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6·25 자료들(1950·06·25)

11. 스미스 부대의 붕괴

바래미나 2011. 4. 22. 02:40

11. 스미스 부대의 붕괴


  1950년 6월 30일, 결정이 나자마자 곧바로 미 지상군의 한반도 투입이 이루어졌을 만큼 미국의 6·25전쟁 개입은 상당히 빨랐습니다. 일본 점령군으로 임무 수행 중이던 미 제8군 예하부대 중 한반도에 가장 가까운 규슈(九州)에 주둔하던 미 제24사단에게 제일 먼저 출동명령이 하달되었는데, 제8군사령관 워커(Walton H. Walker) 중장은 시급한 상황을 고려하여 제24사단에게 우선 대대 규모의 특수임무 부대를 편성하여 부산으로 공수시키고 난 후 뒤이어 사단 본대를 한반도로 전개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일본에서 항공편으로 출발하는 스미스 부대]


  제24사단장 딘 소장은 예하 대대 중 가장 전투력이 뛰어나다고 판단한 제21연대 제1대대에 포병대와 약간의 지원부대를 증원시켜 특수임무 부대를 편성하였고, 이를 대대장 스미스(Charles B. Smith) 중령의 이름을 따서 스미스 특수 임무대(Task Force Smiths)로 명명하였습니다. 그리고 7월 1일 14시경 수송기편으로 스미스 부대가 부산에 도착함으로써 미 지상군의 역사적인 6·25전쟁 참여가 시작되었습니다. 부산 시민들은 이들을 대대적으로 환영하며 미군이 전세를 즉시 역전시켜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지체하지 않고 열차편으로 북상한 스미스 부대는 7월 5일 03시에 오산 북쪽 경부가도 상에 있는 교통요지인 죽미령인근에 방어진지를 편성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서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기던 중, 명령이 하달되자 당일 부대를 편성하고 다음날 부산에 도착한 후 대전과 평택을 경유하여 죽미령까지 숨 가쁘게 달려온 스미스 부대원들의 전투준비는 당연히 미흡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5년 전 사상 최대의 전쟁이었던 제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경험 때문에 미군들은 자신만만하였습니다. 스미스 부대원들은 ‘북한군은 미군이 참전했다는 사실만으로 스스로 물러갈 것’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였는데, 이러한 넘치는 자신감이 만용임이 밝혀지는데 불과 하루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대전역에 도착한 스미스 부대]


 
스미스 부대가 빗속에 허둥지둥 진지편성을 마치자마자 8대의 전차를 앞세우고 죽미령을 향해 다가오는 북한군의 행렬이 관측되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군은 한국군처럼 북한군 전차에 대한 공포는 없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사격하기에 가장 좋은 지점까지 다가오도록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7월 5일 07시 30분, 자신만만하게 75밀리 무반동총으로 사격을 가하여 북한 전차를 명중시키면서 한반도에서 미군과 북한군간의 최초 교전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타격을 입은 북한군 T-34전차는 잠시 멈칫했을 뿐 계속 전진하고 있었습니다. 놀란 미 보병들은 뒤에 배치된 제52포대로부터 지원 화력을 받았으나 적 전차는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미군을 보기만 해도 물러갈 것으로 생각했던 북한군이 생각과 달리 전차를 앞세워 전선을 돌파함과 동시에 보병을 좌우로 신속히 산개시켜 미군진지를 일순간 포위 돌파하면서 스미스 부대의 방어선은 순식간 붕괴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신만만했던 상황은 순식간 당혹으로 바뀌었고 6월 25일 국군들이 느꼈던 공포를 미군들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후퇴하는 국군을 한심스러운 듯 바라보던 스미스 부대원들
하지만 그들도 6시간의 전투 후 이 대열에 동참합니다 ]


  북한군의 진격 속도는 미군들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수준이었을 만큼 상당히 급속하였습니다. 죽미령 후방에 배치되어 있던 포병대조차 갑자기 정면에 나타난 북한군 전차에 짓밟혀 버려 산산조각 나 버렸을 정도였습니다. 불과 반나절의 전투로 스미스 부대는 440명 중 150여명이 전사하거나 행방불명되었고 포병대의 야포를 비롯한 모든 중화기는 망실되었습니다. 미군과 북한군의 역사적인 첫 전투는 이처럼 미군의 참담한 패배로 끝이 났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한 미군들은 후퇴하는 국군과 나란히 열을 맞추어 남쪽으로 도망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6·25전쟁 초기에 벌어진 미군의 참담했던 패배는 단지 이제부터 시작이었을 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