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세계를 가다

달라이라마가 사는 곳은 ‘개판’?

바래미나 2008. 8. 21. 17:26

[인도 오지 순례] ④ 다람살라의 견원지간

 

야생의 무법자 원숭이파에 맞세운 ‘파수꾼’

숙명의 라이벌도 황혼의 대전투 대신 공존

 

 

Untitled-2 copy.jpg


다람살라는 개판이다.

 

뭐라고? 티베트 불교의 정신 지도자인 달라이라마가 있는 다람살라가 개판이라고?. 티베트 불교와 달라이라마를 존중하는 사람이라면 단번에 화를 낼 말이다. 그러나 며칠만 다람살라에 머물다보면 다람살라는 개가 판치는 곳임을 곧 간파할 수 있다.

 

다람살라의 밤은 늘 요란하다. 개 짖는 소리, 개들이 서로 싸우면서 으르렁대는 소리로 하루도 고요할 날이 없다. 개소리는 달라이라마궁쪽까지 쩌렁쩌렁 울려 퍼져 메아리칠 정도다.

 

떼 지어 다니며 강도질하거나 빈집털이

 

다람살라를 돌아다녀보면 어디를 가나 개천지다. 인도에선 사람도 집 없는 이들이 많은 형편이니 집 없는 개가 어디를 가나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다람살라엔 어슬렁어슬렁 배회하는 개들이 더 많다. 그 가운데 광견병에 걸린 개가 없으리란 보장은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다람살라의 이런 상황을 간파한 한 독일인 의사는 수캐들의 불임수술에 나섰지만, 그래도 개 숫자는 날로 늘어만 갔다. 어떻게 해서 다람살라에 이렇게  개가 많아진 것일까.

 

그것은 원숭이 때문이다. 히말라야 북부 산중 마을인 다람살라에는 원숭이가 많다. 마을 안에는 그나마 개들 때문에 원숭이가 활보하지 못하지만 마을을 조금만 벗어나면 원숭이들이 떼 지어 다녔다.

 


 

티베트 정통 불교명상을 하는 투시타명상센터와 위파사나명상센터가 있는 다람코트쪽으로 올라가는 길엔 아기 원숭이의 손을 잡은 원숭이 부모들이 행인들을 오히려 구경했다. 이 원숭이들이 가끔씩 힘없는 여자나 어린 아이가 혼자 지나가면 핸드백이나 물건을 빼앗고 위협하기까지 했다.

 

이 원숭이들은 마을의 집으로 들어와 빨랫줄에 널린 옷이나 집안의 음식을 훔쳐 달아나기도 했다. 그러니 원숭이들을 막기 위해 집집마다 개를 키우게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다람살라는 원숭이판에 이어 개판이 된 것이다.

 

투시타명상센터에 머물 때였다. 이곳은 다람살라의 맥그로드 간지와는 걸어서 20분 거리 안에 있지만, 히말라야의 느낌을 만끽할 수 있을 만큼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러다보니 원숭이 천지였다. 명상홀에 드나들 때는 반드시 문을 닫도록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만약 홀에 아무도 없이 문을 열어놓으면 원숭이가 들어와 불단에 올려놓은 공양음식들을 집어 달아나거나 불상과 탕카와 불화를 훼손하기 일쑤였다.

 

물러갈 때쯤이면 몰려와 존재과시용 견제만

 

센터에선 내가 용감하게 보였는지, 아니면 늦게 도착해선지 대부분의 명상참가자들이 지내는 명상홀과 가까운 메인 숙소가 아닌 외딴 토굴 같은 집에서 거처하도록 했다.

 

첫날 내 방에서 문을 닫아걸고 옷을 갈아입는데 꼭 누군가가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창문을 보니 원숭이가 거꾸로 매달려 나를 보며 히히덕거리고 있지 않은가. 그 기분이란.

