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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질된 참모총장 채병덕의 전사

바래미나 2011. 4. 18. 22:23


<연재14회>   경질된 참모총장 채병덕의   전사 

  President Truman did accept MacArthur's recommendation and
on June 30, Washington time, he ordered the general to send part of
the U.S. divisions stationed in Japan to Korea immediately. on the
same day, President Rhee named Major General Jung Il-gwon ROK
army chief of staff, replacing Major General Chae Byung-duk.

A graduate of the Imperial Japanese Military Academy, Chae blamed
the North Korean invaders for his premature downfall, and was eager
to become a field commander. He used to say to his friends that he

wanted to die in battle like a real soldier. So, he volunteered to lead a

battalion resisting the Communists near Hahdong. He was hit by enemy

fire and died instantly in late July, becoming the highest-ranking ROK
army officer to be killed in action.

  General Jung, the 34-year-old new army chief of staff, had returned
from the United States the preceding day on board a special plane

provided by General MacArthur at the request of President Rhee. Jung
had attended the U.S. Army Infantry School in Georgia only two months

when he was called back home due to the war.

 

*Truman did accept MacArthur's recommendation.에서처럼 긍정문에서 동사 앞에
오는 조동사 do는 본동사의 뜻을 강조하는 효과를 낸다. <예문> Do you love me?
Yes, I do love you. 날 사랑하니? 그럼, 사랑하고 말고.
*preceding day  바로 전날(=the day before).
*at the request of∼  누구의 요청으로.
*due to∼ 무엇 때문에(=owing to, because of). <예문> Due to bad weather, we cancelled our

 party. 날씨가 매우 나빠서 우리는 파티를 취소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맥아더 장군의 건의를 받아드려 워싱턴 시간으로 6월30일

일본 주둔 미군 사단 병력 일부를 즉시 한국으로 파견하라고 장군에게 명령했다.

같은 날 이승만 대통령은 육군 참모총장을 경질, 채병덕 소장 후임으로 정일권

소장을 임명했다. 일본제국 육군사관학교 출신인 채 장군은 자신의 때 이른 몰락을

북한 침략자들의 탓으로 돌리고 야전군 지휘관이 되기를 원했다.
  
  그는 친구들에게 진짜 군인답게 전사하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그는 자원

하여 경남 하동 근처에서 적을 저지하고 있던 1개 대대 병력을 지휘했다. 그는 7월

하순 적의 사격을 받고 즉사함으로써 전투 중 순직한 최고위 한국군 장교가 되었다.
    
  34세의 신임 육군 참모총장 정일권 장군은 바로 전날 이대통령의 요청으로 맥아더

장군이 마련해준 특별기편으로 미국으로부터 귀국했다. 정 장군은 조지아주의 미육

군보병학교에 유학을 갔다가 전쟁 때문에 겨우 2개월만에 본국으로 소환되었다.


전쟁 15

<연재 15회> 
인민군은 왜 서울에서 3일을 낭비했나?

 

   Fortunately for the defenders, the North Korean invaders stayed
put in Seoul for three days. This mysterious delay gave the United
States precious time to send ground troops to Korea before it was
too late. It also gave the South Korean army a breather to regroup
after initial defeats.

  Why did the Communists delay their southward march?
Some historians speculate that the invaders simply needed a rest
after a hectic three-day drive, and they also needed time to prepare
for crossing the Hahngahng River by boats and rafts.
  
  Others theorize that perhaps the North Koreans waited for South
Korean workers and peasants to rise up against the Rhee Syngman

government as they mistakenly had expected. one of the reasons
Kim Il-sung was so sure of his swift victory was his illusion that the
South Korean population would welcome a unified Korea under his

leadership. Whatever the reason, if the North Koreans had not
delayed their advance for three full days, many scholars believe,
history might have been written differently.

 

*stay put 꼼짝않고 있다. <예문> Stay put here until I come back. 내가 돌아올
때까지 꼼짝말고 여기 있어.
*give a breather 숨 돌릴 틈을 주다. <예문> I just got here. Give me a breather,
please! 나 여기 방금 도착했어. 숨 돌릴 시간 좀 다오, 제발! 
*speculate (여기서는) 추측하다.
*theorize 이론(추론)을 전개하다.

 

   방어군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북한 침략군은 서울에서 3일간 머물렀다.
그들의 이 이상한 지체 때문에 미국은 때가 너무 늦기 전에 지상병력을
한국에 파견할 귀중한 시간을 벌었고, 또한 초기에 패배를 당한 남한
군대에게는 한숨 돌리고 재조직할 시간을 갖게되었다. 공산주의자들은
왜 남진을 지체했는가?
 
