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 병과 이야기(5) - 제일 먼저 그리고 가장 나중에
공병의 정의
공병(工兵, Military Engineers)은 폭파, 축성(築城), 가교(架橋), 건설, 측량 등을 담당하는 병과다. 이중 건설, 토목 등의 임무 때문에 지원 병과로 아는 이들이 많지만 공격 시에는 본진보다 먼저 전선에 투입되어 통로를 개척하고 반대로 후퇴 시에는 적의 공격로를 파괴하고 가장 나중에 퇴각하기에 보병, 포병, 기갑 못지않게 상당히 중요한 전투 병과다. 그래서 흔히 공병의 모토가 First In, Last Out이다.
공병은 크게 전투공병(Sapper)과 시설공병(Engineer)으로 구분한다. 일반적으로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전투공병은 여타 전투부대의 엄호 하에 진격로 개척, 방어 시설 격파 같은 임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상륙이나 도하처럼 적진 한가운데서 시급하게 교두보를 확보해야 하는 경우나 시설을 파괴한 후 마지막으로 퇴각할 경우에는 직접 교전을 벌이기도 한다. 그만큼 위험한 임무를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주로 후방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시설공병은 건설공병이라고도 하며 각종 시설이나 구조물을 건설하고 관리한다. 최근에는 민간에게 임무를 위탁하기도 할 만큼 토목업이나 건축업과 비슷하다. 그 외 도하공병을 별도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전투공병이나 시설공병의 한 부분으로 보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대민지원 등으로 인해 시설공병을 많이 떠올리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공병의 핵심은 전투공병이다.
공병은 임무 성격상 다양한 장비들을 운용할 수밖에 없다. 특히 진격로 확보가 상당히 중요한 기계화, 기갑부대 등이 현대 지상군의 주력이 되면서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공병의 역할과 규모도 함께 커졌다. 때문에 공병은 평시에 국가적인 재난이나 재해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복구에 투입되는 중요한 자산이고 점령지 민사작전이나 평화유지군 활동에서도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최초의 공병
전장의 구조가 세분화 된 오늘날은 공병이 담당하는 역할이 명확하지만 예전에는 보통의 병사나 노역에 동원된 시민들이 그때그때 임무를 담당했다. 특히 건설, 축성처럼 시설을 구축하고 관리하는 시설공병의 임무는 인류 문명이 시작된 순간부터 있어왔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지금의 입장에서 보면 공병의 영역이라고 구분할 수 있겠지만 과거에는 특별히 별도의 병과로 운용하지 않았다.
현대 공병의 역사는 화약의 등장과 이를 이용한 폭파 기법이 등장하면서 공성 목적의 전문 병사들을 육성한 16세기에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전투공병을 일컫는 Sapper는 프랑스에서 요새나 성벽 공략 시 공격군이 이용할 접근호를 파는 군인인 Sapeur에서 유래되었다. Sapeur은 삽이나 도끼 같은 도구를 이용해서 성벽까지 갈지(之)자 형태로 참호를 파서 흔히 대호공병(對壕工兵)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현대적 공성 기법을 완성한 이는 프랑스의 보방(Seigneur de Vauban)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요새 축성에 뛰어난 능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한마디로 약점을 알기에 공략하는 방법도 고안한 것이었다. 이후 이 보다 진화한 전술이 갱도 채굴(Mine)이다. 아무리 호를 잘 파도 상대의 공격을 막기 어렵고 화약으로 성벽을 무너뜨리기 힘든 경우도 많았기에 갱도를 파고 들어가 적진을 폭파했다.
현대 공병의 주요 임무
지뢰 제거
지뢰, 부비트랩, IED처럼 아군의 진격을 막는 각종 폭발물을 제거한다. 탐지기를 이용해서 일일이 수작업으로 제거하거나 전문 장비를 이용하기도 한다.
진격로 개척
철조망, 벙커 같은 각종 장애물을 제거하고 파괴된 교량, 도로, 철도 등을 복구하는 임무다. 앞에 언급한 지뢰 제거도 진격로 개척의 일환이다.
