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세계를 가다

그렇게 열망했는데 정작 결별은 아픔

바래미나 2008. 8. 21. 17:16

 

회사에 1년간 ‘자비 연수’ 신청
히말라야는 늘 어머니 품같은 그리움으로
가출, 아니 출가의 진통은 생살 분리처럼


 떠나고만 싶었다.

 

가정을 이룬 가장에게 주어진 책무를 뒤로 한 채 떠나는 것을 주위의 누구도 선뜻 용납하지 않았다. 후회 없는 삶을 살겠다며 결행한 것이 더 큰 후회를 낳는 것이 인생사이기도 하지만, 한 번 마음먹은 것을 끝내 하고야마는 고집을 누가 꺾겠는가.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다. 난 늘 히말라야를 어머니의 품처럼 그리워했다. 망망한 바다 위 무인도에서, 맹수처럼 포효하는 파도 속에서 우는 나를 향해 히말라야가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까마득한 벼랑 아래로 떨어지는 꿈을 꾸다 엄마의 등 뒤에서 자궁 속 같은 깊은 잠에 빠진 아가처럼 난 어머니 히말라야를 꿈꾸고 있었다. 회사엔 1년간 ‘자비 연수’를 신청했고, 인도행 비행기에 올랐다.

 

 

떠난다는 것. 그것은 활시위를 떠나고픈 열망처럼 끊임없이 추구한 목표면서도, 정작 익숙한 모든 것과의 결별은 아픔이 되어 가슴에 꽂혔다.

 

“이것이 마지막은 아닐는지?”

영영 히말라야에 묻혀 살지도 모른다는 가족과 친구들, 직장 동료들의 한결같은 작별 인사에 나 자신조차 기약 없는 심정이 되어 길을 떠났다.

 

가출, 아니 출가의 진통은 생살을 분리해야 하는 일이었다. 40년 동안이나 익숙해온 모든 것들이 방울진 눈동자 위에서 어른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난 그렇게도 떠나고 싶던 ‘귀찮고 소란한 것’들로부터 멀어져 생경한 풍경 속으로 걸어들어가고 있었다.

 

순례는 멋지거나 행복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때론 더욱 슬프고, 아팠다.

 

태우려 태우려 해도 태워지지 않는 것들, 인도의 외진 게스트하우스에서  지친 몸을 잠재우려해도 백일몽처럼 이어지는 영상들. 도망치고 싶고, 벗고 싶고, 놓고 싶고, 떠나고 싶던 것들이 거기까지 와 있었다. 내가 어디에 가든 그림자는 나를 놓치는 법이 없었으니.

 

누구는 너무도 자유로운 세상을 피해 히말라야의 토굴이나 가톨릭 봉쇄수도원에 자신을 가두고, 누구는 감옥 안에서 세상의 자유가 그리워 눈물짓는다.
 

수행중인 조현 기자

히말라야에서도 내 각막을 덮는 것은 설

경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내 삶의 덮개로 때론 질식시키고, 때론 산소였던 뭇 사람들이었다.

 

싫어하고 좋아했던 은원의 모든 임들을 위해, 실은 끝내 이런 임들을 이곳까지 고이 모셔온 내 마음을 위해 희생의 제단에 서고 싶었다. 난 어느새 제사에서 단 칼에 머리를 잃은 양이 되었다. 피 같은 울음이 벌컥 벌컥 쏟아져 내렸다. 춤의 신 나따라자처럼 한 번도 손길이 닿지 않던 구석구석까지 몸은 비틀리고 전율했다. 눈 속엔 빨간 꽃무늬가 피어났다.

 

누군가는 상처에서 구더기를 토해내고,
누군가는 생채기에서 오색빛 진주를 토해낸다.

 

누구에게나 임을 만나기 위해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그토록 몸부림쳐도 만날 수 없고, 낳을 수 없던 아픈 세월이 있다. 그러나 우린 맨발이 화석이 될 만큼 오랜 순례 끝에 임도 아름다움도 잉태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된다는 것을 우연히 깨닫게 된다. 그토록 오랜 순례 또한 어서 빨리 해 마쳐야할 숙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삶이라는 것까지도.

 

조현 한겨레 종교전문 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