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봄이 되어서야 깨달은 교훈
모스크바 전투에서 승리하자 흥분한 스탈린은 1942년 1월 8일, 곧바로 공세를 명령했습니다. 일선에서는 부대를 재편한 후 작전을 벌일 것을 요청했지만 그는 거부했습니다. 전쟁 발발 이래 연이어 기록적인 참패를 당한 후 최초의 전략적 승리를 거머쥐자 스탈린은 지금까지 겪었던 굴욕을 하루빨리 복수하고자 조급했습니다. 어쩌면 군사 문외한인 그가 취할 수 있는 당연한 행동이기는 했습니다.
[ 최초 승리에 흥분한 스탈린은 계속 공세를 명령했습니다 ]
하지만 희망은 망상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결론적으로 석 달 동안 빼앗긴 땅을 소련이 회복하는데 3년이 걸렸을 만큼 고난의 끝은 아직도 멀었습니다. 스탈린의 고집으로 시작 된 공세는 4월까지 100일 간 계속되었으나 독일군의 3배가 넘는 30만의 인명 피해를 얻고 실패로 끝났습니다. 독일은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 하지만 결국 소련의 패배로 막을 내렸습니다 ]
이처럼 스탈린이 희망을 갖게 만들고 또한 좌절시킨데 영향을 준 것은 날씨였습니다. 나폴레옹의 원정 사례처럼 우리는 러시아가 날씨를 이용해 전쟁을 유리하게 이끄는 재주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들도 곤혹을 치루고는 했습니다. 독일군이 눈보라에 막혀 모스크바 공략이 좌절 된 것이 엄밀히 말해 날씨 자체보다 이를 대할 준비를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 혹한에 곤혹을 치렀지만 준비 부족이 문제였습니다 ]
독일은 분명히 소련의 겨울 날씨를 잘 알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전쟁 전에 상황을 너무 유리하게 해석해서 준비를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독일은 4월에 소련 침공을 개시해 10월까지 모스크바를 점령하고 항복을 받아 낼 자신이 있어서 놀랍게도 처음부터 동계전투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독일 기상 당국도 1941년 겨울은 예년보다 따뜻할 것으로 장기 예보했습니다.
[ 독일은 겨울 전에 소련을 점령할 수 있다고 낙관했습니다 ]
하지만 예정에 없던 유고슬로비아 점령으로 침공이 두 달이나 연기되면서 10월 모스크바 점령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예상과 달리 1941년 겨울은 전 유럽을 얼어붙게 만든 40년 만의 혹한이었습니다. 12월이 되었을 때 수은주는 영하 30도 아래로 곤두박질 쳤고 모든 것이 얼어붙었습니다. 사실 이 정도라면 본고장 사람들도 감내하기 힘든 수준입니다.
[ 모스크바 전투 당시 항복한 독일군과 소련군의 복장만 봐도
동계전투에 대한 양측의 준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
소련군은 추위를 대비하고 있었던 반면 독일군은 봄이 되어서야 동계 피복을 지급받았을 만큼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 상태에서 독일군이 어려움을 겪은 지극히 당연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날씨가 아니라 악조건에서 싸울 준비를 갖추었는지의 여부가 승패를 갈랐던 것이었습니다. 동계전투 준비를 충실히 한 소련이 모스크바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것은 어쩌면 당연했습니다.
[ 결국 추위에 대비한 준비 여부가 승패를 갈랐습니다 ]
그런데 처음에 소개한 스탈린의 실패도 날씨를 무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봄이 되면 거대한 러시아 평원은 눈과 얼음이 녹아내리면서 온 천지가 진흙 밭으로 바뀌는 '라스푸티차'가 시작됩니다. 흔히 겨울 눈폭풍과 더불어 독일의 진격을 막아낸 최고의 방어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 관련글 참조 ) 정작 라스푸티차는 소련군의 움직임도 방해했습니다.
[ 진흙 구덩이에 빠져 소련군이 포기하면서 유기 된 전차
소련이라고 라스푸티차를 극복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
1942년 봄에 벌어진 소련의 공격을 막아낸 일등공신이었습니다. 차라리 지난겨울에 독일은 낯선 곳에서 싸웠다는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소련은 자기 땅에서 실패했습니다. 스탈린은 소련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성급한 작전을 지시했고 결국 진흙에 빠져 허우적거렸습니다. 해동기에 금기시 되어야 할 공세를 감행함으로서 필요 이상의 피해를 스스로 당했던 것입니다.
[ 라스푸티차는 지금도 러시아 평원에서 흔한 자연현상입니다
그런데도 스탈린은 이를 무시하다가 곤혹을 치렀습니다 ]
이처럼 1941년 겨울에서 이듬 해 봄으로 이어진 경험은 두고두고 교훈이 되었습니다. 이후부터 겨울 혹한은 어느 누구에게도 특별히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고 라스푸티차 기간에는 서로 공세를 자제했기에 휴전 아닌 휴전이 반복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되기까지 양측 모두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결국 가장 큰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바로 인간 자신이었던 것이었습니다. [ august 의 軍史世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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