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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 병과 이야기(6) 이들 없이 싸울 수 없다

바래미나 2018. 9. 29. 01:40

군수/ 병과 이야기(6) 이들 없이 싸울 수 없다

열차편으로 S-300 대공미사일 포대를 이동하는 모습. 이러한 수송 임무를 포함해 군에서 군수가 담당하는 역할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출처: (cc) Sergeev Pavel at Wikimedia.org>
군수의 정의

군수(軍需, Logistics)는 군사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원을 동원하고 사용하는 모든 과정을 다루는 병과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정의처럼 담당하는 역할이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군이 전시에 무력을 사용하는 조직이다 보니 매체 등에서는 전투 병과가 중시되고 부각되는 경향이 많다. 그에 비한다면 군수는 마치 영화 속의 조연이나 보조출연자처럼 일부러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존재를 간과하기 쉽다.

하지만 군수가 유지되지 않고 군이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평소 사람들은 일상이 원활히 돌아갈 때는 인프라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거기서 얻는 혜택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조금이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곤혹을 치른다. 군수는 오히려 그 이상이라 단언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 극단적으로 군에서 군수라는 요소를 제외한다면 남는 것은 허허벌판에 놓여있는 벌거벗은 사람뿐이다.

제1차 대전 당시 야전에서 빵을 굽는 독일 취사병. 군량의 조달과 배급은 군수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 Bundesarchiv >

평시에도 군을 유지하는데 소모되는 물자가 많다 보니 군수의 역할은 막중하다. 특히 주둔지 밖으로 나가 전쟁을 벌일 때는 승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근대 군사 이론의 창시자 중 하나인 앙투안-앙리 조미니는 전쟁을 수행하는 3대 요소로 전략, 전술, 군수를 꼽고 그중‘전쟁이 벌어지면 아마추어는 전략을 고심하지만 프로는 군수를 먼저 생각한다.'라고 할 정도로 군수를 중시했다.

군수의 핵심은 ‘필요한 것을 필요할 때 필요한 곳에 공급’하는 것이다. 특히 갈수록 전쟁에 투입되는 물자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커지면서 군수의 비중이 증대되고 있다. 그런데 군수는 군이라는 상수를 제외하면 평소 민간에서 더 크게 이루어지는 일반적인 활동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일부 임무를 민간에 위탁하거나 효과가 입증된 시스템을 역으로 벤치마킹하거나 도입해서 작전 효율성을 높이는 추세다.

각종 장비를 바지선에 하역하는 모습. 이런 임무는 민간에 위탁하는 경우도 많다. < 출처: Public Domain >
군수의 역사

과거에는, 특히 원정의 경우는 현지에서 물자를 조달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교통수단의 미비로 말미암아 필요한 물자를 모두 휴대하거나 아니면 후방에서 지속적으로 보급 받으면서 전투를 벌이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종종 벌어지는 일이지만 근대 이전에는 점령지에서 약탈 행위가 일반적이었다. 사실 식량 정도를 제외한다면 화약의 등장 이전에 전쟁에 필요한 물품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1381년 프랑스군이 알로스트를 점령한 후 약탈을 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 이처럼 현지 조달은 오래된 방법이다. < 출처: (cc) Rijksdienst voor het Cultureel Erfgoed >
근대에 들어와 탄환처럼 현지 조달이 힘든 품목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현대적인 군수 체계가 구축되기 시작했다. 17세기 스웨덴의 구스타브 아돌푸스(Gustav II Adolf) 국왕이나 18세기 프랑스의 정복 전쟁을 이끈 나폴레옹 등은 이런 변화를 이끈 대표적 인물들이다. 하지만 생산성도 부족하고 인력과 축력을 이용하던 시기라서 원하는 만큼의 효과를 거두기는 어려웠고 산업혁명이후가 돼서 혁신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스타브 아돌푸스나 나폴레옹은 장거리 군수지원의 중요성을 깨달았지만 마차로는 여전히 한계가 있었다. < 출처: Public Domain >
현대에 와서 군이 고도로 기계화되면서 후방에서 공급받아야 할 품목은 더욱 많아졌다. 식량, 탄환, 연료, 부품 같은 전통적 품목은 물론 질병으로 인한 비전투 손실 등을 막기 위해 식수까지도 추진할 정도다. 이런 변화는 수송 수단의 발달에 힘입은 바 크지만 최근에는 여기에 최신 IT 기술이 접목되면서 실시간으로 소요제기, 생산, 재고, 공급 내용이 확인 될 정도로 진화했다.
상륙함 창고에 보급품을 적재하기 위해 작업 중인 미 해병대 < 출처: 미 국방부 >
군수의 영역

군수는 병참(兵站), 보급(補給)등으로도 불리지만 이론적으로는 이들을 모두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이다. 그만큼 담당하는 분야는 상당히 다양한데 그중 핵심적인 영역은 다음과 같다.

