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병 병과 이야기(2) 지금도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병과
기병의 정의
기병(騎兵, cavalry)은 말을 타고 전투를 벌이는 병과다. 보병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 있으므로 기동력이 뛰어나고 충격력을 이용해 적진 돌파 임무도 수행한다. 약 200년 전에 기차가 등장하면서 인간은 비로소 말보다 빠른 육상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시대와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기록으로 남겨진 전쟁사에 반드시 등장할 정도로 기병은 보병 다음으로 역사가 오래되었다.
원론적으로는 말 이외에 당나귀, 소, 낙타, 코끼리처럼 가축화된 동물에 탑승해서 전투를 벌이면 이들도 기병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한니발(Hannibal)의 원정 사례처럼 코끼리를 타고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이 가장 먼저 수송 수단으로 삼았을 만큼 관리의 편이성, 속도 등을 고려할 때 말이 기병을 대표하는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떠한 임무 행위까지를 기병으로 볼 것인지는 의견이 조금 분분한 편이다.
마차를 이용한 수송부대는 당연히 아니지만, 말을 타고 작전 지역까지 신속히 이동한 후 내려서 전투를 벌이는 부대도 기병으로 볼 수 있나 하는 점이다. 기병을 이제는 사라진 전투 병과로 보는 이유가 더 이상 말을 타고서 싸울 수 없게끔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를 반대로 생각한다면 기병은 경우에 따라 하마(下馬) 전투도 벌이지만 일단 승마(乘馬) 전투가 기본이라 할 수 있다.
기병의 역사
기원전 4000년경부터 인간이 말을 사용했던 것으로 밝혀졌으므로 비슷한 시기에 기병이 등장했다고 추측할 수 있고, 기원전 2500년경 수메르 시대의 벽화에 기병이 그려져 있다. 하지만 기원전에 초원의 북방 기마 민족들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안장(鞍裝)과 등자(鐙子)가 서양까지 보편화되기 시작한 8세기 이후부터 말을 타고 자유자재로 전투를 벌이는 행위가 일반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오래전부터 말을 탔고 기병도 존재했지만 그리스, 로마 시대를 비롯한 서양 고대사에서 보병이 군의 주력이었던 이유도 이와 관련이 많다. 말을 다루는 능력이 상당히 뛰어난 이라면 칼이나 활로 싸울 수도 있었지만 등자를 사용하지 않으면 자세 제어가 몹시 어려워 주로 창을 이용해서 전투를 벌였다. 튼튼한 갑옷과 말의 빠른 속도와 충격력을 이용해 장창으로 보병 방진을 돌파하는 모습은 마치 오늘날의 전차와 같았다.
이처럼 고대 말부터 대세가 된 중기병(重騎兵)은 중세에 들어와 전문 집단이 되어버린 기사의 상징이 되면서 기수는 물론 말까지 두터운 갑옷을 장비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고, 비슷한 시기에 당, 송 같은 중원(中原)도 마찬가지였다. 몽골로 대표되는 초원 기마 민족도 중기병을 운용했지만 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기동력이 뛰어난 경기병(輕騎兵)을 앞세워 유라시아를 지배하면서 점차 경기병이 대세가 되었고 그런 트렌드는 20세기까지 이어졌다.
총은 기병의 영욕을 함께 불러온 요인이다. 머스킷(musket) 시대를 지나 말을 타고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총이 등장한 직후에 기병은 더욱 강력한 돌파의 주역이 되었다. 이른바 카빈(carbine)처럼 기병에 특화된 소총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동시에 보병이 보유한 총과 공용화기도 비례해서 강력해지자, 기병은 순식간 거대한 표적으로 전락했다. 결국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전투부대로서의 기병은 전선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기병의 분류(18세기 이후 현대식 군제 기준)
흉갑기병(胸甲騎兵, Cuirassier)
방어용 흉갑을 입고 충격력으로 적 보병 대열을 돌파하는 중기병.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까지 일부 국가에서 존재했으나 현대전에 어울리지 않아 사라졌다.
