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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저 건너편 (한국어 번역)|미국대사관 이야기

바래미나 2011. 6. 6. 00:08

백두산 저 건너편 (한국어 번역)|미국대사관 이야기

Tom Underwood | 조회 402 |추천 0 |2009.09.15. 17:01 http://cafe.daum.net/usembassy/Ixmd/80 

백두산 저 건너편

 

석굴암에서 백두산에 이르기까지

 

제 조부모님은 서울에서 선교사 시절을 보내던 1931 7월에 가족들을 데리고흰머리산이라 불리는 백두산 여행을 떠났습니다. 백두산은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4,342년 전 고조선 건국과 연관된 신비로운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달구지, 기차, 그리고 차를 타고, 또 노새에 짐을 부리고 걷기도 하며 2주가 걸려 그곳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당시 2살이었던 그레이스 고모는 (너무 어려) 서울에 남아야 했죠.

 

1939년 부모님과 함께 석굴암에서, 그레이스 언더우드(오른쪽에서 세번째)의 가족 사진 

 

78년 뒤, 2009 9월이 되어서야 그레이스 고모는 마침내 백두산에 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제 가족들, 그리고 서울, 일본, 미국에서 모인 친척들과 함께 사흘 여정으로 중국과 북한이 맞닿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참으로 많은 것이 변해있었습니다. (한국의 새 로마자 표기법으로 백두산의 영문스펠링도 바뀌었더군요.) 저희 조부모님처럼 북한을 통해 백두산을 방문할 수는 없었지만, 비행기로 인천에서 중국 연길로, 버스를 타고 남서쪽으로 200km 이동하여 중국의 길림 지역에 꼬박 하루가 걸려 도착했습니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시간을 건너 뛴 백두산의 아름다움과 때묻지 않은 환경은 옛 그대로 였습니다.

 

한국에선 이젠 볼 수 없는 초가집과 논밭, 그리고 소달구지의 풍경이 중국 길림의 시골 마을에는 아직도 남아있네요.

 

하늘과 맞닿은 호수, 천지

 

백두산은 거의 늘 구름에 뒤덮여 있지만, 저희는 운좋게도 맑은 햇살과 눈부시게 맑은 하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유명한 화구호를 처음 보게 된 곳은 3,000 미터 가까운 높이의 북쪽 꼭대기에서였는데요, 그곳은 멀리서부터 찾아온 많은 한국 관광객들로 꽤 붐볐습니다. 동남쪽으로 있는 북한 최정상의 봉우리를 바라보니 사람이 살고 있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중국 관광업체의 특별한 도움을 얻어) 저희는 호수쪽으로 500 미터 더 내려가보았습니다. 그곳에는 관광객들이 거의 없었지만 광경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미처 녹지 않은 얼음과 눈이 여기저기 남아있었고,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식물군도 눈에 띄었으며, 우리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던 작은 짐승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백두산의 화구호, "천지"의 아름다운 전경

 

호수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고 미끄러웠지만, 여든 살의 그레이스 고모는 탈 없이 잘 다니셨고, 조금 불안해 보이는 디딤돌도 잘 디디며 차갑고 물살 센 송화강을 건넜습니다. 강이 너무 깨끗해보여서 그 물로 물통도 채웠습니다. 그리고 강가에는 환경연구소를 지키고 있는 관리인 둘 말고는 이리저리 훑어봐도 사람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우리는 입장료를 내고 거울처럼 투명하게 비치는천지(天池)”(하늘과 맞닿은 호수라는 의미)에 닿았습니다. 1931년에 할아버지께서 이곳에 오셨을 때 접이식 캔버스 보트를 타고 1,420 피트의 측연선으로 수심을 재보려고 하셨는데, 가져간 측연선이 바닥에 닿지 않았다고 합니다.

 

 거울과 같이 투명한 호수에서 보트를 타다

 

북한 국경선 근처에서 보트를 타며. (건너가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한국민들이 중국을 거쳐 백두산을 다녀왔지만, 아직도 많은 분들이 자국의 가장 장엄하고 아름다운 지역을 다른 나라를 거쳐 발을 딛기를 꺼리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통일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1929년 북한 지방에서 태어난 그레이스 고모는 기다리다 지치셨나 봅니다. 그리고 오늘날 국경선 넘어 북한 기슭에는 아직 관광객의 그림자도 안보입니다.

 

탐 언더우드

주한미국대사관 지역총괄담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