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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트레킹] 존 뮤어 트레일 358km (중)

바래미나 2011. 12. 19. 19:07

[해외 트레킹] 존 뮤어 트레일 358km (중)
나는 주인이 아니다 흔적을 남기지 말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358km 걷기

존 뮤어 트레일에는 3,000m가 넘는 아홉 개의 고개(pass)가 있다. 2일차인 8월 14일은 그 첫 번째 고개인 도너휴 패스(Donohue Pass)를 넘는 날이다. 3,000m부터는 고소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 높이다. 도너휴 패스를 큰 탈 없이 넘어가면 종주의 전반부는 무난하게 진행된다.


▲ 도너휴 패스로 오르는길.

첫 번째 3,000m대 고개, 도너휴 패스를 넘다


도너휴 패스로 향하는 길은 라이엘 캐년(Lyell Canyon) 사이를 지나게 되는데 커다란 개울이 흐르고 이 개울은 투올러미 강으로 흘러 들어가 투올러미의 초원을 적시는 젖줄이 된다. 푸른 초원과 짙푸른 침엽수림, 그리고 그 사이로 흐르는 개울. 곰에게 행동식을 뺏긴 ‘참사’는 까맣게 잊은 채 모든 게 아름답고 평화롭게 느껴졌다. 맑은 개울에는 송어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도너휴 패스를 올라가는 길은 존 뮤어 트레일의 모든 고갯길이 그렇듯 스위치 백(Switch Back)으로 지그재그식 오르막길이다. 처음 만나는 3,000m 이상의 고지대인 데다 본격적인 오르막이라서 쉽지는 않은 길이다. 지난 겨울에는 요세미티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려 8월 중순인데도 눈이 녹지 않았다. 도너휴 패스의 정상 부근에는 만년설이 넓게 쌓여 있었다.


도너휴 패스를 넘을 때 친구와 함께 종주에 나선 백패커 제시카를 만났다. 그녀의 배낭은 12kg 남짓이었는데 내 배낭을 들어보더니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나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올라가는 것에 으쓱하기보다 부끄러웠다. 나름 울트라라이트 백패킹을 지향하는 자의 배낭이 20kg이 넘어가다니 부끄러웠던 것이다.


▲ 1 도너휴 패스를 향하는 길에 만년설이 쌓여 있다.

그녀와는 종주 중반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는데 화가이기도 한 그녀는 언제 내 모습을 그렸는지 귀국 후에 그림을 보내주기도 했다. 가벼운 배낭으로 좀더 빠르게 움직여 호숫가에서 여유롭게 그림을 그리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도너휴 패스를 넘어 고도를 낮추자 모기떼가 극성을 부린다. 존 뮤어 트레일 종주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보다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퍼밋을 받는 일이다. 그리고 종주를 시작했다면 가장 큰 문제는 3,000m와 4,000m 사이의 고지대에 있는 고개를 넘는 일과 곰으로부터 식량을 보호하는 일, 그리고 모기와의 싸움일 것이다. 모기가 가장 극성인 시기는 7월과 8월 사이다.


▲ 1. 도너휴 패스. 경량 백패커의 모범을 보여준 제시카와 그녀의 친구 제니퍼. 2. 모기를 막기 위한 헤드 넷. 3. 제시카가 보내 온 그림.
모기에 대비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모기 기피제를 수시로 피부에 바르거나 뿌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기망을 뒤집어쓰는 것이다. 그런데 겪고 보니 모기떼가 극성스럽기는 해도 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3,048m(1만ft) 이하 고도에서 야영을 한다면 모닥불을 피워 모기를 쫓아낼 수 있고, 머리 모기망(Head Net)만으로도 참을 만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날의 목표지점은 마리 레이크(Marie Lake) 갈림목 부근의 캠프그라운드였다. 운행 거리는 약 16km로서 평균 운행거리인 20km에 미치지 못한 계획이었지만 도너휴 패스를 넘어야 하는 일정을 고려하고, 혹시 있을지 모를 고소증상에 따른 컨디션 저하를 감안한 것이었다. 이제 곰에게 털릴 여유분의 식량도 없으므로 큰 걱정 없이 잠자리에 들었다. 이보다 더 큰 ‘사고’는 이제 있을 수 없을 거라는 믿음으로, 아니 더 이상 사고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희망으로….


세 번째 날의 평화로운 아침을 맞이했다. 오전 6시30분에 기상해 짐을 챙긴 후 7시에 출발했다. 약 1시간40분을 걸어 아일랜드 패스(3,092m) 옆의 작은 호숫가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멀리 배너 피크(Banner Peak·3,920m)가 보이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지도에도 이름이 안 나오는 작은 호수였지만 맑은 물과 푸른 초원은 다른 호수와 다를 바 없었다. 이번 종주를 위해서 라면과 누룽지, 알파미를 주식량으로 가져갔다. 300mml 용량의 시에라컵은 계량컵 역할을 했다.


호수가 있어 더욱 빛나는 존 뮤어 트레일


1,000개의 섬이 있다는 사우전드 아일랜드호수(Thousand Island Lake)는 이름 그대로 쪽빛 수면 위로 수많은 작은 섬들이 점점이 떠 있었다. 존 뮤어 트레일에서의 호수는 크고 작은 개울을 만들어 대지를 풍요롭게 했으며, 귀중한 식수뿐 아니라 영혼까지도 풍요롭게 했다. 호수가 있어 더욱 빛나는 존 뮤어 트레일인 것이다.

가넷 레이크는 기슭에 흰 눈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배너 피크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러나 가넷 레이크에서 우리 일행은 또다시 시련을 맞게 된다. 호수의 아름다움에 취해 무심코 걷다가 PCT(Pacific crest trail·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이어지는 4,300km 트레일)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선 것이다. 존 뮤어 트레일은 우리나라의 산처럼 친절하게 이정표가 있는 게 아니다. 트레일 역시 겨우 한 사람이 지날 수 있는 좁은 길이고, 그 흔한, 그래서 공해에 가까운 산악회 리본 같은 것도 나뭇가지에 걸려 있지 않다.


우리가 무심코 들어선 길이 PCT로 이어지는 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되돌아 나왔지만 한 명은 결국 PCT로 들어서서 끝내 헤어지게 되었다. 가넷 레이크에서 PCT로 들어갔다고 해도 8km 정도만 더 가면 레즈 메도(Reds Meadow)라는 곳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남은 두 사람은 2시간 정도를 기다리다가 레즈 메도에서 만날 것을 기대하며 계속 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