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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 병과 이야기(4) 기동전의 주역

바래미나 2018. 9. 29. 01:38

기갑 병과 이야기(4) 기동전의 주역

2016년 기동사열 중인 대한민국 육군 제20기계화보병사단의 위용. 제20기계화보병사단은 육군 최강의 기갑부대 중 하나다. <출처: (cc) 유용원의 군사세계>

기갑의 정의

기갑(機甲, Armored)은 각종 기갑차량을 이용해 전투를 벌이는 병과다. 기갑차량에는 전차, 장갑차, 자주포를 비롯해 다양한 각종 지원 수단이 포함되는데, 그 시작과 중심은 전차라고 할 수 있다. 전차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 고착된 전선을 돌파하기 위해 탄생했지만, 이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작전, 전술, 전략이 등장하면서 장갑차, 자주포처럼 전차와 보조를 맞춰서 함께 작전을 펼칠 수 있는 다양한 지원 수단도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전차와 여타 기갑차량의 편성 비율에 따라 기갑부대와 기계화부대로 구분하기도 하나, 일률적으로 규정된 것이 아니라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기갑의 임무 중 충격력과 속도를 이용해 적의 종심을 타격하는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오랫동안 이와 유사한 임무를 기병이 담당해 왔기에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볼 수 있고 미 제1기병사단처럼 현재는 기갑부대지만 전통을 살려 부대명을 승계하는 경우도 있다.

2003년 11월 13일 바그다드에 입성한 미 제1기갑사단 소속 M1A1 전차 <출처: TSgt John L. Houghton, Jr. / 미 공군>

기갑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확고한 기동전의 주인공이 되었다. 다양한 대전차무기의 등장과 작전 지역의 제약 등으로 말미암아 효용성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부류도 있지만, 현재 지상전에서 기갑만큼 빠르고 신속하게 전과를 확대해나갈 수 있는 병과는 없다. 병력 감축에 나선 대부분의 군사강국들은 지상군의 주력을 기갑으로 삼고 있기에 앞으로도 상당기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은 확실하다.

미 육군 기갑장교 초급지휘자 교육 과정 <출처: 유튜브>

기갑의 역사

1420년 보헤미아의 얀 지슈카(Jan Žižka)가 전투에 투입한 요새 마차처럼 전차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무기는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현대식 전차의 시작을 1916년 솜 전투에서 영국이 투입한 Mk 시리즈로 보는 데 그다지 이견은 없다. 그런데 Mk 시리즈는 최초의 현대식 장갑차이기도 하다. 따라서 오늘날 전차를 중심으로 부대가 편성되고 작전을 실시하는 기갑의 역사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최초의 전차인 Mk 시리즈 중 하나인 IX형은 30명의 병력이 탑승할 수 있어서 최초의 APC(병력수송장갑차)로 여겨지기도 한다. <출처: (cc) Mightyhansa at wikimedia.org>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차는 오로지 참호 지대를 안전하게 돌파하는 목적으로 개발되었지만,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좋은지 참고할 전례가 없었고 기계적 성능도 좋지 않아 커다란 전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종전 후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를 전훈 삼아 새로운 전투 기법을 연구하는 이들의 주도로 각국에서 다양한 연구와 시도가 이루어졌지만, 당시 보수적인 군부는 여전히 전선의 주역은 보병과 기병이라 주장하며 기갑은 부수적인 병과로 취급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거대한 변화가 벌어졌다. 독일군이 이후 전격전(Blitzkrieg)으로 불리게 되는 고속 기동전을 선보이면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워낙 공간이 컸던 동부전선 같은 경우는 모든 곳에 전차를 투입할 수는 없었으나, 전쟁의 향방을 결정짓는 중요한 전투에서 기갑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한마디로 전쟁 중반기 이후부터 전차 없이 전투를 벌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1940년 프랑스 침공 당시 숲속 통로를 가르고 배후로 진격하는 독일군 전차. 기갑이 주축이 된 기동전은 이후 전격전으로 불리게 된다. <출처: (cc) Bundesarchiv>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기갑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보병에 비해 창설, 유지에 많은 비용이 들어가지만 전투력이 좋아 소련은 일부 특수 목적 부대를 제외한 모든 지상군을 기갑·기계화부대로 편성했을 정도였다. 중동전쟁, 걸프전, 이라크 전쟁처럼 전투 공간이 광활한 곳에서는 전선의 주인공 노릇을 톡톡히 했다. C4I를 기반으로 하는 네트워크전이 대세가 되면서 향후 기갑의 작전 영역은 더욱 확대될 예정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기갑부대의 활약상 <출처: 유튜브>

