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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처럼 그녀가 왔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바래미나 2008. 8. 21. 17:38

[인도 오지 순례] ⑦ 여신과의 사랑 (하)


한갓 꿈이 된 달뜬 사랑의 비천함에 빠진 파멸
끼니도 거르고 헤매다 불현듯 핀 창조의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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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스런' 기도를 하고 아침 해를 받으며 하산했다. 하산하는 나를 붙잡고 어린 스와미가 종이쪽지 한 장을 전해주었다. 바바지가 준 것이라고 했다. 내려오니 벌써 해는 중천에 떠 있었다. 날샘하느라 피곤해진 몸을 씻고 내 방 침대에 쓰러져 잠을 잤다. 얼마나 잤을까.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열어보니 놀랍게도 그녀였다. 시바신이 이렇게 빨리 응답할 줄이야. 놀라서 말도 못한 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녀는 지금 이곳을 떠나기 위해 인사하러 왔다고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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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기 바람에 가슴이 ‘뻥’, 눈물이 바위를 뚫었다

 

나는 "너무나 아쉬우니 저녁이나 먹고 가라"고 했고, 그녀는 "짐을 정리해놓고 오겠다"며 나갔다. 30분쯤 지났을까. 그녀가 돌아왔다. 내일 떠나기로 했다며.

 

그녀와 나는 오토릭샤를 타고 시내로 나가 저녁과 맥주를 마시고 돌아왔다. 여자와 단 둘이 있을 때 특히 주변머리가 없어서 연애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나는 놀라운 용기로 그녀를 안았다. 그녀는 침묵의 수행자처럼 나를 받아들였다. 그녀는 열여섯 새악시 같은 사랑을 나누고 떠나갔다.

 

난 놀라 눈을 떴다. 아침이었다. 생시보다 더 또렷한 꿈이었다. 놀라서 그녀의 방에 갔더니 텅 비어 있지 않은가. 아무 것도 없었다. 정말 그녀가 떠난 것이다. 

 

관리인에게 "10일 간 머문다고 했는데, 어찌된 영문이냐"고 물었더니, 내가 오기 훨씬 전에 와서 머문 지 10일이 돼 떠난 것이라고 했다.

 

여신처럼 의존했던 대상이 꿈으로 허물어져 버렸다. 갑자기 한줄기 바람이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아무 것도 거치는 것이 없었다. 가슴은 뻥 뚫렸다. 

 

마하리쉬는 "생시는 길고 꿈은 짧다는 것 외에 둘 사이엔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했다. 그렇다. 아루나찰라산 기슭을 올랐다. 맨발이었다. 눈물이 흘러 발밑 돌 틈을 파고들었다. 그 눈물이 지금 시바신의 가슴을 적시고 있었다.

 


 

금욕적인 관능, 관능적인 금욕, 아! 새로운 사랑이 넘실거렸다

 

인도에 오기 전 성문제를 일으킨 한 성직자를 단죄한 일이 생각났다. 난 도덕군자의 화신처럼 단죄했던 것이다. 그러나 난 참지식을 추구한 시바와 사랑을 나누는 시바 가운데 후자를 택했다. 금욕적인 것 같지만 관능적인 인도와 인도의 신화가 바로 내 모습이 아닌가.

 

"저는 이웃집 젊은 여인의 가슴을 보면 정신을 빼앗기고, 때로는 그녀와 간음하고 싶은 유혹에 빠집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대는 순결하다. 그대를 유혹하는 것은 그대의 감각과 육체이며, 그대는 그것들을 그대의 진아(참나)와 혼동하고 있다. 누가 유혹을 당하고, 누가 유혹하는가. 그대의 참나는 물들지 않는다."

 

 마하리쉬는 제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러나 난 마하리쉬가 아루나찰라산에 기도한 것처럼 이렇게 기도했다.

 

'오, 아루나찰라! 높고 낮은 모든 중생들 안에서 빛나시는 자각의 보석이시여, 제 심장 속의 비천함을 소멸하소서.'

 

비천함과 욕됨을 씻고 싶었다. 하루 종일 끼니도 거른 채 나비처럼 흐느적거리며 걸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때로는 허물을 벗는 뱀처럼 거닐었다. 눈물은 시냇물처럼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나는 지금까지 어디에서 사랑을 찾았던 것인가. 불현듯 갈망이 멈춰 섰다. 시바의 발자국은 하늘로 이어지고, 드디어 내 가슴이 하늘 높이 사랑으로 넘실거렸다. 추하고 밉고 더러워 사랑할 수 없던 모든 것들이 마침내 아침햇살 속에서 제 빛깔을 찾았다. 나의 파괴요, 나의 창조였다. 한 방울 눈물 속에서 연꽃이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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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 동안 한 여승과 단 둘이 암자서 지냈다, 아무 일 없이

 

난 그날부터 우연히 만난 한 여승과 스칸다아쉬람에서 밤새 명상을 했다. 스칸다아쉬람은 라마나 마하리쉬가 말년에 산 아래 현재의 마하리쉬아쉬람으로 내려오기 전까지 오랫동안 머물렀던 산 중턱의 암자다.

 

밤중에 산에선 강간 사건 등 범죄도 자주 일어나 산에 머무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그곳은 밤엔 스와미조차 산 아래로 내려와 아무도 없이 원숭이들만이 지키고 있었다.

 

그 여승은 기이한 인연으로 아루나찰나산을 찾았을 뿐 산 아래 마하리쉬아쉬람엔 아예 들어가보지도 않는 별난 사람이었다. 난 여승과 1주일 동안 아무도 없는 암자에서 밤을 지샜다.

 

우린 밤 6시면 산에 올라 저 멀리 산 아래 도시 티루반나말라이의 거대한 사원을 바라보며 2시간쯤 얘기를 나누곤 명상에 들었다. 여승과 단 둘만의 밤샘이었지만 털 끝만한 욕정도 일지 않았다. 여승의 정진력은 놀라워 한 번 자리에 앉으면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새벽 6시까지 미동도 없었다. 이 시간 동안 다 말로 할 수 없는 경험들이 이어졌다.

 

새벽녘 명상을 마치고 별빛의 축복을 받으며 산을 내려오다 보면 아루나찰라산은 수정처럼, 마치 설산처럼 온 산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내 가슴은 일출의 태양처럼 벅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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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이었다. 하산하던 중 우연히 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땀에 전 종이쪽지가 잡혔다. 산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올 때 스와미들이 바바지가 준 것이라며 쥐어주었던 것을 지금껏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대는 어디에서 사랑을 찾았는가. 이렇게 모든 사랑이 그대 안에 있는데."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동영상 온라인 뉴스팀 장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