조우하게 되었습니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 제2·3대대가 거의 동시에 동락이 일대의 북한군을 포위 공격하게 됨으로써, 북한군은 순식간에 지리멸렬 하였습니다. 전사에 따르면 사살 2,186명, 포로 132명과 함께 장갑차 4대, 트럭 60대, 지프차 15대 등 1개 연대 분량에 해당되는 장비와 물자를 노획했다고 기록되었는데 이는 6·25전쟁 발발 이후 그때까지 거두었던 최대의 승리였습니다.


[분노한 북한군의 학살로 인하여 안타까운 희생이 발생하였습니다]


  이것은 건군 이래 최초로 제7연대 장병 전원이 1계급 특진되었을 만큼 위기 속에서 찬란히 빛난 엄청난 대승이었고, 패배 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다른 전선의 아군들에게 커다란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국군 제7연대가 이날 오후 작전상 동락리에서 철수하자, 뒤이어 마을을 점령한 북한군 제48연대 패잔병들은 “주민들이 거짓말을 해서 북한군이 기습을 받았다”면서 마을 주민들을 집단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고 이것은 아군의 빛나는 대승 속에서 아픈 역사의 상처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