 

원숭이는 새벽과 초저녁이면 지붕과 나무를 그네 타듯 옮겨 다니며 쿵쾅거렸다. 나는 문고리를 걸어놓고도 원숭이가 창문이나 문으로 들어올까 봐 잠들기 전 문고리를 재삼 확인했다.

 

원숭이 천지니 명상센터에서도 원숭이들의 횡포를 막기 위한 개들을 키웠다. 명상센터엔 덩치 큰 대장인 검은 개와 덩치 작지만 털이 길고 날쌘 노란개와 막내둥이 흰개-이렇게 세 마리가 있었다. 

 

원숭이들이 아침저녁으로 출몰해 양철 지붕을 쿵쾅거리고 다닐 때면 개들은 목이 터져라 짖으면서 “잡히기만 해 보라”는 듯이 이곳저곳을 헐레벌떡 뛰어다녔다.

 

Untitled-3 copy.jpg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침 7시께 숲 위로 해가 떠올라 햇볕이 조금씩 들기 시작할 때면 아기원숭이들의 해맞이를 시키려는 듯 원숭이들은 아기들을 데리고 때를 지어 센터 명상홀 밑 라마 에쉬의 탑까지 진출했다.

 

20여분의 해맞이 뒤 원숭이들이 물러갈 때쯤이면 개들이 몰려와 “조금만 일찍 왔더라면 너는 죽었을 것”이라는 모습으로 씩씩댔다. 그리고 대장개는 자기 영역이라는 표시로  흙을 파고는 요소 요소에 오줌을 갈겼다.

 

저녁 해질 무렵이면 진출의 정도가 더욱 심해졌다. 먼저 날쌔고 젊은 원숭이들이 명상홀로 통하는 길 양 옆의 지붕과 나무 위에 적당한 간격으로 서서 방어막을 구축한 뒤 늙은 어미 원숭이들이 새끼들을 데리고 행진을 벌였다. 그 수가 자그마치 30~40마리나 돼 위세가 대단했다.

 

원숭이 또한 직접 손보는 대신 위협시위 그쳐

 

Untitled-1 copy.jpg구경거리 중 불구경과 싸움구경 만한 게 있을까. 더구나 원수의 대명사인 견원지간이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으니. 늘 일촉즉발의 위기여서 언제 투시타의 대전투가 시작될지 해질 무렵이면 조마조마하게 양쪽을 지켜보는 게 일과가 되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날마다 예고편만 있을 뿐 정작 전투 씬은 상영되지 않았다. 나는 10일 뒤 명상센터를 나올 때쯤에서야 그 비밀을 알았다. 개와 원숭이는 마치 싸우는 것처럼 페인트 모션을 쓸 뿐 결코 피 터지게 직접 싸우지는 않는다는 것을.

 

가장 막내인 하얀개는 원숭이들이 쿵쾅거릴 때면 많은 원숭이들의 위세 때문에 다가가지도, 그렇다고 참지도 못하고 천방지축으로 날뛰곤 했지만, 대장개는 그런 법이 없었다. 원숭이들이 시위할 때면 짐짓 모른 체 딴청을 피웠다. 그리고 원숭이들이 물러날 때쯤이면 나타나 위엄 있게 짖으면서 “내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지 말라”는 뜻으로 오줌을 싸서 영역을 표시했다.

 

원숭이 또한 시위만 할 뿐 하얀개가 날 뛰어도 직접 손을 보지는 않았다. 개가 아기 원숭이들을 해치지 못하도록 위협할 뿐이었다.

 

전쟁을 일삼고 죽고 죽이는 짓을 서슴없이 하는 인간에게 그 만한 금도라도 있다면…. 내가 한심하게 쳐다보곤 했던 다람살라의 원숭이와 개는 정말 피 터지게 싸우는 인간들이 얼마나 한심했을까. 그것도 견원지간도 아닌 동족끼리 죽이는 동물이.

 

조현 명상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