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6·25 자료들(1950·06·25)

13. 미 제24사단의 굴욕

바래미나 2011. 4. 22. 02:42

13. 미 제24사단의 굴욕

2010/02/06 17:35 | Posted by Koreanwar60

 
  스미스 부대의 오산 전개와 더불어 한반도에 후속 투입된 미군 부대는 미 제24사단 예하(의) 제34연대였는데, 7월 5일 저녁 경에 평택-안성을 연결하는 선에 포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방어선을 제대로 갖추기도 전에 죽미령에서 스미스 부대를 격파하고 무섭게 달려드는 북한군 전차부대의 위력에 압도되었고 다음날 아침에 평택을 포기하고 천안으로 후퇴해야하는 참담함을 맛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제34연대의 굴욕은 시작에 불과 했습니다.


[천안 시가지에 돌입하는 북한군]


  8일에는 후퇴하기에 바빠 방어진지를 구축하기도 전에 뒤 쫓아 온 북한군에게 천안을 내어주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연대장 마틴(Robert R. Martin) 대령이 전사하는 등 심각한 수준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마틴 대령은 처음 천안에 도착하였을 때 전투복이 아닌 간편복에 단화를 신고 부대를 지휘하였을 만큼, 바로 직전에 있었던 스미스 부대의 참담함에서 전혀 교훈을 얻지 못하고 북한군을 만만하게 보고 있었으나 상대를 우습게보았던 결과는 이처럼 참담한 것이었습니다. 요충지인 천안에서 얻어터지며 물러난 미 제24사단이 다음으로 선택한 방어선은 금강이었습니다.


  단순히 미군이라는 자신감과 이름만으로 북한군을 막을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달은 미 제24사단은 7월 12일 오후에 금강 이남으로 철수를 완료한 뒤 공주와 대평리에 각각 1개 연대를 배치하고 1개 연대를 예비로 후위에 배치하는 방어태세를 갖춘 후 7월 13일 금강의 교량은 물론 도선장과 나룻배까지도 모두 폭파하였습니다. 비록 국군이 한강교를 폭파하였을 때와 같은 비극이나 서두름은 없었지만 그만큼 상황이 절박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2개 사단으로 구성된 북한군이 금강방어선에 도달하였고 곧바로 전투가 개시되었습니다.


[강에 방어선을 구축한 미 제24사단]


  공주지역으로 진격한 북한군 제4사단은 치열한 포격과 함께 야음을 틈타 소형 목선을 이용해 기습 도하 후 곧바로 후방으로 진출하면서 후방의 미 제24사단 포병대대를 유린함으로써 전면에서 앞만 바라보고 방어 중인 제34연대를 놀라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결국 변변한 대응도 못한 제34연대는 패배의 무한반복을 계속하며 7월 15일 아침 논산 방면으로 후퇴하였습니다. 그러자 대평리 지역에서 방어 중인 미 제19연대의 좌우가 순식간 텅텅 비게 되었고 이틈으로 북한군 제3사단이 돌파하여 제19연대의 후방을 차단하여 버렸습니다. 결국 제19연대도 7월 16일 17시경, 모든 중장비를 파괴한 후 산악 능선을 이용해 유성 방향으로 철수하게 되자 딘(William F. Dean) 미 제24사단장이 기대를 걸었던 금강방어선은 3일 만에 어이없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이제 결전의 장소는 교통의 요지인 대전이었습니다. 천안부터 계속 얻어터지며 이곳까지 밀려 내려온 제34연대에게 대전 방어임무가 부여되었으나 전의도 상실하고 피해도 많이 입어 지쳐있던 1개 연대로 대전을 방어한다는 자체가 애당초 무리였습니다. 아직까지 북한군의 수적, 질적 우세는 계속되고 있었고 더구나 담당한 전선이 너무 넓어 틈이 많았기 때문에 북한군을 효과적으로 막기는 사실상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리고 북한군의 대전 공격은 숨 돌릴 틈도 없이 7월 19일 아침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딘 소장의 지휘 하에 격파된 T-34전차]


  하지만 이런 치열한 격전에도 불구하고 미 제24사단은 치욕을 겪었습니다.


  갑천을 중심으로 공방전이 하루 종일 계속되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방어지역 곳곳이 돌파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논산-대전 축선의 북한군 일부가 보문산 남측방으로 우회하여, 금산 및 옥천방향 도로를 차단하면서 제34연대는 다시 한 번 포위되어 버렸습니다. 결국 제34연대는 차량 등 중장비를 파괴한 후, 소부대로 분산된 채 산길을 따라 금산과 옥천 방향으로 철수하였고 이로써 중부 지역의 전략적 요충인 대전은 7월 20일 적의 수중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금강 및 대전 전투에서 미 제24사단은 2천여 명의 인원 손실과 대부분의 장비를 잃어 전투력을 상실하였습니다. 가장 큰 타격을 입고 낙동강까지 밀려난 제34연대는 전쟁 도중 해체되어 전투서열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유일한 6.25전쟁 참전 미군 연대라는 참담한 치욕을 겪게 되었습니다. 또한 선두에서 용감하게 부대를 지휘하였던 사단장 딘 소장은 철수 중 실종되어 36일 동안 산야를 헤매다가 북한군의 포로가 되면서 6.25전쟁 중 공산군의 포로가 된 최고위 인사라는 불명예도 얻었습니다. 너무 상대를 깔보았던 미군이 얻은 대가는 실로 무서운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