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Cafe USA

#84 셋째날 – 함안에서 창녕까지 | 심은경의 한국 이야기

바래미나 2010. 9. 2. 00:52

#84 셋째날 – 함안에서 창녕까지 | 심은경의 한국 이야기

 

지난 밤은 다소 스파르타식이었습니다 .우리는 군북면대 근처의 벌판에 커다란 텐트를 치고 (고맙게도 주한미군 측에서 도와주셨어요) 하룻밤을 보냈는데 새벽에 비까지 내려 새로운 날의 시작과 새로운 참가자들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그래도 또다시 날씨는 우리 편이었습니다. 이날은 뜨거운 태양, 퍼붓는 소나기, 그리고 정말 기적같은 무지개까지, 한국 여름 날씨의 종합선물세트였습니다. 

함안에서 커다란 텐트안의 하룻밤, 정말 잊지못할 경험입니다.

 

출발 이후 처음으로, 젊은 여성들이 참가자의 주류를 이루었는데 참 놀랍고도 기쁜 일이었어요.  이들은 남들과 똑같은 열정과 끈기로 하루를 버텨냈습니다. 

오전에는 자전거를 타면서 아름다운 한국의 풍경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이번 여정을 시작한 후 3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도, 들판의 곡식이 눈에 띄게 익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언덕을 힘겹게 올라가던 중에 한 젊은 참가자가 저에게 한국 속담을 하나를 알려주었습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이는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항상 겸손하고 온화한 태도를 유지해야 하며, 따라서 고개가 자연스레 숙여진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낙동강 쪽으로 이어지는 언덕을 힘껏 오르다보니 이같은 겸손과 겸허의 마음이 절로 느껴지더군요!  

익어갈수록 고개를 숙이는 들판의 벼를 보세요.

 

점심식사는 아주 특별했습니다. 우리는 2005년 복원된 의병장 곽재우 장군의 생가에 들렀습니다. 지역 관계자들과 만나서 생가의 역사와 의병장 곽재우 및 그의 혁혁한 전투 성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같이 이 아름다운 양반집에서 점심을 먹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저도 참 고맙고 즐거웠지만 학생들도 정말 좋아하더군요.    

곽재우 장군 생가 앞에서의 단체사진입니다.

 

생가 바로 앞에 있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은행나무를 보고 저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최소 500년은 되었다고 합니다. 나무 자체가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이 어마어마한 은행나무 좀 보세요!

 

오후에는 다음 목적지로 향하면서 처음으로 낙동강을 건넜습니다. 사실 그동안 남강도 건너고 낙동강 방어선을 지킨다는것이 어떤 의미인지 읽고 배우며 나름대로 이 날을 준비해왔지만, 드넓은 강과 강 건너편 둑에 맞닿은 날카로운 절벽을 가까이서 직접 보니 60년전 이곳이 어땠을 지, 이 지역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습니다.    

강을 건너고 있을 때, 비가 쏟아지기 시작해, 불과 몇 분만에 모두 흠뻑 젖었고, 창녕 박진 전쟁기념관에 도착했을 때에는 젖은 옷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서 과히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었답니다. 작지만 관리도 잘 되고, 유용한 정보도 많았던 기념관에서 우리는 담당 큐레이터와 지역 학자들,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만나서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으며 조금이라도 몸을 말리기 위해 젖은 옷을 짜기도 했죠. 비가 조금 잦아들자 가파른 언덕을 천천히 걸어 올라갔고, 언덕 위에서는 남지고등학교 학생 수십명이 우리를 환영해주었습니다. 헌화를 마친 후, 학생들과 함께 햇빛에 반짝이는 낙동강을 바라보았습니다. 세대를 뛰어넘는 한국인 및 미국인들과 함께 이 광활한 풍경을 바라보며, 저는 60년전 그들이 겪어야했던 위험과 고통, 희생을 떠올리면서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그리고 한국민들이 일구어낸 이 나라,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양국 국민간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박진 전투 기념비에서의 헌화 

 

남지고등학교 학생들은 다음 코스에서 우리와 함께 자전거를 탔습니다. 열정이란 쉽게 전해지는 것이어서, 다시 내리기 시작한 비도 이를 막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막 떠났을 때, 무지개가 떴습니다! 때로는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장소에 있는 것이 참 중요한 법인데, 우리가 오늘 딱 그랬답니다.    

저기 무지개 보이세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하루가 저물어갈 무렵, 다시 힘들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다들 지치고, 온 몸이 다 젖고, 덥고, 땀도 정말 많이 흘린 상태였습니다. 그렇지만 멋진 호텔방과 샤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괜찮았습니다. 오늘 하루의 시작은 텐트였으나 마지막은 편안한 호텔이었습니다. 오늘 이후, 특히 낙동강을 지난 이후, 우리가 오늘 이자리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이제는 정말 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