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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르포] 캐나다 유콘준주

바래미나 2011. 12. 19. 19:11

[특파원 르포] 캐나다 유콘준주
오로라 같은 금, 금 같은 오로라
골드러시 개척자들이 건네준 대자연의 파노라마

불과 두어 시간 전에 싼 곰의 똥

저녁에는 이 공원 남동부에 있는 캐슬린호수(Kathleen Lake) 변의 로지에서 묵었다. 로지 주인이 내놓은 메뉴가 정통 유콘식 스테이크란다. 후식으로 나온 팬케이크가 매우 푸짐하다. 골드러시 시절 물자가 들어오지 않으면 이런 팬케이크만 먹고 수개월 겨울을 났다는 것이다.

저녁에 캐슬린호수변을 걸었다. 지진으로 인한 산사태로 물길이 끊기면서 바다로 못 나간 연어들이 민물에 적응한 호수다. 큰 것은 30kg가량 나간단다. 이튿날 아침에는 호수 옆에 솟구친 왕좌산(King's Throne Mountain)을 올랐다. 중턱에 걸린 거대한 사태 구덩이가 마치 의자처럼 패여 있어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 노란 단풍 사이로 난 길이 참 예쁘다.

▲ 클루아니국립공원 안내소의 공원 모형도 앞에서 지형 설명을 듣고 있다.

그런데 트레일 입구에서 얼마 들어서지 않은 넓은 길 한복판에 곰의 똥이 한 무더기 놓여 있다. 가이드 말로는 곰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는단다. 그는 귀를 곧추세우더니 멀리서 곰이 쉭쉭하는 소리가 들린단다. 우리도 들은 것 같다. 이곳 곰은 북극곰이나 로키의 곰처럼 공격적이지 않아 먼저 사람을 발견하면 피한다고 한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상태이거나 새끼들과 함께 있는 경우라면 달라진다니 매우 조심스럽다.

길이 좁아지고 경사가 세지면서 점차 산길다운 길이 이어진다. 1시간쯤 올라 숲 경계선을 넘어서자 산 아래로 캐슬린호수가 완벽하게 드러나고, 클루아니산군과 유콘고원이 대조를 이루면서 펼쳐진다. 유난히 클루아니산들만 눈이 덮여 있고 건너편 산군에는 눈이 없다. 내려서는 길에서는 잘 날지 못하는 뇌조(ptarmigan) 한 마리를 만났다.


▲ 오로라를 잡으려면 삼각대는 필수다. 가이드가 관광객들의 세팅을 도와주고 있다.
화이트호스로 가는 도중 우리는 쿠사와자연공원(Kusawa Natural Environment Park)의 한 능선을 오르기로 했다. 알래스카 하이웨이에서 빠져나와 유콘강의 지류인 타키니(Takhini)강을 끼고 30분쯤 비포장도로를 타고 들어가니 호수가 나타났고, 호반에 캠핑장도 마련돼 있다. 그러나 공원 관리소나 안내소는 없다. 일단 공원으로 지정해 놓기만 했단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토요일이다. 캠핑장에 캠핑객들이 보인다. 배낭을 챙겨 이름도 없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가이드는 호수가 잘 내려다보이는 곳까지 올라가 보잔다. 이윽고 숲이 벗겨지는 관목지대로 나서자 쿠사와호수는 매우 깊숙한 곳까지 이어지며 들어간다. 이 산은 호수 입구에 솟아 호수 전망대 역할을 하는 산이다. 실제로 이 호수는 둔중하게 S자를 그리며 좁고 길게 50km나 이어진다. 건너편은 펑퍼짐하게 퍼진 통바위 산이 버티고 있다.

하산 도중 등산객 2명을 만났다.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산에서 사람을 만나다니 신기했다.

▲ 본빌 레이크 트레일. 유콘고원 산군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화이트호스로 돌아와 저녁 식사 후 다시 오로라를 보러 나섰다. 불과 이틀이 지났는데 공기가 많이 차가워진 느낌이 든다. 옷을 든든히 껴입고 나섰다. 이번에는 오두막과 화장실을 갖춘 개활지였다. 따뜻한 물도 준비돼 있고 준비해 온 밤참을  즐길 수 있도록 한편에 모닥불도 지펴 놓았다. 그저께 헤어졌다 다시 만난 일행들은 어젯밤에 오로라를 보았다며 좋아들 했다. 오늘밤도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오로라야?” “오로라네!”

