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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튀어나온 기도가 “제게도 아름다운 여신을”

바래미나 2008. 8. 21. 17:33

[인도 오지 순례] ⑥ 여신과의 사랑 (상) 

 

새벽 산상 명상하다 ‘사랑의 화신’ 발자취에 취해
금욕과 관능의 신, 창조 위해 파멸 구덩이 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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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루나찰라산의 꼬라를 돌기 위해 게스트하우스의 방을 나왔다. 꼬라는 산 한바퀴를 도는 의식이다. 아루나찰라산은 인도인들이 인도에서 수만의 신 중에서 가장 숭배하는 신 중의 신인 시바신의 화현, 시바신 자체로 믿고 있는 산이다.

 

근대 인도의 성자 라마나 마하리쉬(1879~1950)는 아루나찰라산을 우주의 심장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내면으로부터 “아루나찰라, 아루나찰라”라는 소리를 듣던 그는 아루나찰라산이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순간 환희에 젖어 이곳에 온 뒤 죽을 때까지 이곳에 머물렀다. 그러니 그 아루나찰라산의 기운을 느끼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3~4시간을 꼬박 걸어야하는데도 꼬라를 경험하고 싶어 한다.

 

망설이는 자에겐 변수가 나타나는 법, 그런데 여자다

 

그런데 출발하려고 보니, 자물쇠를 잠글 열쇠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남인도의 2월말은 벌써 한국의 여름 날씨나 다름없다. 3~4월이면 가만히 앉아 있기조차 힘들게 푹푹 찐다. 그래서 선선한 아침에 출발하지 않으면 더위에 파김치가 될 게 뻔하다. 그래서 아침 7시에 방을 나섰다. 이 시간도 빠르지 않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늘 갖고 다니는 열쇠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주머니와 손가방을 이 잡듯이 뒤져도 없다.

 

오늘도 꼬라를 돌긴 다 틀렸구나. 아루나찰라의 시바신이 나를 돕지 않는구나. 침대에 걸터 앉았다. 그랬더니 갑자기 열쇠가 허공에 둥둥 매달려 있지 않은가. 내 웃옷 단추에 걸려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열쇠는 나를 떠난 적이 없었다. 내가 그를 찾지 못했을 뿐.

 


 

벌써 시간을 너무 지체해 해가 중천에 떴으니 오늘 꼬라를 돌아야 할지, 아니면 내일로 미뤄야 할지 망설이며 게스트하우스를 나섰다.

 

돌진하는 자에겐 변수가 없지만, 갈등하며 멈칫거리는 자에겐 반드시 변수가 나타나는 법. 눈앞에 변수가 나타났다. 여자다. 난 “꼬라를 돌려면 어느 길로 가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지금 이 시간에 더워서 어떻게 꼬라를 도느냐”면서 “꼬라를 돌려면 새벽 일찍 가라”고 했다. 벌써 햇살이 따가왔다.

 

난 드디어 꼬라를 포기할 구실을 찾았다. 여행객들끼리 주스를 마시는 조그만 광장이 몇 발 앞 마하리쉬 아쉬람 앞에 있었다.  오고 가는 스와미들과 방문자들, 상인들을 바라보며 노닥거리기 좋은 곳이었다. 그와 나는 사과 주스를 시켜 마셨다.

 

그는 이곳이 처음이 아니었고, 여행에서도 내 선배였다.  나름대로 불교수행을 해온 그는 차분한 인상이었다. 그는 나와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묶고 있었다. 10일 동안 머문다고 했다. 난 앞으로 시간이 많으니 다음에 또 만날 수 있겠거니 생각하고 헤어졌다.

 

‘신 중의 신’ 시바의 화현인 아루나찰라산을 야밤에 올랐다

 

꼬라를 며칠 뒤로 미루는 대신 아루나찰라산 정상에 오르기로 했다. 산 정상 바위엔 시바신의 발자국이 있다고 했다.

 

그 뿐이 아니다. 정상엔 바바지가 머물러 있다고 했다. 어린 아이들조차 산 정상을 가리킬 때는 “바바지! 바바지!”하며 존경심을 감추지 못했다.  ‘바바’란 힌두어로 아버지란 뜻으로, 일반적으로는 사제를 일컫는다. ‘지’는 존경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바바지는 ‘존경하는 아버지’란 의미다.

