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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71 블랙버드

바래미나 2019. 1. 7. 13:46

SR-71 블랙버드
미사일조차 떨쳐버리는 마하 3.5의 스파이 항공기

출처=Daum Cafe: 한국 네티즌본부
SR-71의 비행 모습. <출처: 미 공군/Tech Sgt. Michael Haggerty>

개발의 역사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6·25전쟁이 터지면서 본격적인 냉전이 시작되자, 일명 ‘초강대국(Superpower)’으로 불린 미-소 양국은 서로가 충돌하게 될 경우 3차대전에 준하는 대전쟁으로 확전 할 것이라는 사실을 공감했다. 이에 따라 미-소 양국은 서로 간의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면서 상대방의 의중을 읽을 방법을 찾기 위해 골몰했다. 이렇게 두 초강대국 간의 첩보전이 심화되는 가운데, 미측은 우랄산맥 너머 소련 영내에 대해 갖고 있는 유일한 영상 정보가 2차세계대전 중 독일 공군(루프트바페[Luftwaffe])이 촬영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를 최신화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적 영토를 촬영하기 위해 항공기를 직접 투입하는 것은 엄청난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미 공군은 7만 피트(21,300m) 상공에서 정찰기가 비행을 한다면 현존하는 소련의 레이더 기술로는 포착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하여 미 공군은 고고도 정찰기인 U-2를 제작한 후 미 중앙정보국(CIA) 주도로 소련 영내에 침투시켜 영상 정보를 수집하려 했다. 하지만  프랜시스 게리 파워스(Francis Gary Powers, 1929~1977)가 조종하는 U-2기는 미군의 예상과 달리 2만 미터 이상 상공에서 소련 측 방공망에 걸려 격추당했으며, 심지어 파워스는 2만 미터 고도에서 조종석이 사출이 되지 않아 9,000m 상공까지 추락한 뒤에야 탈출에 성공했다. 1960년 5월 1일, 이렇게 냉전은 본격적으로 불이 붙게 되었다.

