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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유의 6.25 전쟁 이야기

바래미나 2011. 4. 18. 22:25

조화유의  6.25 전쟁 이야기

  흥남철수

<연재31회>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The Communists recaptured Pyongyang on December 4. on December 9, some 20,000 American troops, surrounded by the Chinese near Jahngjin Reservoir north of Hamhung, began the "Big Bugout." Gen. Oliver P. Smith, commander of the retreating 1st Marine Division who had spearheaded the Inchon landing, jokingly said to a reporter, "Retreat? Hell no! We're advancing in a different direction!"
 
   During the six-day 90km retreat from the Jahngjin Reservoir to the port of Hungnam, about 1,000 Americans were killed or missing and some 3,500 were wounded. The subzero temperature caused many survivors to lose their fingers or toes to frostbite. Over 10,000 Chinese soldiers were presumed to have been killed, mainly by the American air strikes, in the Jahngjin Reservoir battles.
  
   By Christmas Eve, about 105,000 U.S. and ROK troops, and 91,000 North Korean refugees had been evacuated by sea from Hungnam. General Kim Baek-il, commander of the 1st ROK Army Corps, witnessed many tragic scenes on the piers of the Hungnam harbor. Numerous families were split when the LSTs closed their plank doors to the refugees who had no chance to get aboard due to lack of space. Some people desperately clung to the departing LSTs only to fall and drown.


*Jahngjin Reservoir  장진호. 미군은  Chosin Reservoir라고 불렀는데, “장진”을 일본 발음대로 표기한 일본 지도를 보고 잘못 사용한 것이다. 필자는 한국의 지명과 강 이름을 가능한한 원음에 가깝게 표기했다. “부산”을 Pusan이 아니라 Busan으로 표기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bugout(버가웃)  군대 속어로 “후퇴”.
*LST(=landing ship tank) 주로 탱크를 큰 배로부터 해안으로 상륙시키는데 쓰는 상륙정.

 

  공산군은 12월4일 평양을 탈환했다. 12월9일에는 함흥 북쪽 장진호 부근에서 중공군에 포위된 미군들이 “대 후퇴”를 시작했다. 후퇴하던 미제1해병사단(인천상륙의 선봉부대)의 지휘관 올리버 스미스 장군은 한 기자에게 농담조로 이렇게 말했다. “후퇴라니? 천만에 말씀! 우리는 지금 다른 방향으로 전진하고있는거요!”

  장진호에서 흥남항까지 90킬로를 6일동안 후퇴하면서 미군 약 1천명이 전사 또는 실종되고 3천5백명 가량이 부상당했다. 영하의 기온 때문에 많은 생존자들이 동상으로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잃었다. 이 장진호 전투에서 중공군은 주로 미군기의 공습에 의해 1만명 이상 죽은 것으로 추산되었다.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10만5천명의 미군과 한국군, 9만1천명의 북한 피난민이 해상을 통해흥남으로부터 철수했다. 국군 제1군단장 김백일 장군은 흥남항 부두에서 많은 비극적 장면을 목격했다. 탈 자리가 없어 배에 타지못한 피난민들 앞에서 상륙정의 갑문이 닫힐 때 많은 가족들이 서로 헤어지게 되었다. 어떤이들은 떠나는 상륙정에 기를쓰고 매달렸으나 결국은 물속으로 떨어져 죽었다.

워커
<연재32회>

                     "불독" 워커 장군의 비참한 최후
  
   Meanwhile, on the western front, the Chinese and the North Koreans had chased the UN forces back to the 38th parallel by December 15. Fortunately for the retreating UN forces, the Communists stopped marching at the pre-war border and did not move for ten days as if they were waiting for the GIs and the ROKs to complete the seaborne evacuation from Hungnam on the eastern front.
  
  During the lull, bad news hit the Americans. Lt. Gen. Walton "Bulldog" Walker, commander of the Eighth U.S. Army and UN ground forces, was killed in a traffic accident on December 23. on that fatal day, he was en route to a frontline ceremony in which he was to award several medals, including a Silver Star to his son, Captain Sam Walker.

  When a convoy of South Korean military trucks slowed down his jeep on a narrow road near Uijungboo, the hot-tempered Walker ordered his driver to pass the trucks. The driver pulled left and saw a truck racing toward the jeep. To avoid a head-on collision, the jeep quickly swerved off the road and crashed into a ditch, killing the 61-year-old general instantly.