 

또 힌두교인들은 인류가 정화와 영적 진보를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을 때 시바신이 육신을 지닌 바바지로 출현해 가르침을 펼쳐 신성한 근원과 합일을 이루도록 돕는다는 바바지 신앙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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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까지는 3~4시간 정도 걸리는 험난한 코스였다.  미리 야밤에 산을 오르기로 약속한 여행객 네명이 함께 올랐다. 산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지만 경사가 심한 바위산인데다 잔돌과 모래가 많았다.

 

산에 오르기 시작한 지 30분도 되지 않아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산 정상에 간 순례자들이 서둘러 내려왔다.

 

비지땀을 흘리며 산 정상에 올랐다. 아루나찰라산이 있는 티루반나말라이와 시내 중심에 64m의 거대한 높이로 서 있는 아루나찰레스르사원의 불빛이 빛나고 있었다.

 

정상에 오른 기쁨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열예닐곱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스와미들이 다가와 손을 자기 입에 대며 “쉿, 쉿” 한다. 움막 안에 바바지가 있으니 조용히 하라는 뜻이다.

 

바바지는 정상 부근 바위틈에 지어진 움막 안에 있어서 보이지 않았다. 스와미들은 그 쪽을 바라보는 눈빛부터 달랐다. 바바지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신을 모시는 것만 같다.

 

‘존경하는 아버지’인 바바지, 30년 전부터 꼼짝 않고 수행

 

이곳 바바지는 라마나 마하리쉬의 법제자에게 헌신해 아루나찰라산에 올라 수행하라는 스승의 뜻에 따라 30여년 전 정상에 올랐다고 한다. 이곳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앉아 수행하던 중 다리가 굳어버렸다고 한다. 그는 그 뒤 아예 정상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는 얘기를 한 여행객이 들려주었다.

 

“움막 안에 있지만 바바지는 일체를 보고 있다.”

 

어린 스와미들은 명상할 평평한 바위로 안내해준 뒤 바바지가 보고 있으니 열심히 하라고 했다. 귓속말하듯 소곤소곤 얘기하는 어린 스와미들의 모습이 우스웠다.

 

자리를 잡고 좌선 자세로 앉아 명상을 했다. 바람은 옆 바위가 막아주지만 찬공기가 콧속을 파고들었다. 산 아래는 한여름 더위인데 이곳은 가을 날씨였다. 더구나 밤이 되니 겨울 날씨에 가까웠다.

 

 밤 12시가 넘어 춥고 피곤하기도 해 침낭 안으로 들어가 잠을 청해봤다. 산 기운 때문일까, 바바지를 의식한 때문일까. 육신은 누워 있어도 정신은 더욱 초롱초롱해진다. 다시 앉아 명상했다. 스와미들은 여전히 잠을 자지 않는지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어둠 속에서 감지됐다.

 

새벽이 되자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바위 위에선 원숭이들이 해맞이를 하느라 일제히 동쪽을 바라보았다. 산 아래에선 볼 수 없었던 산과 주위의 장관이 한꺼번에 드러났다.

 

‘은총으로 가득한 감로의 바다시여, 당신의 광휘 안에 우주를 삼키시는, 오! 아루나찰라, 지극히 높으신 임이시여! 당신은 해가 되시어 제 심장의 연꽃을 지복 안에서 개화하게 하소서!’

 

라마나 마하리쉬는 아루나찰라를 보고 이렇게 찬송했다. 꼭두새벽부터 산을 올라온 두 명의 순례자가 시바의 발자국이 있다는 바위로 갔다. 바위 위엔 발자국 모습이 각인돼 있었는데, 사람들은 시바신이 내딛은 발자국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들은 그곳에 입을 맞춘 뒤 손을 합장했다. 뭔가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시바신은 간절한 한 가지 기도에 응답한다고 이들은 믿는다.

 

시바신 상징은 성난 남성 거시기…조각된 성애 장면 상상 초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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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 모습의 시바신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늘 보아온 시바신의 상징은 발기된 남성 성기다. 인도 사원 어디를 가나 이 링가를 볼 수 있다. 이 링가는 우주의 어머니, 또는 근원적인 생명력의 표현이다.