출처=Daum Cafe: 한국 네티즌본부
소련 영공을 정찰하던 고고도 정찰기 U-2 드래곤 레이디(좌)와 격추당한 U-2의 잔해(우).
하지만 이미 미국은 U-2기 격추 사건 이전부터 U-2기를 보완할 별개 개념의 항공기를 개발하고 있었다. 최초 U-2기를 탄생시킨 레인보우(Rainbow) 프로젝트는 U-2기의 레이더 탐지 면적(RCS: Radar Cross-section)을 줄이는데 실패했다. 이에 1958년부터 U-2를 설계한 록히드(Lockheed) 스컹크 웍스(Skunk Works)의 켈리 존슨(Clarence Leonard “Kelly” Johnson, 1910~1990)은 CIA가 발주한 구스토(Gusto)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곧장 U-2의 후속 기종을 개발하는 “아크엔젤(Archangel: 대천사)” 계획에 착수했다. 이 계획을 통해 나온 설계안은 곧 A-1, A-2.. 식으로 불렸으며, 프로젝트 코드 네임은 “옥스카트(Oxcart)”로 명명됐다. 이 중 A-11 설계안이 컨베이어(Convair) 사가 내놓은 ‘킹피쉬(Kingfish)’와 경합하게 되자 록히드는 해당 설계를 보완해 V자로 꺾인 미익 및 비금속성 재료를 반영한 A-12 설계를 내놓았다. CIA는 1960년 1월 26일 자로 록히드의 설계를 채택해 A-12 기체 12대를 주문했다. 이 상황에서 게리 파워스가 조종하는 U-2기가 소련 상공에서 격추당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에 따라 고고도로만 비행하는 정찰기는 효용성이 떨어졌다는 결론 하에 초음속 정찰기의 도입이 힘을 받게 되었다. 그 결과 CIA가 도입하게 된 A-12가 주목받게 됐다.
출처=Daum Cafe: 한국 네티즌본부
록히드사의 켈리 존슨이 설계한 "대천사" A11 설계안 <출처: CIA>
양산에 들어간 A-12는 1962년 4월 25일 네바다 주의 “에어리어(Area) 51”에서 시험 비행을 실시했으며, 총 13대 2가지 형상이 제작됐다. YF-12로 지정된 A-12 중 3대는 요격형 시제기였으며, 2대는 무인기 운용을 위해 개발한 무인기 통제기(Drone Carrier) 형상이었다. 일명 M-21로 지정된 이 기체 위에는 초고속 정찰용 무인기인 D-21을 장착하도록 설계했으며, M-21의 후방석에 앉은 발사 통제장교(LCO)가 무인기의 분리와 비행경로 관리, 자폭 등을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M-21 사업은 시험 비행 중 D-21 무인기가 분리 과정에서 모(母) 기체인 M-21과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1966년 부로 취소됐다.
A-12 초도 비행 <출처: 록히드-마틴 유튜브 페이지>
최초 YF-12/A-12에는 프랫 앤 위트니(Pratt & Whitney) 사의 25,000파운드 급 J58 엔진을 장착하려 했으나 엔진의 개발 일정이 지연됐기 때문에 할 수 없이 17,000파운드 급 J75 엔진을 설치했다. 이후 A-12의 개발이 진행되는 동안 J58 엔진도 완성됐기 때문에 A-12, YF-12, M-21, SR-71 모두에 J58 엔진을 채택했다. 하지만 개발 과정에서 예산이 지속적으로 초과한데다 A-12의 파생형인 SR-71 쪽에 더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하자 1966년 12월 28일부로 A-12 사업은 공식적으로 취소됐다. 하지만 이미 완성된 A-12 기체는 베트남전쟁뿐 아니라 북한 영내에도 침투하여 정보를 수집하다가 1968년에 전량 퇴역했다.
D-21 드론을 장착하고 비행중인 M-21 정찰모기의 1965년 모습 <출처: 미 공군>
미 공군은 A-12 사업이 종료되자 A-12의 파생형에 관심을 갖게 됐다. 록히드는 동체를 키워 연료량을 늘리고, 조종석 좌석을 2개로 늘렸으며, 동체 기수 쪽의 설계도 일부 변경했다. 또한 정찰용 장비로 신호정보 센서, 측면 탐지식 공중 레이더, 영상 촬영용 카메라를 탑재했다. 앞서 CIA가 도입한 A-12와 비교하자면 A-12 쪽이 더 고고도에서 고속으로 비행했고, 조종석이 하나라 여유 공간이 있어 부피가 큰 고성능 카메라를 장착할 공간이 확보됐으므로 영상 정보 수집 쪽에 더 특화가 되어 있었다.
비행중인 A-12 정찰기. 이 기체는 1968년 6월 6일 남중국해 상공에서 추락했다. <출처: 미 공군>
한편 베트남전쟁의 확전 가능성이 고조되던 1964년의 미 대선에서 공화당의 대선 후보인 베리 골드워터(Barry Goldwater, 1909~1998) 애리조나 주 상원의원은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1917~1963) 대통령을 승계한 린든 존슨(Lyndon B. Johnson, 1908~1973) 행정부가 첨단 무기 개발에 있어 소련에게 크게 밀리고 있다고 맹공했다. 이에 존슨 대통령은 이를 반박할 역전 카드로 YF-12A 요격기를 공개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게 됐다. 이를 통해 미국의 기술력이 소련에 뒤지지 않음을 증명함과 동시에, 아직 비밀리에 개발 중이던 A-12에 대해 적들이 오판하게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해당 기체는 발표에 앞서 정식 제식번호를 부여해야 했는데, 당시 공군 참모총장이던 커티스 르메이(Curtis LeMay, 1906~1990) 대장은 정찰기 형상을 정식 도입하면서 제식번호로 앞서 XB-70/RS-70 발키리(Valkyrie) 등에 붙였던 전략 정찰기 식별기호(RS) 보다 SR 쪽을 더 선호했다. 이에 린든 존슨 대통령이 공개 연설을 하기에 앞서 르메이 장군이 최대한 로비를 하여 존슨 대통령의 원고를 수정해 “RS-71” 대신 “SR-71”로 발표하게 했다. 이날 연설 전 기자단에게 배포했던 공보 자료에 RS-71로 표기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항간에서는 ‘대통령이 제식번호를 잘못 읽어서 그대로 굳었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초음속 제트기의 개발을 발표하는 린든 존슨 대통령의 모습 <출처: 유튜브>
미 공군은 SR-71의 요격기 형상인 F-12의 개발을 추진했으나, 1968년에 신임 국방장관으로 취임한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Namara, 1916~2009) 장관은 사업을 취소시키고 시제기인 YF-12와 SR-71 제작에 사용된 특수 치공구(治工具)도 모두 파괴할 것을 명령했다. 록히드는 29대의 SR-71A 형, 2대의 SR-71B 형, 그리고 1대의 SR-71C 형 등 총 32대의 SR-71 “블랙버드(Black Bird)”를 양산해 1999년까지 운용했다.
SR-71 초도비행 <출처: 록히드-마틴 유튜브 페이지>