- 연구개발 
연구개발은 보유하지 못하거나 보유하고는 있지만 성능을 향상시켜야 할 장비와 물자 등을 생산, 획득하는 방법이다. 단독 개발이 어려울 정도로 많은 기술력이 필요한 무기나 물품은 국제 협력 사업을 통해 연구개발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국방과학연구소(ADD)는 무기 및 장비의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대표적인 기관이다. < 출처: 국방과학연구소 >
- 소요 
특정 기간 동안 부대가 임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자원의 양을 의미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동일한 부대라도 평시와 전시에 필요로 하는 양은 각각 다르므로 자원의 낭비를 막기 위해 이를 정확히 산출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일선에서 필요한 장비를 파악하고 준비하는 것도 군수의 일이다. 사진은 육군본부 군수참모부 주관으로 열린 워리어플랫폼 설명회의 모습이다. < 출처: 대한민국 육군 >
- 조달 
소요 제기된 장비, 물자, 시설 또는 용역을 적시에 획득하고 공급하는 프로세스 전반을 의미하나 협의의 의미로 획득하는 부분만을 뜻하기도 한다. 설령 전시라 해도 자원의 낭비를 막기 위해 경제적, 합리적으로 조달이 이루어져야 한다.
- 보급 
부대의 전투력 유지에 필요한 각종 재화를 획득, 저장, 분배, 처리하는 것이다. 특히 전시에는 승패의 결정적인 요소이므로 적시에 이루어지는 신속함이 요구된다.
주기된 AH-64D 공격 헬기에 유류를 보급하는 모습 < 출처: (cc) Jeffrey Roper at Wikimedia.org >
- 정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무기, 장비, 물자를 사용가능한 상태로 유지 또는 수리하는 활동이다. 일반적으로 군수에서 의미하는 정비는 사용 부대에서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부분이다. 또한 군 자체에서 실시하기도 하지만 전투기, 함정처럼 같은 경우는 장비는 외주를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AN/ALQ-165 재밍포드를 정비하는 모습 < 출처: 미 공군 >
- 수송 
목적물을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시키는 행위다. 신속성과 안전성을 고려해서 육해공의 모든 수단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을 선택한다. 모든 곳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지만 전시에는 군수 기지와 일선과의 연결이 가장 중요하다.
제2차 대전 당시 대서양을 횡단하는 연합군 수송 선단 < 출처: Public Domain >
- 시설 
건물 및 장비를 포함한 부동산과 여기에 부속된 각종 시설을 획득, 유지, 처리하는 무형적인 시설(기능)을 말한다.
시설 공사를 하는 모습. < 출처: 미 국방부 >
군수에 의해 판가름 난 전례

군수에 의해 승패가 갈린 사례는 흔하다. 모든 승리는 군수가 제 역할을 다 해주었을 때 이룬 것이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닌데, 특히 수세적인 방어전에서는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독소전쟁 중반이던 1942년에 독일은 독창적인 보급 방법으로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를 똑같이 사용하다 전쟁의 향방을 완전히 바꾸어버린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했다. 다음은 군수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 전례다.

2월 8일, 10만의 독일 제2군단은 소련 중부의 데미얀스크 일대에 형성된 포위망 안에 갇혔다. 이때 모스크바 점령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히틀러가 교두보 확보를 위해 현지 사수를 엄명하면서 제2군단은 후퇴를 포기하고 방어전에 나섰다. 독일은 사상 초유의 공수 작전으로 군수 지원에 나섰고 그 결과 4월 22일, 전세를 역전시켜 승리할 때까지 포위된 상태에서 싸울 수 있었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11월 22일, 소련 남부의 스탈린그라드 일대에서 비슷한 상황이 재현됐다. 소련군이 도심에 몰려 있는 33만의 독일 제6군을 포위했다. 이때 데미얀스크 전투의 승리를 기억한 히틀러는 현지 사수를 명하며 같은 방법으로 대응했다. 공수로 보급을 해주면서 외부에서 포위망을 분쇄할 생각이었지만 이번에 포위된 규모는 공군이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을 벗어난 수준이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설원의 비행장에 착륙 중인 Ju52 수송기. 6개월 전 데미얀스크 전투에서는 항공 보급으로 승리를 이끌었지만 같은 방식을 적용하기에 무리가 많았다. < 출처: Public Domain >
결국 두 달도 되지 않아 순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해 독일군은 더 이상 저항을 할 수 없는 상황까지 몰려 항복했다. 그렇게 소련의 대승으로 끝난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독소전쟁의 방향을 바꾼 거대한 전환점이 됐다. 불과 6개월 사이에 있었던 데미얀스크 전투와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상당히 유사한 상황이었지만 이처럼 규모에 따른 군수 능력을 정확히 고려하지 않은 오판 때문에 승패가 확연하게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