지뢰 살포
아군이 후퇴할 경우 또는 대치 중에 적의 진격을 지연, 거부시키기 위해 지뢰나 유사한 방어물을 설치한다. 일일이 매설하는 경우도 있으나 KM138, M136 같은 살포기를 이용한다.
폭파 및 폭발물 제거
공격 시에는 진격로 개척의 일환으로 적 구조물을 폭파하기도 하지만 후퇴 시에 적의 공격을 지연시키거나 사용하지 못하도록 교량, 도로, 철도, 항구, 비행장 등을 파괴한다. 반대로 적들이 설치한 폭발물을 제거하는 임무도 수행한다.
축성
지형을 이용하거나 인공적으로 아군을 보호하기위한 각종 시설을 구축한다. 주로 점령 후 경계지나 주둔지를 확보할 때 이루어진다. 소규모 진지 구축은 일선 부대가 직접 한다.
방어물 설치
적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철조망, 목책, 바리케이드, 크레모어 등을 설치한다. 규모가 작을 경우 일선 부대가 직접 한다.
부교 가설
진격로를 개척하거나 혹은 반대로 아군의 신속한 후퇴를 지원하는 임무다. 폭이 좁은 곳은 다양한 이동 교량을 이용하지만 거대한 하천은 별도로 부교를 가설한다.
상륙 및 도하 지원
본대의 상륙이나 하천 도하전에 침투해서 수중, 해안가, 강안의 각종 장애물을 제거한다. 이 임무에서 시작되어 특화된 전력이 UDT(수중폭파팀)다.
측량 및 지도 작성
정찰, 관측 등으로 지형을 측량하고 지도를 작성한다. 평시 공병의 중요한 임무라 할 수 있고 전시에는 역할이 더욱 막중하다.
시설 건축
시설공병의 가장 대표적인 임무다. 전투용뿐 아니라 각종 전투지원 시설, 비전투 시설 등을 건축하고 유지 보수한다. 평시에 군대의 유지 보수나 재해 복구를 위해 활약하고 전시에도 주로 후방에서 작전을 펼치므로 최근에 와서 민간에게 위임하는 경향이 많다.
이동 정수
야전에서 식수는 전투력과 직접 관련이 있는 문제다. 질병 예방을 위해 후방에서 보급을 해주는 것이 원칙이나 불가피하게 현지에서 조달할 경우 정수를 해야 한다. 공병은 이동용 정수 장비를 운용해서 해당 임무를 수행한다.
현대 공병의 주요 장비
TNT를 비롯한 각종 폭발물
전투공병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무기이자 도구라 할 수 있다. 각종 시설이나 구조물을 파괴하는 용도로 공격은 물론 후퇴 시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지뢰 제거 장비
각종 폭발물을 이용해서 지뢰 지대를 신속히 돌파할 수 있도록 통로를 개척하는 장비. 미군의 미클릭(MICLIC, Mine-Clearing Line Charge)이 대표적이다.
장갑전투도저도저
삽날을 부착한 기갑 차량으로 주 임무가 장애물을 제거해서 진격로를 열어주는 것이다. 그 외 참호 및 각종 시설 구축, 도하 진출입로 개설 등에 투입된다.
지뢰살포기
차량에 탑재해서 신속하게 지뢰지대를 형성하는 장비. 광범위하게 대인, 대전차지뢰를 설치할 수 있지만 추후 매설 지역을 확인하기 어려워 주로 후퇴 시 사용한다.
다목적 굴착기
굴착, 수송, 보수, 통로 개척 등 다양한 역할을 하는 공병 차량으로 소형의 로더, 굴착기, 유압 햄머, 체인톱, 지게차 등의 기능을 갖추었다.
리본 부교 및 문교
교량이 없거나 파괴된 지역에서 전투 및 지원부대의 신속한 하천 도하를 돕기 위한 장비로 도하공병이 운용한다.
도저
배토판을 부착해서 정지, 굴착, 제설 등에 사용하는 토목 장비.
굴삭기
토사 굴토, 적재 등에 사용되는 장비로 민간 건설 장비와 차이는 없다.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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