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육,해,공군,종합-1

조화유의 6.25전쟁 이야기

바래미나 2011. 4. 18. 22:24

조화유의 6.25전쟁 이야기

전쟁 17

                                                                                           <그림: 이우정 화백>

<연재17회>    인민군, 금강 건너 대전으로 진격

  

  On July 8, with the approval of the UN Security Council, President Truman named General MacArthur commander-in-chief of the United Nations Command, and MacArthur appointed Lt. Gen. Walton Walker, head of the Eighth U.S. Army, as the commander of the UN ground
forces in Korea.
 
   Walker flew to Daejun and ordered Maj. Gen. William Dean, commander of the 24th Infantry Division, to hold the Communists
north of Daejun to buy time for more U.S. army divisions and the
troops from other UN countries to arrive in Korea.

  Dean deployed his troops along the south banks of the Gumgang
River, the strategically important natural obstacle. The GIs blew up
all the bridges, but during the night of July 14-15, the North
Koreans crossed the river using rafts and barges. Some of them
even swam.

   Outnumbered, Dean's 24th Division suffered heavy casualties and retreated south to the Daejun area. The same day, President Rhee
placed the South Korean armed forces under the UN command for effective conduct of the Allied operations. Although they fought
gallantly, the poorly trained and inadequately equipped South
Koreans played only a supporting role for the Americans who bore
the brunt of the fighting in the early stages of the war.

 

*name과  appoint는 모두 “임명한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appoint를 쓸 경우에는 as가
필요하다. <예문> The president named him foreign minister.=The president appointed him
as foreign minister. 대통령이 그를 외무장관으로 임명했다.
*bear the brunt of∼  무엇의 가장 힘든 부분을 떠맡다. bear 대신 take를 쓰기도 한다.
<예문>The harbor city took the brunt of the typhoon. 그 항구 도시는 태풍의 중심부에
강타 당했다.

 

    7월8일 트루먼 대통령은 유엔안보리의 승인을 받아 맥아더 장군을
유엔군 최고사령관으로 임명했고, 맥아더는 미8군 사령관 월튼 워어커
중장을 유엔군 지상군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워어커는 대전으로
날아가 24보병사단장 윌리엄 딘 소장에게 더 많은 미군 사단 병력과
다른 유엔 회원국 군대가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
공산군을 대전 북방에서 저지하라고 명령했다.

   딘 장군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자연 장애물인 금강의 남쪽 강변에
병력을 배치했다. 미군은 금강의 다리를 모두 폭파했으나, 북한군은
7월 14-15일 밤사이 뗏목과 바아지선을 이용해 강을 건넜다. 적군의
일부는 심지어 헤엄을쳐 건넜다. 숫적으로 열세한 딘 장군의 24
사단은 많은 사장자를 내고 남쪽의 대전 지역으로 후퇴했다.

   같은 날, 이승만 대통령은 효과적인 유엔군 작전 수행을 위해 한국
군을 유엔군 사령관 휘하에 배속시켰다. 한국군은 용감히 싸웠으나
훈련과 장비가 부족했기 때문에 전쟁 초기에는 주공을 맡은 미군의
조연 역할 밖에 하지 못했다. 


                      

   <연재 18회>    대전 함락, 딘 소장 포로로 잡혀

 

    Dean's 24th Division put up fierce resistance in Daejun, but the
city fell on July 20. Dean personally fought enemy tanks, leading a bazooka team. A desperate Dean even fired his pistol at the tanks. Outnumbered again, the GIs had to retreat, leaving over 1,000 killed, wounded or missing.

 

  During the disorderly retreat, Dean got lost and roamed the surrounding hills for five weeks in starvation and
exhaustion until two South Korean civilians found and betrayed him
to the Communists near Jinan. (The two men received a small cash
prize from the North Koreans, but later they were arrested and put i
n jail by the South Korean authorities.)
  
    Maj. Gen. Dean, who had been American military governor in
South Korea prior to the birth of the Korean republic, was the
highest-ranking U.S. prisoner of war in Korea. He was freed at
the war's end in 1953 and wrote his memoirs.

 

   During his three-year captivity he fought loneliness and tedium by counting the flies he
swatted, according to his book. He also made this interesting
observation that Koreans finished their meal by drinking the water
with which they had cleaned the rice-cooking pot. He received the
Medal of Honor for his bravery in the battle of Daejun. "I wouldn't
have awarded myself a wooden star for what I did as a commander,"
he said.
 

*get lost 길을 잃다. Get lost!라고 명령조로 말하면 “꺼져!” “사라져!”란 뜻이 된다.
*prisoner of war 전쟁포로 (POW라고도 쓴다).
*the authorities  정부당국
*swat  파리채(로 잡다).
*according to∼ 무엇에 의하면, 무엇에 따라. <예문> According to the police statistics,
about 50,000 people die in traffic accidents each year. 경찰 통계에 의하면 매년 약 5만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 Each person was paid according to his workload. 각자 작업량에
따라 임금이 지급되었다.

