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서울에서 지체한 북한군
상식과 전혀 반대로 엉뚱한 일이 발생하였을 경우, 이를 흔히 미스터리라고 하는데 가장 극한 상황의 총합이라 할 수 있는 전쟁터에서 이런 모습은 의외로 흔하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6.25전쟁 또한 그 과정을 살펴보면 지금까지 두고두고 회자되는 많은 미스터리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개전 초에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한 후에도 공격하지 계속하지 않고 3일간이나 지체하였던 일이었습니다. 분명히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였을 때 중동부전선에서 선전한 국군 제6사단 외에 전선의 상황은 상당히 비관적이었는데, 바로 이때 북한군 주력이 진격을 멈추고 서울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북한군의 서울 점령을 상징하는 중앙청에 게양된 인공기]
수많은 민간인의 희생과 아군 주력을 고립시키면서까지 시도된 한강교 폭파 때문에 그런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한강에는 인도교(현 한강대교 구교)와 3개의 철교가 있었는데 2개의 철교가 폭파에 실패하여 그대로 남아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북한군은 물론 국군에게 극심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며 남침의 선봉장 노릇을 하던 전차들까지 마음만 먹었다면 신속하게 한강을 건너 패주하고 있던 국군을 추격을 계속할 수 있었었습니다. 만일 이때 북한군의 진격이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면 국군은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이르게 될 가능성이 컸습니다.
사실 북한 스스로 이에 대하여 명쾌하게 밝힌 자료가 없기 때문에 추측만 있고 이것이 미스터리가 되어버렸지만, 그러한 이유 중 하나로 당시에 북한이 정세를 크게 오판하고 있었다는 점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남침계획 수립당시 북한의 전쟁지도부는 “서울을 점령하면 남한 전 지역에서 남로당원이 봉기하여 이승만 정부가 순식간 붕괴될 것이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6월말까지도 민중 봉기는 일어나지 않았고 이것은 전후에 김일성이 박헌영을 비롯한 남로당 세력을 숙청 할 때 구실로 삼기도 하였습니다.
[폭파되지 않은 한강 철교를 6월 30일 미군기가 폭격하는 모습 ]
하지만 무엇보다도 북한군이 3일간 서울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앞서 알아본 바와 같이 북한의 초기 계획을 완전히 망쳐버린 국군 제6사단의 대승과 김포축선을 방어했던 김포지구전투사령부의 분전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의정부 축선을 돌파하여 서울을 선점한 북한군 제3, 4사단의 좌우익 상황이 지지부진하자 더 이상 단독으로 앞서 나가기 힘들었던 것으로 볼수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북한군의 지체를 틈타 육군본부는 한강선 방어를 위해 임시로 시흥지구전투사령부를 편성했고 삼삼오오 한강을 도하해오는 철수병력을 재편성하여 6월 29일에는 간신히 한강방어선이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을 점령한 후 3일간을 지체했던 북한군은 그들이 뭔가 잘못하고 있는 사실을 깨닫고, 더불어 미국 지상군의 조기 참전가능성이 대두되자 6월 30일 밤부터 한강방어선을 돌파하는데 전 역량을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한강을 마주보고 치열한 공격과 방어가 이어지고 난 후인 7월 1일 04시, 철교를 이용하여 4대의 적 전차들이 강을 건너고 후속하여 북한군 주력이 영등포까지 진출하자 그동안 아군이 필사적으로 막아내던 한강 방어선이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국군은 7월 3일, 경부축선을 따라 남으로 후퇴하게 되었습니다.
[한강철교를 이용하여 강을 건너는 북한군 전차]
필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한강 방어선은 붕괴되었지만 국군과 북한군이 한강을 사이에 놓고 대치했던 6월 29일부터 7월 3일까지의 5일간은 전쟁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비록 그러한 시간이 미스터리로 남아있지만 한강교 폭파로 인해 적진에 고립되며 붕괴되었던 국군 주력 부대들이 천금같은 5일간의 시간을 이용해 부대를 수습하고 재편성하여 지연전을 전개할 수 있었으며, 그 시간 동안 미군이 증원되어 참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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