현대 기갑부대의 주요 장비

전차

전차는 기갑의 핵심이다. 방어력, 기동력, 화력이라는 3대 요소를 바탕으로 공격에 나섰을 때는 앞장서서 전선을 돌파해 적의 종심을 타격하는 역할을 담당하며 방어에 임해서는 아군을 보호하며 적의 공세를 막아낸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전차를 보병부대에 골고루 분산시키는 것보다 일정 규모 이상의 제대를 구성해 작전을 펼치는 것이 효과적임이 입증되었고 오늘날도 같은 방식으로 운용한다.

초기에는 경전차, 중형(中型) 전차, 중(重)전차, 보병전차, 순항전차처럼 크기와 임무에 따라 종류가 다양했지만, 오늘날은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모든 작전에 투입할 수 있는 MBT(Main Battle Tank: 주력전차)가 대세가 되었다. 오늘날 MBT에서 최초의 전차인 Mk 시리즈의 모습을 떠올리기는 힘들지만, 내부에 탑승한 인원을 보호하기 위해 장갑을 갖추고 자력으로 움직이면서 전투를 벌이는 방식은 원론적으로 변한 것이 없다.

러시아군의 최신 전차인 T-14 아르마타(Armata). 등장 전에는 모습을 놓고 추측이 많았지만 정작 차체에 포탑을 얹은 전통적인 방식을 따랐다. <출처: (cc) Vitaly V. Kuzmin at wikimedia.org>

가장 최근 배치된 러시아의 T-14도 유지하고 있듯이 1917년 프랑스의 FT-17이 360도 회전이 가능한 포탑을 무한궤도로 움직이는 차체에 부착한 형태는 이후 전차의 기본적인 골격이 되었다. 반면 차륜형 차체에 포탑을 장착한 장비는 장갑차로 분류한다. 전차의 먼 미래에 대해서는 기술 발달에 힘입어 무인 전차가 등장할 것이라는 예측과 대전차전의 발달로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이 상존하고 있다.

장갑차

장갑차는 전차와 더불어 기갑부대를 구성하는 양대 축이다. 전차와 장갑차는 한 뿌리에서 시작되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전차가 고유의 영역을 구축하며 진화하는 동안 장갑차는 차량에 공격용 무기를 탑재한 형태나 야지 기동력을 높인 트럭처럼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다. 그렇게 정의가 확실하지 않다가 현재 기갑부대에서 보병을 보호하며 전장으로 이동시키는 목적으로 이용되는 장갑차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 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전차가 강력하지만 보병의 지원 없이 단독으로 작전을 펼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제는 전차가 아무리 둔해도 보병보다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함께 보조를 맞춰가며 작전을 펼치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트럭이나 하프트랙(Half-Track) 같은 차량이 이용되었지만 최전선에서 보병을 안전하게 보호하며 전차와 함께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 요구되면서 장갑차의 등장은 필연이었다.

미국의 주력 IFV(보병전투차)인 M2 브래들리(Bradley) <출처: Shane A. Cuomo / 미 공군>

현재 경전차 같은 일부 전투차량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장갑차는 보병을 보호하며 전장으로 이동시키는 목적으로 이용된다. 자체 보유 전투력에 따라 크게 APC(Armored Personnel Carrier: 병력수송장갑차)와 IFV(Infantry Fighting Vehicle: 보병전투차)로 구분되지만 기본적으로 보병을 수송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사실 양자 간의 차이는 크지 않다. 장갑차는 기갑차량이나 이를 이용하는 병사들의 입장에서 보아 기계화보병의 장비로 구분하기도 한다.

