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마치는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美대사
"전국 곳곳 자전거여행 덕에 한국인 정서 더 깊이 이해… 계속 한국 관련 일 하고 싶어
대북 억지력은 유지하고 北주민 기본권은 누려야"
"나는 정말로 한국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한국은 나를 에너지가 넘치도록 만드는 나라입니다. 이임(離任)하더라도 한국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을 거예요."다음 달 3년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는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는 아쉬운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13일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1시간 넘는 인터뷰에서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한국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최근 국무부의 정무차관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오바마 행정부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 ▲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1975년 평화봉사단원으로 처음 한국 땅을 밟으면서 시작된 당신의 '한국 사랑'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내가 대사로 부임한 후, 자주 쓰는 한국말이 '인연'이다. 영어로 번역하기 어려운 말인데, 커넥션(connection)보다 깊은 뜻을 담고 있다. 나와 한국이 바로 그런 인연이 있다고 생각한다. 몸은 떠나더라도 양국 동맹을 더 튼튼히 하고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
―지난해와 올해 1주일씩 '자전거 여행'을 하며 전국을 돌았는데.
"아마도 내 다음 직업은 자전거투어 가이드가 될 것이다.(웃음) 지방 자전거 여행은 평범한 한국인들과 연결되도록 해주었다. 자전거 타고 다니면서 한국인들을 만나 양국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곳곳에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기념물이 있는 것도 보았다."
―부임한 2008년 9월부터 현재 2011년 7월까지 한미관계는 어떻게 변화했나.
"더 넓어지고, 강해지고, 활기차게 됐다고 생각한다. 비자 면제 프로그램 시행으로 대사관 앞길에 늘어서던 줄이 사라졌다. 금융위기를 이겨내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함께 대응했다. 한국은 (미국의 후원하에) G20회의를 개최했다."
―어려운 일도 많았을 텐데.
"서울에 온 날이 미국의 리먼 브러더스가 무너진 다음 날이다. 한국 신문을 보면서 경제 위기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걱정스러웠는데 잘 극복됐다. 늘 힘들고 도전적인 문제는 북한이었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 때는 상황이 매우 심각했다. 미국은 분명하고 강한 메시지를 북한에 보냈다. 대북 억지력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대사가 최근 북한에 대해 사용하는 '행동 대 행동(action for action)'은 원래 북한이 쓰던 용어 아닌가.
"맞다. 만약, 북한이 다시 도발하면 반드시 응징할 것이다. 반대로 국제사회와 한 약속을 지키면 긍정적 반응을 보일 것이다."
―2008년 미 상원 일각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대사 인준과 연계시키는 바람에 부임이 지체됐다. 지난 3년간 북한 인권이 얼마나 개선됐나.
"미국과 한국에서 북한 인권에 관심이 많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탈북자를 더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내가 아는 한, 탈북자 수용에는 제한이 없다. 우리에겐 북한 주민이 인간으로서 기본권을 누리면서 살도록 해야 할, 끝나지 않은 과제가 있다."
―언제쯤 양국 국민들이 한미 FTA의 혜택을 보게 되나.
"내게 시간이 무한정 있다면 한미 FTA의 좋은 점에 대해서 얼마든 말할 수 있다. FTA의 국회 통과는 수개월이 아니라, 수주 내에 될 것이다."
―후임자인 성 김 대사 내정자에게 어떤 말을 해 주고 싶나.
"미국 대사 업무는 자전거 타기와 비슷하다. 계속 페달을 밟아야 한다. 멈추면 쓰러지고 만다. 성 김은 훌륭한 주한 미국대사가 될 것으로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