 

인도의 신화에서 시바신은 절대적인 지식만을 추구하는 요기지만, 늘 여신의 유혹을 받는다. 그는 결국 네 부인을 맞는다. 첫 번째는 신들의 계속적인 간청에 못 이겨 받아들인 사띠다. 자신이 요기일 때는 사띠도 요가 수행자로 남아야 하고, 사랑을 원할 때는 사랑스런 여인이 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붙인 이후에 부인으로 받아들였다.

 

다음으로 빠르바띠와 전사 두르가, 깔리도 시바의 부인으로 등장한다.  빠르바띠를 맞을 때 시바는 가장 큰 속박인 결혼에 관심이 없음에도 신들의 간청에 못 이겨 결혼을 승낙했다. 결혼식 때 얘기가 흥미롭다.

 

결혼식이 진행될 때 창조의 신 브라흐마는 빠르바띠의 아름다움에 매혹돼 자신의 정액을 흘렸다. 그 정액으로 인해 수천명의 성자들이 탄생했다고 한다. 그 위대한 성자들이 남의 여자가 탐나 흘린 정액에서 나왔다고 믿으니, 금욕적인 종교관임에도 남자들의 탈출구가 많아진 셈이 아닌가.

 

요즘 한국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카주라호의 고대 사원들에 조각된 성애 장면들은 상상을 초월한다. 남자의 성기를 여자가 빠는 것 정도는 보통이고, 천년도 넘게 집단 섹스와 함께 인간과 짐승 간의 섹스가 계속되고 있다. 힌두 제사 문화의 원조격인 아슈와메다 제사에선 전국을 돌고 온 말과 왕비가 성교하는 장면이 나올 정도다.

 

아뿔사!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그런 뻔뻔한 기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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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힌두교인들은 금욕을 중시한다. 육식과 음주를 금한다. 그래서 술도 한 도시에 1~2개밖에 없는 알코올주점이 아니면 살 수 없다. 고급식당이 아니면 일반 식당에선 술을 마실 수도 없다.

 

그렇지만 겉 다르고 속다른 것이 인도의 성 문화인지 모른다. 금욕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영화와 드라마는 얼마나 야한지 보는 이들을 황망하게 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섹스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극을 전개하다 야한 장면이 나올 때쯤이면 갑자기 정상적인 드라마가 뮤지컬로 바뀌어 관능적인 춤을 춘다. 성애장면을 묘사한 듯한 뮤지컬들은 직접 정사 장면을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자극적이다.

 

이렇게 사람들을 자극시켜놓고, 공식적으론 절제를 미덕으로 삼다보니, 성범죄가 적지 않다. 더구나 이렇게 금욕을 중시하는 나라가 에이즈 감염자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이고 머지 않아 세계 1위 국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에이즈는 윤락촌을 드나드는 기혼남성들과 고속도로를 달리는 트럭운전사 등에 의해 주로 전파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인도는 의료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데다 금욕적인 분위기 때문에 에이즈에 감염된 사실을 보건당국에 조차 감춰 이렇게 초고속으로 퍼지고 있다고 한다.

 

파괴와 창조의 참모습이 둘이 아니듯이 인도의 참상은 새로운 인도의 서막을 알리는 전조인지 모를 일이다. 어둠이 깊어지면 새벽이 가까워오기에.

 

시바신은 창조를 위해 일부러 파멸의 구렁텅이를 더 크게 판지 모른다. 늘 죽은 무생물처럼 대했던 시바가 아침 햇살을 받은 발자국을 통해 내 가슴에 선명한 자국을 남긴다. 금욕적인 고행자에서 사랑의 화신으로 변해버린 시바의 발자취를 따르고 싶어졌다. 나는 그의 발자국에 입맞춤하며 어처구니없는 기도를 하고 말았다.

 

“시바신이여, 제게도 아름다운 여신을 보내주소서!”

 

나도 모르게 시바신의 발자국 앞에서 나는 그렇게 뻔뻔스런 기도를 하고 있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동영상 장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