 

*the ROKs  한국군을 미군들이 이렇게 불렀다. ROK은 물론 Republic of Korea의 약자다.
*seaborne “바다를 통해 운반되는”이란 뜻의 형용사. borne은 bear(운반하다)의 과거분사. 공중으로 운반되는 것은 airborne이라 한다.
*hot-tempered  성질이 급한(=short-tempered, have a short fuse).

 

   한편 서부전선에서는 중공군과 북한군이 유엔군을 계속 추격, 12월15일쯤에는 38도선까지 내려왔다. 퇴각하는 유엔군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공산군은 전쟁 전 경계선(38선)에서 행군을 멈추고, 마치 동부전선에서 미군과 한국군이 흥남으로부터의 해상 철수를 끝낼 때까지 기다리기라도 하듯 10일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이 소강상태 기간 중에 나쁜 소식이 미군에게 전해졌다. 미8군사령관이자 유엔 지상군 사령관인 월튼 워어커(별명 불독)장군이 12월23일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그 비운의 날, 장군은 자기 아들 쌤 워어커 대위에게 줄 은성훈장을 포함하여 몇 개의 훈장을 장병들에게 수여하기 위해 전선의 수여식장으로 가고 있었다.

   의정부 근처 좁은 도로에서 서행하는 한국 군용트럭 대열이 장군의 찝차를 가로막자, 성질이 급한 장군은 운전병에게 트럭을 추월하라고 명령했다. 운전병이 차를 왼쪽으로 빼자 트럭 하나가 찝차를 향해 질주해오는 것이 보였다. 트럭과의 정면 충돌을 피하기 위해 찝차가 도로 밖으로 급선회, 논두렁에 추락하면서 61세의 워어커 장군은 즉사했다.

서울탈환
<연재33회>

                      9개월에 주인이 네번이나 바뀐 서울

   By Christmas Day, 1950, the Communists had retaken all of North Korea. Lt. Gen. Matthew B. Ridgway replaced the late General Walker as the new commander of the Eighth U.S. Army and UN ground forces on December 27. Ridgway, the then 56-year-old World War II hero who had participated in the Normandy invasion as an airborne division commander, always carried a grenade fastened to his right chest as a luck charm, and a first-aid kit to his left.
 
  The enemy did not give the new UN commander a breather. on New Year's Eve, just four days after Ridgway's arrival in Korea, the Communists started a massive attack and captured Seoul again on January 4, 1951. Inchon fell the following day. UN forces kept fighting and retreating for three weeks until they were pushed back roughly to the 37th parallel.
  
  on January 25, General Ridgway ordered a counterattack. Though outnumbered two to one by the Communists, the UN forces had absolute superiority in artillery, tanks and airplanes. on March 14, they reoccupied Seoul without a fight. The capital city had changed hands four times in nine months.

 

*luck charm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믿는 물건, 부적.
*roughly  대충, 대강.
*change hands  “손을 바꾼다“ 즉 “소유주(임자)가 바뀐다“는 뜻.

 

   크리스마스가 되었을 때에는 공산군이 전체 북한 땅을 되찾은 상태였다.
12월27일 매슈 릿지웨이 중장이 고(故) 워어커 중장을 대신해서 미8군사령관 겸 유엔 지상군 사령관이 되었다. 당시 56세였던 릿지웨이장군은 공수사단 지휘관으로 노르만디 상륙작전에도 참가했던 2차세계대전 영웅으로, 오른쪽 가슴팍에 수류탄을 부적으로 항상 매달고 다녔다. 그리고 왼쪽 가슴에는 응급치료도구함을 달고 다녔다.
  
  적은 신임 유엔군 사령관에게 숨돌릴 틈도 주지 않았다. 공산군은 릿지웨이가 한국에 도착한지 나흘 만에  시작, 1951년 1월4일에는 서울을 다시 점령했다. 다음 날에는 인천도 함락되었다. 유엔군은 3주동안 싸우면서 후퇴를 계속, 대충 37도선까지 밀려났다.

  1월25일 릿지웨이장군은 반격을 명령했다. 병력 숫자에서는 공산군에게 2대1로 열세했지만, 유엔군은 대포, 탱크 그리고 비행기에서는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3월14일 유엔군은 싸우지 않고 서울을 다시 점령했다. 한국의 수도는 9개월동안 네번이나 주인이 바뀐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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