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급 부대가 하룻밤의 전투로 태극무공훈장을 수상하는 영웅을 두 명이나 배출한 사례는 건군 이후 단 한차례뿐이었다. 베트남에서 1967년 2월14·15일 밤에 있었던 짜빈동 전투의 영웅 정경진 대위와 신원배 소위가 그 주인공이다.
2해병여단 11중대장과 같은 중대 1소대장이었던 두 영웅이 배치된 짜빈동 중대 기지는 베트남 중부 꽝응아이성 내륙의 요충지였다. 당시 해병여단 지역은 베트콩 세력이 활발했던 곳이다. 특히 67년 초, 북베트남 정규군이 대거 증원되면서 적은 어느 곳에서도 여단 예하부대를 기습할 수 있었다. 따라서 여단은 경계 강화 지시와 함께 각 기지 방호 대책 보강 등 대비를 서둘렀다. 특히 11중대의 짜빈동 기지는 적의 위협이 더욱 큰 것으로 보고 대대에 파견됐던 1소대를 복귀시키고 1중대 1개 소대를 추가로 배속하는 등 방어 태세를 보강했다. 그러던 2월14일이었다.
그날은 밤이 되면서 먹구름이 몰려오고 바람마저 불어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밤이 깊어가면서 세찬 비바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23시30분쯤, 기지 북쪽 제3소대 지역에서 파괴통이 폭발하면서 외곽 철조망 일부가 절단됐다. 중대에서 즉각 81㎜ 조명탄을 띄우자 1개 소대 규모의 적이 숲 속으로 도주하고 있었다. 중대가 집중 사격을 가하자 적은 산발적으로 대응했으나 곧 사라지고 말았다.
그 후 중대장은 적의 2차 공격에 대비, 병력의 절반을 진지에 투입하는 등 경계를 더욱 강화했다. 아울러 화력 지원 태세 등 방어 체계를 재점검하고 전투 준비를 갖춘 채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긴장이 풀려갈 무렵인 4시10분쯤, 초저녁 적과 교전했던 제3소대에서 기지를 향해 은밀히 접근하는 적을 발견했다.
중대장은 즉각 전투 배치와 함께 적을 최대한 끌어들이게 했다. 이어서 기습 사격을 가하면서 조명탄을 띄웠다. 중대의 사격과 함께 기지를 겹겹이 포위하고 있던 적이 집중 포격을 시작하면서 한동안 포격전이 계속됐다.
증강된 1개 연대 규모를 투입한 적의 공격 기세는 대단했다. 3소대 지역에 2개 대대, 기지 남쪽 1소대 지역에 1개 대대 규모를 집중한 적은 초저녁과 같이 파괴통을 폭파시킨 후 3소대의 외곽 방어선을 돌파하기 시작했다. 여단뿐만 아니라 주변 미군의 화력까지 참가한 지원 화력이 기지 외곽을 불바다로 만드는 듯했지만 워낙 많은 병력을 집중한 적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한동안 성난 파도가 작은 모래성을 휩쓸어 버리는 것 같은 위기가 계속됐다.
그때 여단에서는 진내 사격을 심각히 검토하기도 했다. 위기에 처한 제11중대는 외곽에 배치한 병력의 일부까지 차출해 역습을 시도했다. 그때 3.5인치 로켓포가 위력을 발휘했다. 아군의 교통호에 진입한 적에게 3.5인치가 발사되면서 그들의 시체가 공중으로 날아올랐으며, 아군의 사기를 고양시키는 효과를 가져 왔다. 그 사이에 어둠이 물러가면서 위기는 호기로 바뀌기 시작했다.
7시20분쯤, 상황이 반전되면서 적은 전의를 상실한듯 부상자를 부축해 도주하기 시작했다. 확인된 전과는 적 사살 243명, 포로 3명 등이었으며, 그보다 훨씬 많은 적이 사살되거나 부상당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반면 11중대는 15명이 전사하고 33명이 부상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결과적으로 우리 해병대는 1개 중대 병력으로 증강된 연대급(3개 대대 이상)의 적을 막아 내는 신화를 창조한 것이다.
<최용호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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