  

딘 장군의 24사단은 대전에서 격렬하게 저항했으나 이 도시는 7월
20일 함락되었다. 딘 장군 자신도 바주카포 팀을 지휘하며 싸웠다.
처절한 심정이 된 딘 장군은 심지어 자기 권총을 꺼내 적 탱크를 향해
쏘기도 했다. 또다시 중과부적이 된 미군은 1천명 이상의 사상자와
실종자를 남기고 후퇴해야만 했다.

   무질서한 후퇴 와중에 딘 장군은 길을 잃고 주변의 야산에서 5주일
동안 굶주림과 피로에 지쳐 방황하다가 진안 근처에서 두 명의 남한
민간인에게 발견되어, 그들의 배반으로 공산군에게 잡혔다. (그 두
명은 북한군으로부터 약간의 현금을 상으로 받았으나 나중에 남한
당국에 의해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대한민국이 탄생되기 전에 미군정장관으로도 일했던 딘 소장은
한국전 미군 포로 중 가장 계급이 높았다. 그는 1953년 전쟁이 끝났을
때 석방되어 회고록을 썼다. 그 책에 의하면, 그는 외로움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파리채로 파리를 잡고 그 수를 세었다.

 

그는 또 한국 사람들은 밥솥 씻은 물(숭늉을 가리킴)을 마심으로써 식사를 끝낸
다는 재미있는 관찰도 적어놓았다. 그는 대전 전투에서 용감히 싸운
공로로 (미국 의회가 주는) 무공훈장을 받았다. “지휘관으로서는 나는
훈장을 받을 자격조차 없다고 그는 말했다.

사진 19 

<연재19회>   김일성, 8월15일까지 부산 점령 명령

  

   The American and South Korean troops were driven back to the next and last natural defense, the Nakdonggang River. In just five weeks the North Koreans had occupied all of South Korea but a small rectangular area (80 kilometers wide and 160 kilometers long) south and east of the river. The Americans called the area "the Busan Perimeter" because at
the southeastern tip of the area lay South Korea's second largest city Busan. The invaders and the defenders were confronting each other
along 240 kilometers of the 525-kilometer-long river.
   
   on July 27, General MacArthur flew to Daegoo, the new temporary capital of South Korea, and ordered General Walker to hold the enemy beyond the Nakdonggang at all costs. MacArthur hinted at a massive landing operation behind the enemy lines in the near future. Two days later, Walker told his officers, "There will be no more retreating.
There's no line behind us to which we can retreat. We're going to hold
this line. Stand or die!"
 
   Premier Kim Il-sung, commander-in-chief of the North Korean armed forces, came down as south as Gimchun just north of the Nakdonggang, and urged his troops to capture Busan by August 15, the fifth anniversary of Korea's liberation from Japan, at any cost.
 
*all of South Korea but a small rectangular area 에서  but은 except(제외한)이란 뜻.
<예문> Anyone but terrorists is welcome to Korea. 테러리스트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한국에 오는 것을 환영한다.
*at all costs=at any cost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hint at∼  무엇을 암시하다.
*Stand or die!  버티든지 죽든지 양자 택일하라! (사수하라!)

   미군과 국군 병력은 다음이자 마지막 자연 방어물인 낙동강으로 밀려
났다. 단 5주일만에 북한군은 낙동강 남쪽과 동쪽의 작은 직사각형 지역
(가로 80km, 세로 160km)을 제외한 남한 전체를 점령했다. 미군은 이
(직사각형)지역을 “부산 한계선”이라 불렀다. 왜냐하면 이 지역 동남쪽
끝에 남한 제2의 도시 부산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침략군과 방어
군은 낙동강 525km 중 240km에서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7월 27일 맥아더 장군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임시 수도 대구로 날아와
워어커 장군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북한군을 낙동강 너머에서
저지시키고 있으라고 명령했다. 그는 가까운 장래에 적의 후방에 대한
대규모 상륙작전이 있을 것이라고 암시했다. 이틀 후 워어커는 휘하
장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더 이상의 후퇴는 없다. 우리 뒤에는 더
후퇴할 전선도 없다. 우리는 이 전선을 지킨다. 목숨을 걸고 사수하라!”
  
  북한군 총사령관인 김일성 수상은 낙동강 바로 북쪽의 김천까지 남으
로 내려와 일본으로부터의 해방 5주년 기념일인 8월 15일까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부산을 점령하라고 인민군을 독려했다.

 

<다음은 20, 21, 22회로 이어집니다>
Copyright(c)W.Y. Joh 2005.


'그룹명 > 육,해,공군,종합-1' 카테고리의 다른 글

949고지 전투 (51.11.17~11.18)   (0) 2011.04.18
조화유의 6.25 전쟁 이야기  (0) 2011.04.18
경질된 참모총장 채병덕의 전사   (0) 2011.04.18
영광의 國軍 機甲史 [ 4 ]  (0) 2011.04.18
현충일 노래  (0) 2011.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