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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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명칭 : 오스트레일리아연방(Commonwealth of Australia) 인구 : 21,338,000 면적 : 7,692,208㎢ 수도 : 캔버라 정체·의회형태 : 연방의회제(공식적으로는 입헌군주제), 양원제 국가원수/정부수반 : 영국 국왕/총리 공식 언어 : 영어 독립년월일 : 1901. 1. 1 화폐단위 : 오스트레일리아달러(Australian dollar/$A) 국가(國歌) : Advance Australia Fair
지구상 가장 작은 대륙이자 6번째로 큰 나라.
오스트레일리아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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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 /지도
수도는 캔버라이다. 대륙으로서는 가장 작지만 아프리카보다 다양한 기후와 지형을 가질 만큼 넓은 섬으로 알래스카를 제외한 미국 본토와 크기가 거의 같고,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 면적의 1.5배에 달한다. 남회귀선이 국토의 중앙부를 가로지른다. 서쪽으로 인도양, 동쪽으로 남태평양의 산호해, 태즈먼 해와 접하는데 해안선의 길이가 3만 6,735km에 달한다. 대륙 동쪽으로는 파푸아뉴기니에서 태즈메이니아 섬 부근까지 대륙붕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데 그 너비가 약 30∼240km에 달한다. 동해안에는 산호초인 그레이트배리어리프가 퀸즐랜드 주 남부에서 파푸아 만까지 2,000km에 걸쳐 북쪽으로 뻗어 있으며 면적은 약 20만 7,000㎢이다. 대륙 쪽으로 수심이 깊고 위험하지만 해협을 통해 배가 항해하고 있다. 면적 7,692,208㎢, 인구 21,338,000(2008 추계).
대부분의 국민들이 유럽계의 후손이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비백인계 소수집단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이다. 인구 중의 아시아계 비율은 완화된 이민 정책의 결과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공용어는 영어이다. 국민 대다수는 개신교를 믿는다. 하지만 로마 가톨릭교·동방정교회·기타 그리스도교도도 있으며, 불교·이슬람교 인구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화폐단위는 오스트레일리아달러($A)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3가지 주요한 지형적 특징을 보인다. 대륙의 절반 이상은 서부 오스트레일리아 고원 지대이다. 이 지역에는 아른헴랜드 지역과 북서쪽의 킴벌리, 동쪽에 위치한 맥도넬 산맥이 포함된다. 두 번째 지역은 고원의 동쪽에 위치한 인테리어롤랜즈이다. 그레이트디바이딩 산맥을 포함하는 이스턴업랜즈에는 높은 산등성이, 고원, 분지들이 나타난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고도가 가장 높은 곳은 오스트레일리안알프스의 코지어스코 산(2,228m)이고, 가장 낮은 곳은 에어 호이다. 주요 강들로는 머리-달링 수계, 플린더스·스완·쿠퍼 강 등이 있다. 해안을 따라 그레이트배리어리프·멜빌 섬·캥거루 섬·태즈메이니아를 비롯한 많은 섬과 암초들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석탄, 석유, 우라늄 등 광물 자원이 풍부하다. 1979년 대량의 다이아몬드 광상이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발견되었다. 기본적으로 경제는 자유기업체제이다. 가장 비중이 큰 산업 분야는 금융업, 제조업, 무역업이다. 형식적으로 입헌군주제를 취하고 있으며, 국가원수는 영국 국왕이고 총독에 의해 대표된다. 실제로는 양원으로 구성된 의회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정부수반은 총리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오랫동안 원주민(Aborigines)들이 거주해왔는데, 이들은 최소 5만 년 전에 이주해오기 시작했다. 1788년 유럽인들이 정착할 당시 원주민의 수는 대략 30만~100만 명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17세기 탐험과 함께 유럽인들에게 오스트레일리아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1616년에 네덜란드인들과 1688년에 영국인들이 이 대륙에 발을 디뎠으나, 최초의 대규모 원정대는 1770년 제임스 쿡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원정으로 영국은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한 영유권을 선포했다. 1788년 최초의 영국인들이 포트 잭슨에 정착했다. 이주한 영국인들은 주로 범죄자와 선원들이었고, 이후에도 이주해오는 사람들의 큰 비중을 차지했다. 1859년까지 오스트레일리아의 모든 주들의 주요한 식민 지역들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유럽인들의 전염병이 퍼지면서 원주민들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고, 그들의 인구는 급격하게 감소했다. 영국은 19세기 중반에 식민 지역들에 제한적 자치 정부를 인정했다. 그리고 1901년에 식민지역들을 영연방으로 통합하는 법이 발효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특히 갈리폴리에서 영국과 함께 싸웠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일본인들의 오스트레일리아 점령을 막기 위해 참전했다. 6·25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는 미국과 함께 전쟁에 참전했다. 1960년대 이래 정부는 원주민들을 좀 더 공정하게 대우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으며, 이민 규제를 완화해 다양한 인구 구성을 가능하게 했다. 영국이 오스트레일리아 정부 정책을 간섭할 수 있었던 헌법적인 장치들이 1968년에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아시아와 태평양 주변의 사안들에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1990년대에는 영국과의 유대관계를 단절하고 공화국이 되는 것에 대한 몇 차례의 논쟁이 있었다.
전 참전비 건립 기금 6만3천달러 전달 |
NSW주 정부와 한국정부, 시드니 한인사회 등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한국전 참전비(일명 한호 우호 기념비) 건립기금 모금을 위한 자선의 밤 행사가 27일 저녁 버우드 RSL 클럽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NSW 주정부 관계자와 각급 한인 단체 관계자 등 300여명이 참석했으며, 시드니 한국전 참전비 건립 추진회 백낙윤 회장은 그동안 한인사회에서 모금한 6만3천달러를 주정부를 대표해 참석한 타니아 가디엘 전 NSW주 보훈처 장관에게 전달했다. 백 회장은 이에 앞서 인사말에서“한반도 이념 전쟁에서 세계평화수호를 위해 값진 희생한 한호 양국간의 젊은이들을 기리기 위해 참전비 건립을 추진하게 됐다”면서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내 준 한인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총 70만달러에 달하는 참전비 건립 비용은 NSW 주정부가 35만달러, 한국 정부(국가보훈처)가 25만달러를 각각 부담하며, 나머지 10만달러 정도를 한인사회가 모금하기로 했었다. 참전비는 무어파크에 건립되며, 내년 2월 착공돼, 7월말에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참전비 디자인을 맡은 스티븐 하몬드씨는 참전비는 태극문양으로 고안되었고 대한민국 국화인 무궁화 모양으로 한송이씩 기다란 수십 개의 청동과 철로 만든 조형물들이 참전비 주변 통로에 들어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무궁화 안에는 향을 피울 수 있도록 했으며, 한국전의 주요 격전지의 이름이 새겨진 키 낮은 석상들도 군데군데 설치되며, 양국 국기 게양대도 세워진다고 그는 말했다. 재향군인회 호주지부 김태홍 회장은 경과보고에서“참전비가 호주 참전용사의 희생과 호국정신을 기리고 세계평화와 한-호혈맹의 상징물이 될 것”이라면서 “부지와 기금을 확정해 준 NSW주 정부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또 건배를 제창한 시드니 한인회 승원홍 회장은 이번 모임을 계기로 앞으로 목표달성까지 더욱 활발하게 모금 운동을 벌이자고 관계자들을 독려했다. 호주는 한국전에 1만7천164명이 참전, 339명이 사망하고 1천261명이 부상을 당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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