특징
유려한 형상의 초음속 정찰기인 SR-71 <출처: 미 공군>
아직까지도 현존하는 유인기 중 최고로 빠른 항공기로 기록된 블랙버드는 공식적으로는 마하 3.3, 비공식적으로는 마하 3.5를 유지한 채로 장시간 비행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유인항공기다. SR-71은 적의 방공망과 요격기를 피해 정보 수집을 실시할 목적으로 개발되었으며, 최대 마하 3 이상의 속도를 내어 1976년 이래 세상에서 가장 빠른 공기 흡입 방식의 유인항공기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착륙 후 지상요원의 도움을 받아 하기(下機) 중인 조종사의 모습. <출처: 미 공군/Tech Sgt. Bill Thompson>
SR-71 블랙버드는 A-12에 비해 레이더 피 탐지 면적(RCS: Radar Cross-section)이 소폭 높은 대신 더 고고도에서 비행할 수 있었으며, A-12와는 판이하게 다른 정보 수집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블랙버드에는 측면을 볼 수 있는 측방 레이더가 장착되어 하방(下方)의 지형지물을 매핑(mapping) 할 수 있었으며, 좌우측 어디로든 사진 촬영이 가능한 고성능 카메라가 장착되었다. 하지만 단좌식인 A-12와 달리 SR-71은 복좌식이었으므로 고해상도 촬영에 필요한 사진 장비를 실을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SR-71의 카메라는 A-12보다 해상도가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레이더 장비와 촬영 장비, 그리고 항법 장비는 후방석의 정찰체계장교(RSO: Reconnaissance Systems Officer)가 관리한다.
엔진 테스트 중인 SR-71의 모습. 두 기의 J-58 터보제트 엔진은 최대 32,500파운드의 추력을 낸다. <출처: NASA/Tom Tschida>
SR-71은 고고도에서 비행하면서 마하 3까지 도달할 수 있었고, 독특한 외양과 색상에서 볼 수 있듯 레이더 피 탐지 면적(RCS: Radar Cross-section)이 최소화된 초기 단계의 스텔스(stealth) 설계가 일부 반영됐다. SR-71의 공식 최고 속도는 마하 3.5로 기록됐는데, 이는 리비아 상공에서 지대공 미사일을 떨쳐 내기 위해 최고 속도로 비행하던 중 수립된 기록이다.
출처=Daum Cafe: 한국 네티즌본부
빗속에서 착륙하면서 드래그슈트(drag chute)를 개방한 SR-71. <출처: 미 공군>
블랙버드는 시동용으로 설치한 V8 스타터(starter) 엔진 두 대로 메인이 되는 J-58 엔진을 점화하며, J-58은 음속에 도달하면 부분적인 램제트(ramjet) 모드로 들어가 음속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J-58 엔진은 높은 온도에서 연소되는 JP-8을 연료로 썼다. 일설에는 JP-8유에 불붙은 성냥을 던져도 폭발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런 말이 있을 정도로 JP-8은 점화가 쉽지 않지만 한 번 불이 붙으면 큰 열량을 내는 특징을 갖는다. 이 때문에 SR-71은 고속에서 안정적일 뿐 아니라 연료 효율성도 더 높아지는 특성을 가졌다.
SR-71의 비행시 표면온도 분포 <출처: 미 공군>
문제는 장시간 음속으로 비행할 경우 공기 마찰 때문에 외부 온도가 260도 이상으로 올라가 외장재가 파손되거나 벗겨지는 현상이 발생해 정비 소요가 크게 발생했다는 점이다. SR-71은 초음속 비행 시에 발생하는 엄청난 마찰열을 견디기 위해 외장재의 85%를 티타늄으로 제작했으며, 이음새도 줄여야 했기 때문에 리벳(rivet) 구멍 수를 최소화할 목적으로 특수 치공구를 사용해 외장재를 붙였다. 또한 엔진 흡입구도 초음속 돌파 때 음속 충격파 영향을 줄일 수 있도록 설계됐다. 엔진 흡입구 앞에 설치된 “스파이크(spike)”는 기체가 초음속에 돌입하더라도 주변 공기 흐름은 기체에 악영향을 주지 않게 유지된다.  캐노피 부분도 순수한 수정을 이용하여 제작했으며, 조종석 내부에는 열기를 식히기 위해 강력한 대용량 에어컨을 설치했다.