오로라(aurora borealis의 준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항상 존재한다. 해가 뜬 낮이거나 밤이라도 구름에 가려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할 뿐이다. 오로라는 지도상의 북극점(geographic North Pole)에서 약 1,200km 남쪽으로 치우친 곳에 있는 자북점(magnetic North Pole)을 중심으로 1,600km 거리 안쪽 오로라존에 원의 띠를 형성하며 발광한다. 이 자북점이 캐나다 쪽으로 치우쳐 있기에 유럽이나 아시아에서보다는 알래스카나 캐나다 쪽에서 잘 보이는 것이다. 이역만리 떨어진 이곳에 온 이유가 그것이다.

현재 자북점은 노스웨스트 준주의 최북단 마을 옐로나이프(Yellowknife) 위쪽에 있고, 화이트호스는 자북점에서 1,600km 조금 밖에 있어 오로라는 대개 북쪽 하늘에 나타난다. 북두칠성이 바로 머리 위에 이렇게 가깝게 떠있는 것이 신기하다. 그 북두칠성과 북극성을 가늠하고 그쪽 하늘을 보고 민감한 변화를 읽어내야만 오로라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오로라가 강하면 맨눈으로도 보인다. 그런데 오늘도 틀렸다.

▲ 클루아니국립 공원의 캐슬린호수. 킹즈 스론을 오르다 숲이 벗겨지며 나타나는 풍경이다.
9월 18일. 오늘은 화이트호스 근교 산행에 나섰다. 가는 도중 해가 두 개 보이는 선독(sun-dog) 현상을 보았다. 원래의 해와 조금 떨어진 옆에 작은 해가 보이는 현상으로, 북극권에서만 나타난다. 공기 중의 작은 얼음조각층에 해가 반사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이 작은 해를 ‘해가 데리고 다니는 개’쯤으로 비유한 것이다.

피시호수(Fish Lake)에서 시작하는 본빌호수 하이크(Bonneville Lakes Hike)는 여지껏 오른 다른 산과 마찬가지로 숲지대를 벗어나니 멋진 전망이 펼쳐진다. 유콘고원의 고만고만한 산들이 끝도 없이 뻗어나가고,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빙하지형이어서인지 분지를 이룬 곳에는 어김없이 산중 호수가 있어 풍광을 더욱 평화롭게 만든다. 저곳에 오두막을 짓고 통나무를 쪼개 장작을 쌓아두고 겨우 내내 불이나 지피다가 나왔으면…. 존 뮤어가 무위자연을 제창하게 된 것을 이해할 만하다.

유콘에서의 마지막 밤. 오늘밤도 개활지로 나선다. 컵라면, 감자, 맥주, 과일, 과자 등 밤참도 튼실하게 준비해 ‘마지막’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오로라를 반드시 보겠다고 마음을 다잡아본다.

“어디에 오로라가 있어? 저건 구름 같은데….”

“가이드가 저거래. 찍어봐.”

아니나 다를까. 아사 400에 시간을 8초 이상 두니 푸른 빛 같은 것이 카메라 화면에 잡혔다.

“오로라야! 오로라가 잡혔어!”

오로라가 잡을 대상인지, 잡힐 대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카메라는 잡았다. 다시 밤하늘을 본다. 내 눈은 여전히 의문을 품는다. 희끄무레한 저것이 오로라란 말인가.

클론다이크 골드러시 때 모든 사람이 금을 캔 것은 아니다. 거부가 된 사람도 있지만, 아예 거덜 난 사람이 더 많다. 우린 보난자가 아닌가보다. 우리에게 유콘은 엘도라도가 아닌가보다. 금광이 제대로 형성되기 전에 들어와 여기저기 헤매다가 허탕 친 초기 개척자들처럼 우리도 발길을 돌렸다. 우리 다음에 오는 개척자들은 멋진 금광을 발견하기를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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