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이트패스를 협궤열차로 넘다
금 채굴이 이 지역 역사의 거의 모든 내용을 차지하고 있는 유콘 준주는 이제 관광이 주요 산업으로 떠올랐다. 그 중심에 화이트패스 관광열차가 있고, 오로라가 있다. 북미대륙을 관통하는 철로는 여러 가닥이지만, 이 열차는 관광을 목적으로 한번쯤 타 봐야 할 열차로 첫손 꼽힌다. 협궤인 이 열차는 스캐그웨이~화이트호스 구간 176km 중 스캐그웨이~화이트패스 구간, 스캐그웨이~프레이저 구간, 스캐그웨이~카크로스 구간을 끊어서 운행하고 있다. 우리는 프레이저에서 스캐그웨이로 내려서는 44.3km 편도 열차를 탔다. 운행시간은 약 1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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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이트패스 열차의 노인 승무원. 관광객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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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로 타기시호숫가를 지나는 동안 유콘 준주에서 브리티시컬럼 비아주를 넘어가고, 프레이저에서 열차를 타면 곧 화이트패스 고갯마루인 캐나다-미국 국경을 넘어 알래스카주로 들어선다. 그래서 이 관광열차를 타려면 미국 비자를 받아 놓아야 편하다(스캐그웨이에서 검사).
프레이저를 떠난 열차는 한동안 평원을 달리는 듯하다가 891.2m의 최고점에 이르고, 화이트패스 고갯마루(870.5m. 캐나다-미국 국경)를 통과하면서 내리달리기 시작한다. 철로 건설 당시에는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고개 이름은 당시 캐나다 내무부장관의 이름을 따온 것. 불과 30km 거리에서 약 900m 아래 바닷가로 바로 떨어지는 가파른 철로가 시작되는 것이다.
열차가 덜커덩거리고 삐걱대며 코너를 돌 때마다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 든다. 왼쪽은 절벽이고, 오른쪽은 깊은 계곡이다. 열차가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오른쪽으로 멋진 장관을 토해 낸다. 피오르드가 보이고 그 위로 솟구친 설산이 웅장하다. 인스피레이션 포인트(Inspiration Point)다. 글레이셔(Glacier) 간이역에서 일단의 등산객들이 열차에 오른다. 스캐그웨이에서 화이트패스 옛 고갯길을 따라 오르다가 열차를 타고 다시 내려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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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이트패스의 고원지대를 지나고 있는 관광열차.
- 계곡 건너편으로 브라이들 베일폭포(Bridal Veil Falls)를 보며 내려서면 스캐그웨이다. 피오르드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조그만 마을. 이 마을과 화이트패스가 있었기에 클론다이크 골드러시가 가능했고, 지금은 화이트패스 협궤열차의 기점이 되어 관광의 주요 포인트가 되고 있다. 항구에는 거대한 크루즈 선박이 두 척이나 정박해 관광객들을 토해내고 있었다.
스캐그웨이에서 화이트호스로 귀환할 때는 자동차로 이동했다(180km). 이 클론다이크 남로는 1978년에 완공됐다. 모든 수송을 도맡았던 협궤열차는 이제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는 듯했다. 실제로 수송량을 도로에 빼앗겨 1982년부터 1988년까지 열차 운행을 중지했었다. 그러다가 관광산업의 발전으로 화려하게 재등장한 것이다.
파랑, 하양, 노랑, 초록이 색조의 모든 것
화이트호스에서 북쪽으로 뻗은 도로가 클론다이크 북로(North Klondike Highway)로, 화이트호스 도시 구간은 알래스카 하이웨이와 공유한다. 오늘은 알래스카 하이웨이를 타고 클루아니국립공원(Kluane National Park and Reserve)으로 간다. 그곳에 있는 양떼산(Sheep Mountain)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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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일즈캐년의 급류. 화이트호스는 말갈기처럼 물살이 급해 허옇게 여울지는, 우리 말로 탄(灘)에 해당되는 여울을 뜻한다. 골드러시 초기에 이런 곳을 배를 타고 지나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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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국립공원은 알래스카와 유콘에 걸쳐 대장벽을 이루고 있는 세인트 일라이어스산군 중 유콘 준주에 속한 지역을 공원으로 지정한 것이다. 미국은 알래스카주 지역을 랭겔-세인트 일라이어스(Wrangell-St. Elias)국립공원으로 지정했고, 브리티시컬럼비아주는 타센시니-알섹(Tatshenshini-Alsek)주립공원으로 지정했다. 결국 세인트 일라이어스산군은 대부분이 공원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셈이다.
이 공원 안에 캐나다 최고봉인 로건(Mount Logan·5,959m)이 솟아 있다. 헤인즈 정션(Haines Junction)마을에 공원 안내소가 있는데, 언제 또 오겠나 싶어 로건을 보려고 관광용 항공편을 알아보았더니 400캐나다달러가 넘고 비행시간도 2시간이나 된단다. 한 공원 안인데도 비행기로 1시간가량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에 이 땅의 규모를 실감했고, 걸어서 오를 만한 곳이 별로 없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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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디어 잡혔다.” 카메라 화상으로는 오로라(녹색빛)와 구름(하얀색)이 구별되지만, 눈으로 구분하려면 여러 날의 경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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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호스에서 여기까지도 160km다. 도중에 마을을 보았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길가에 있는 제재소 하나 본 것이 전부다. 샛길도 서너 개 정도 봤을까. 그러고 보니 어제도 스캐그웨이로 가는 도중 마을 같은 곳이라곤 카크로스밖에 보지 못했고, 사람이라곤 역에서 기념품 파는 아주머니 한 명이 전부였다. 참으로 쓸쓸한 곳이다. 하긴 유콘 준주만 한반도 면적의 5배가 넘는데, 인구는 고작 3만5,000명이란다. 그 중 2만5,000명이 화이트호스에 산다니 나머지 1만은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는지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양떼산 입구로 갔다. 공원 내부의 거대한 설원에서 쏟아내는 빙하수가 클루아니호수로 흘러드는 어구에 양떼산이 황량하게 솟구쳐 있다. 산자락에만 숲이 보일 뿐 중턱 이후로는 사태 사면이다. 그런데, 그런 사태진 곳에 하얀 점들이 보인다. 처음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가이드가 지적해 주니 확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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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루아니국립공원의 기점인 헤인즈 정션. 단풍이 노란색 일색이다.
- 계곡 저 안쪽으로 하루 종일 걸어 들어가야 빙하의 혀를 볼 수 있단다. 안내판, 간이화장실, 야외테이블이 있는 곳에 차를 대고 양떼산을 올랐다. 이곳 단풍은 온통 노랗다. 그래서 가장 색조가 풍부하다는 가을 풍광도 이들의 삶만큼이나 단순하다. 푸른 하늘, 하얀 눈, 녹색의 침엽수림, 그리고 노란 단풍. 이 네 가지 색이 전부다. 여름에는 이 중 노랑이 빠지고, 모든 것이 눈에 덮이는 겨울에는 녹색이 또 빠진다.
1시간쯤 올랐을까. 먼저 오른 가이드가 돌아보면서 손가락을 입술에 댄다. 양들이 가까이 있다는 신호다. 정말 가까이 있다. 그런데 도망을 가지 않는다. 참 신기하다. 설악산을 그렇게 돌아다녀도 산양 한 마리 보지 못했다. 뉴스에나 나와야 저렇게 생겼구나 했다. 여기선 예닐곱 마리가 떼지어 불과 수 미터 떨어져 있는데도 도망가지 않는다. 1시간 정도 더 오르고 나서 되돌아 내려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