자주포

북한군의 제620포병군단처럼 상당히 특이한 편제도 있지만, 포병은 지원 병과이므로 여타 전투부대의 예하에 속해 있거나 전시에 배속되어 작전을 펼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차도 강력한 주포를 보유하고는 있으나 단거리 교전을 위한 직사포여서 원거리에서 적진 제압을 위한 타격이 어렵다. 따라서 기갑부대도 공격 시에 사전 정지나 후퇴 시에 적을 차단하기 위해 당연히 포병이 필요하다.

자주포는 견인포에 비해 장점이 많기 때문에 최근에는 보병도 장비하는 추세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부터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기갑부대는 속도를 맞추기 위해 일찍부터 사용했다. 처음에는 기존 궤도 차량에 곡사포를 거치한 수준이었지만 최근에는 작전 효율을 높이기 위해 처음부터 별도 차체를 개발해서 사용하기도 하고 대포병전을 염두에 두고 포탑까지도 장갑을 두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기갑사단이 주로 사용한 M7 프리스트(Priest) 자주포. M3 전차 차체에 105mm M2 곡사포를 탑재한 형태다. <출처: Public Domain>
미 육군 기갑병과 창설 기념 영상 <출처: 미 육군>

기타 지원 장비

기갑의 장점이자 존재 이유이기도 한 돌파력을 살리려면 사전 정지 작업을 하고 개척로를 확보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데 이는 공병의 몫이다. 기갑부대는 중량의 전투 수단을 사용하므로 보병부대에 비해 다양하고 더 많은 공병 장비를 갖추고 있다. 장애물개척전차, 교량전차 등이 대표적으로 전차, 장갑차, 자주포 등과 속도를 맞추기 위해 기갑부대에 속한 공병은 대부분이 자주화·차량화되어 있다.

훈련 중인 대한민국 육군 제3기갑여단 소속 BMP-3 장갑차와 KM-9 공병도저장갑차 <출처: (cc) 유용원의 군사세계>

기갑은 보병보다 탄약, 유류 같은 소모품을 많이 소모하기 때문에 이를 지원하기 위한 각종 운송수단이 필요하다. 또한 대부분의 장비가 고가이고 제작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므로 적에게 노획당하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폐기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전투 중이라도 수리해서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구난이나 수리를 위한 장비가 필요하다. 이처럼 보급, 수송, 정비에 쓰이는 각종 장비들도 자주화·차량화되어 있다.

구난 및 수리에 사용되는 M88A2 장갑회수차량 <출처: Gunnery Sgt. Rome Lazarus / 미 해병대>

최근에는 고성능의 야시장비, 열화상장비 때문에 이점이 많이 사라진 편이지만 하늘에서 공격을 가해올 때 보병은 그나마 은폐·엄폐가 신속하고 쉬운 편이다. 이에 반해 주로 개활지에서 작전을 펼치고 장비의 규모가 큰 기갑부대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쉽다. 이처럼 기갑에게 방공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여서 자주화·차량화된 대공화기가 함께 이동하며 작전을 벌인다.

현대전에서 헬기를 비롯한 각종 항공 지원 수단은 모두가 원하지만 특히 기갑에게 필수적인 장비다. 스카우트헬기나 공격헬기로 정찰, 공격 등의 임무를 수행하거나 본진이 진격하기 전에 강습헬기를 이용해 교두보 확보 등을 위한 침투 병력을 투사하기도 한다. 특히 공격이나 후퇴 시 중요한 길목의 선점은 기갑에게 작전의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므로, 헬기와 같은 항공 장비의 역할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미 제1기병사단 소속 AH-64 아파치(Apache) 공격헬기 <출처: Sgt. Alun Thomas / 미 육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