SR-71에게 공중급유를 실시하기 위해 특수하게 제작된 KC-135Q 공중급유기에서 바라본 SR-71 조종석. <출처: 미 공군/Michael Haggerty>
SR-71은 통상 임무 간 엄청난 열로 과열되어 착륙하기 일쑤였으므로, 기체 착륙 뒤에는 조종사와 지상요원들이 모두 일정 시간 이상 기체를 식힌 후 하기하거나 작업에 들어갔다. 랜딩기어 역시 초음속 비행 후 시속 310km/h로 내려오는 기체의 충격을 견디도록 특수 제작했다. B.F. 굿리치(Goodrich)에서 제작한 특수 타이어는 알루미늄 안에 질소가 충전되어 있으며, 약 20회의 이착륙 후에는 교체해야만 한다. 블랙버드는 착륙 후 감속용 낙하산(드래그 슈트[Drag Chute])을 개방하여 속도를 감속한다. SR-71의 조종석은 최대 8,000m에서 비행하더라도 일정 압력을 유지할 수 있으며, SR-71의 조종사는 장시간 초음속 비행 환경에 노출돼야 하므로 우주복에 가까운 조종복을 입는다. SR-71은 통상 24,000m 상공에서 비행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 항공기보다 더 많은 산소를 공급해야 하므로 조종사는 특수하게 제작된 보호성 압력복을 착용한다. 이 압력복은 마하 3.2로 비행하다가 사출할 경우에도 외기 온도 230도를 견디면서 충분한 산소를 공급할 수 있도록 제작되어 있다. 통상 SR-71의 조종사들은 장시간 비행 임무를 소화해야 하므로 물과 간단한 음식을 공급받는다. 조종사는 헬멧을 열면 긴 빨대를 통해 물을 마실 수 있으며, 간단한 식사는 치약 튜브와 흡사한 용기에 들어있어 조종사가 입으로 짜먹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출처=Daum Cafe: 한국 네티즌본부
기체에 탑승하기 위해 탑승차량을 통해 이동 중인 SR-71 조종사들의 모습. <출처: 미 공군/Tech Sgt. Bill Thompson>
앞서 말했듯 블랙버드는 사상 처음으로 RCS를 낮추기 위한 설계가 반영된 항공기였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오늘날의 “스텔스” 기술이 적용된 항공기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블랙버드의 RCS는 약 10㎡ 정도로 SR-71의 실제 동체 크기와 길이에 비하자면 매우 작지만, 소련 측은 블랙버드 등장 후 곧 이 정도 크기의 RCS를 포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SR-71의 RCS가 오늘날 스텔스 항공기 수준으로 낮아질 수 없던 가장 큰 이유는 엔진에서 발생하는 대량의 열 때문으로, 이것이 기체 뒤편의 산소 입자를 심하게 어지럽혔기 때문에 레이더에 그대로 포착됐다. 블랙버드에게는 레이더 재머(jammer)와 기타 전자전 대응 장비가 장착되어 있었기 때문에 적 미사일을 교란할 수 있었으며, 우주 관성항법장치(astro-INS)가 설치되어 기체 위의 별자리를 기준점으로 삼아 항공기의 위치를 역산해냈다.
특수 개조된 KC-135Q로부터 공중급유 중인 SR-71의 모습. <출처: 미 공군>
SR-71은 임무 특성 상 공중 급유가 필수적이었으나, 타 항공기보다 기본적으로 속도가 빠른 데다 외양이 독특했기 때문에 SR-71의 공중 급유를 목적으로 한 특수 급유기인 KC-135Q가 별도로 제작됐다. 통상 KC-135Q는 SR-71용 JP-8유를 별도 탱크에 수납하였으며, 공중 급유를 실시할 때는 통상적인 KC-135보다 빠른 속도로 비행하며 특수하게 제작한 파이프로 급유를 실시했다.
SR-71 동체 설계 소개 <출처: 미 공군 유튜브 페이지/Andrew Arthur Breese>