  어떤 역사가들은 침략자들이 3일간의 열띈 공세 끝에 단지
휴식이 필요했던 것 뿐이고 또 배나 뗏목을 이용하여 한강을 건널 준비
를 하는데도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또 어떤 역사가들은 북한군이 잘못 기대하고 있었던대로 남한의 노동자
농민들이 이승만 정권에 대항하여 봉기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추론한다. 김일성이 신속한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남한 국민들이 김일성 주도로 한국이 통일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환상을 그가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만일 북한군이 만 3일간 남진을 지체하지 않았
더라면 역사는 다르게 쓰여졌을 것이라고 많은 학자들이 믿고있다

전쟁 16

<연재16회> 
미군, 오산서 인민군과 첫 교전, 참패

  

  On July 1, the North Koreans began to move again. They crossed
the Hahngang River, took Soowon and pushed toward Osan. The
same day, the first group of American ground troops arrived in
Busan from Japan. It was a 406-man advance group called "Task
Force Smith."

  It was commanded by Lt. Col. Charles B. Smith, a
34-year-old West Point graduate. Smith had fought the Japanese
in the Pacific, but two thirds of his officers had no combat experience
and most of his enlisted men were poorly trained youth around the
age of 20. They thought the North Koreans would run away once they
saw the "invincible" Americans.
  
  Task Force Smith took up hilltop positions at Jookmiryoung near
Osan on July 5. A few minutes past 8 a.m. the GIs saw North Korean
tanks roll down the Seoul-Busan highway. They fired bazookas, but
the 2.36-inch shells bounced off the heavy tanks. Due to the rainy

weather, American air support was impossible.

  The result of the first ever clash between the Americans and the

Communists was a tragic defeat for the Americans with heavy
casualties. Miss Higgins, the pretty and brave war correspondent of
the New York Herald Tribune witnessed this battle. She heard a medic
say in front of a 19-year-old private's dead body, "What a place to die!"

 

*once they saw the "invincible" Americans(그들이 “무적의” 미군을 일단 보기만 하면)
에서 once는“일단 무엇을 하면)이란 뜻이다.  <예문> once you get here, you'll like it
here. 일단 여기 와보면, 여기가 마음에 들 것이다.
*What a place to die!에서 What a place!는 원래 “얼마나 좋은 곳이냐!”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역설적으로 정반대의 뜻을 나타낸 것이다. 그래서 What a place to die!는
“얼마나 죽기에 좋은 곳이냐!”가 아니라 “얼마나 죽기에 나쁜 곳이냐!” 즉 “이런데서 죽다
니!”란 뜻이 되는 것이다. <예문> What a view! 경치 한번 좋구나! / What a girl to date!
저런 아가씨와 데이트 해봤으면! / What nerve! 배짱 한번 좋구나!(“배짱”이란 뜻의 nerve
앞에는 a를 쓸 팔요가 없다.)

 

   7월1일 북한군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한강을 건너가 수원을 점령

하고 오산을 향해 밀고내려갔다. 같은 날, 최초의 미국 지상군 부대가 일본으로

부터 부산에 도착했다. 그것은 406명으로 구성된 선발대로 “스미스 특공대”라

불렀다.
  
  지휘관인 찰스 스미스 중령(34세)은 웨스트 포인트(미국 육사) 출신으로
태평양 전쟁 때 일본군과 싸웠으나 그의 부하 장교들의 3분의 2는 전투
경험이 없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병들은 제대로 훈련을 받지못한 스무살

안팎의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북한군이 “무적의” 미군을 보기만 하면
도망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스미스 특공대는 7월5일 오산 근처 죽미령 고지에 배치되었다. 오전
8시가 조금 지나서 그들은 북한군 탱크가 경부국도를 따라 굴러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바주카포를 발사했으나 구경 2.36인치 바주카 포탄
은 육중한 적 탱크를 맞고 튕겨나갈 뿐이었다. 비오는 날씨 때문에 미공군
기의 지원은 불가능했다. 미군과 공산군의 사상 첫 충돌은 많은 사상자를
낸 미군의 참패로 끝났다. 예쁘고 용감한 뉴우욕 헤랄드 트리뷴지 종군
기자 히긴즈양은 이 전투를 목격했다. 그녀는 열아홉살 먹은 2등병의 시체

앞에서 한 위생병이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런 데서 죽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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