후사르(Hussar)
기동력이 좋은 소형 아랍마를 이용해 정찰이나 추격 임무를 수행한 경기병. 15세기에 헝가리에서 유래되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검을 사용했기에 볼트액션식 소총 등장 전까지는 어느 정도 위력을 발휘했으나 19세기 중반에 사라졌다.
창기병(槍騎兵, Lancer)
창으로 싸우기 때문에 기원으로 따진다면 가장 오래된 기병이라 할 수 있다. 현대에 들어서 주무장이 총으로 바뀌었지만 근접 돌파 시 창의 충격력이 좋아 20세기 초까지 많은 나라에서 활약했다. 폴란드의 울란(Uhlan)은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 실전에 투입되기도 했다.
용기병(龍騎兵, Dragoon)
원래는 말을 타고 작전 지역까지 신속히 이동한 후 내려서 싸우는 보병이었지만, 18세기를 거치면서 평범한 경기병을 의미하게 되었다.
총기병(銃騎兵, Carbineer)
승마 상태에서 교전을 벌일 수 있도록 카빈총으로 무장한 기병. 19세기에 흉갑기병과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사라졌다.
기병의 흔적
말을 탄 상태에서 전투를 벌이는 고유한 의미의 기병은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까지도 존재했다. 당시에도 기병의 효용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이들이 있었지만, 가장 직전에 벌어졌던 강대국 간의 충돌이었던 프로이센-프랑스 전쟁(보불전쟁) 당시에도 나름대로 역할을 했기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당연한 병과로 여겼다. 하지만 전쟁이 벌어진 지 6개월 만에 기병은 단지 말을 타고 전선까지 빨리 이동할 수 있는 존재로 전락했다.
기갑부대가 맹활약했을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전선의 주인공은 보병이었고, 수송의 상당 부분을 마차가 담당했다. 기병도 일부 존재했지만 말을 타고 전선으로 이동하는 부대였을 뿐이었다. 두고두고 왜곡 대상으로 삼았던 폴란드군 기병대가 대표적이지만, 정작 독일군도 같은 성격의 부대를 운용했다. 전선이 넓고 이동 수단이 부족했기에 말도 당연히 이용했다. 하지만 승마 전투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불가능했다.
현대에 와서 험지에서 특수 작전이나 정찰 임무 등을 벌이는 기병이 있지만, 역시 이 또한 말을 이동 수단으로나 이용할 뿐이다. 오늘날 작전 지역에서의 이동은 차량이나 항공기가 담당하면서 말을 사용하는 경우는 예외적이다. 이를 제외한다면 오늘날 남아 있는 기병은 거의 대부분이 행사용 의장대다. 이는 반대로 생각한다면 기병이 그만큼 역사와 전통을 상징하는 병과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만 기병이 담당했던 신속한 이동과 충격력을 이용한 전선 돌파의 임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갑·기계화부대가 이를 담당하면서 그 역할이 커졌다. 때문에 미 육군의 제1기병사단처럼 구성이나 임무가 완전히 바뀌었지만 부대와 전통을 존속시키는 사례도 흔하다. 단순히 생각하면 말이 전차, 장갑차, 헬기로 바뀌었을 뿐이지 기병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저자 소개
남도현 | 군사저술가
『히틀러의 장군들』,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육,해,공군,종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병/ 병과 이야기(5) - 제일 먼저 그리고 가장 나중에 (0) | 2018.09.29 |
---|---|
기갑 병과 이야기(4) 기동전의 주역 (0) | 2018.09.29 |
포병 병과 이야기(3) 여전히 강력한 힘 (0) | 2018.09.29 |
보병 병과 이야기(1) 군의 기본 (0) | 2018.09.29 |
방공 병과 이야기(7) 이들이 막아줘야 이길 수 있다 (0) | 2018.09.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