운용 현황
출처=Daum Cafe: 한국 네티즌본부
비행 중인 SR-71 블랙버드. <출처: NASA>
비공식 통계에 따르면 SR-71은 베트남전쟁 기간 중에만 800발이 넘는 지대공 미사일의 추적을 받았지만 단 한 발도 SR-71을 따라잡지 못했다. 유일하게 가장 격추에 가까웠던 사례는 CIA가 운용하던 A-12 근처에서 추적 미사일이 폭발한 경우였는데, 해당 기체는 착륙 후 약 100m 근처에서 터진 미사일 잔해가 동체에 박혀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 피해의 전부였다. 블랙버드는 총 30년 기간 동안 3,551회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중동, 북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상공을 누볐고, 총 11대가 사고로 추락하긴 했으나 적 포화나 미사일에 의해 추락한 기체는 단 한 대도 없을 뿐 아니라 목숨을 잃은 조종사도 단 한 명에 그쳤다. CIA에 따르면 SR-71은 북한 영공에서도 약 29회 이상 비행했으며, 그중 한 회는 미 해군의 정보함인 푸에블로(USS Pueblo)함이 북한에 나포되자 해당 함의 위치를 식별하기 위한 출격이었다.
실험용 장비를 동체 후미에 설치한 채로 비행 중인 미 항공우주국(NASA) 소속 SR-71. <출처: NASA/Jim Ross>
SR-71은 현존하는 그 어느 항공기보다도 여전히 빠른 속도를 자랑하지만, 1999년 약 30년의 수명 주기를 채운 뒤 수명연장 작업을 하지 않고 전량 퇴역했다. 이는 SR-71의 효용성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80년대를 거치면서 적 영토를 내려다볼 수 있는 첩보 위성이 증가하고, 무인 비행체 기술이 안정되면서 유인 정찰기를 대체하기 시작한 무인항공체계(UAS)가 SR-71의 임무를 대신할 수 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무인기의 경우 아직 속도나 기동성 면에서 유인기를 능가하기 힘들지만, 대신 인명 피해의 가능성이 완전히 차단되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필요할 때 적지에 투입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미 공군은 SR-71을 퇴역시킨 후 총 3대의 기체를 고고도/초음속 비행 실험용으로 NASA에 임대했다. <출처: NASA>
특히 블랙버드는 기본적으로 운용 비용이 높은 항공기에 속했는데, 이런 비용적인 측면도 미 공군에게 있어 SR-71 운용 상의 부담으로 작용했다. SR-71의 시간 당 운용 비용은 10만 달러에 달했으며, 초음속 비행 때문에 기체 외장재가 벗겨지거나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1회 임무 후 한 주 씩 정비에 들어가야 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SR-71은 1989년부터 퇴역 절차에 들어갔으며, 해병 조종사 출신인 존 글렌(John H. Glenn, 1921~2016) 상원의원 등이 SR-71의 퇴역을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미 공군조차도 SR-71을 퇴역시킨 후 그 예산을 타 사업으로 전환하기를 희망했다. 블랙버드는 1994년경 약 3대의 기체가 퇴역 상태에서 다시 현역으로 일시 복귀하기도 했으나 결국 1998년 부로 모든 기체가 퇴역했다. 미 공군 외에도 미 항공우주국(NASA)가 두 대의 SR-71을 운용했지만 이 기체들 역시 1999년을 기점으로 모두 퇴역했다.
SR-71 일부 기체는 NASA에 양도되어 1999년까지 운용됐다. <출처: NASA/Jim Ross>
일설에는 SR-71의 후속 기종으로 SR-72의 개발이 고려되었으며, 이 기체에는 극초음속 엔진 기술이 도입되어 마하 6까지 도달할 것으로 추측된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가 있었다. 미 국방부가 후속 기체를 생각하는 이유는 첩보위성이 원하는 곳을 즉시적으로 볼 수 없고, 위성은 공전 주기가 있기 때문에 적들이 위성의 존재만 파악하면 이 주기에 맞춰 주요 시설 등을 은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인기 대신 무인항공기를 사용할 경우 굳이 조종사 인명 손실의 위험을 안고 적지에 들어가 정보를 수집할 필요도 없고, 기체 크기도 작아 적에게 탐지 당할 가능성도 더 낮다는 점을 본다면 과연 미 국방부가 적지 종심 침투용 정찰기로 굳이 유인기를 계속 개발하려 할지는 의문스럽다. 실제로 미 공군은 공식적으로 SR-71이 수행하던 ISR(Intelligence, Surveillance, Reconnaissance) 임무를 모두 RQ-180 글로벌 호크(Global Hawk)에게 위임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전 SR-71 조종사 인터뷰 <출처: 록히드-마틴 유튜브 페이지>


파생형


SR-71A 블랙버드

양산형 형상. 총 29대가 제작되었으며, 3대는 미 공군이 NASA에 임대 형태로 양도했다. 

출처=Daum Cafe: 한국 네티즌본부
미 공군 보안병력이 SR-71 블랙버드를 지키고 있다. <출처: 미 공군>

SR-71B 블랙버드

교육 훈련용 형상. 총 2대가 제작됐다.

캘리포니아 주 비일(Beale) 공군기지에서 이륙 준비 중인 SR-71B 훈련용 형상. <출처: 미 공군/Tech Sgt. Michael Haggerty>

SR-71C 블랙버드

YF-12A 첫 기체(S/N 60-6934)의 후방 동체와 SR-71의 전방 동체를 결합한 일종의 시험용 기체. 후방 동체로 사용한 YF-12A는 1966년 착륙 사고로 거의 폐기 직전 상태였다. 이 “하이브리드” 기체는 초음속 비행 시 좌우 움직임이 불안정한 특성을 보여 “망할 자식(The Bastard)”이라는 별명이 붙어있었다. 단 한 대만 제작되었다.

힐 항공박물관에 전시된 SR-71C <출처: 미 공군>


제원


- 종류: 초음속 전략 정찰기
- 제조사: 록히드 항공(스컹크 웍스)
- 승무원: 2명 (조종사/정찰체계 장교[RSO])
- 전장: 32.74m
- 전고: 5.64m
- 날개 길이: 16.94m
- 날개 면적: 170㎡
- 자체 중량: 30,600kg
- 적재 중량: 69,000kg
- 최대 이륙중량: 78,000kg
- 차륜 거리: 5.08m
- 축간 거리: 11.53m
- 종횡비: 1.7
- 추진체계: 34,000 파운드 급 프랫&위트니(Pratt & Whitney) J58-1 연속 공기 제거식 애프터버너 터보 제트 엔진 X 2
- 최고 속도: 마하 3.3 
- 비행 거리: 5,400km
- 페리 범위: 5,925km
- 실용 상승한도: 25,900m
- 상승률: 60m/s
- 날개 하중: 410kg/㎡
- 추력 대비 중량: 0.44
- 대당 가격: 3,400만 달러 (32대 평균 가격, 1966년)


저자 소개


윤상용 | 군사 칼럼니스트  
예비역 대위로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머서스버그 아카데미(Mercersburg Academy) 및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육군 통역사관 2기로 임관하여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에서 군사령관 전속 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미 육군성에서 수여하는 육군근무유공훈장(Army Achievement Medal)을 수훈했다. 주간 경제지인 《이코노믹 리뷰》에 칼럼 ‘밀리터리 노트’를 연재했으며, 역서로는 『명장의 코드』, 『영화 속의 국제정치』(공역), 『아메리칸 스나이퍼』(공역)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