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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산전투 (1950. 10. 25 ~ 11. 1 )

바래미나 2011. 4. 18. 23:38

전투기간

 1950. 10. 25 ~ 11. 1

 

전투상황

 

 

운산 전투는 중공군이 한국에 침입하여 최초로 전선에 출현하였을 때 국군 제1사단과 미 제1기병사단이 구룡강 연안의 운산 지역 일대에서 중공 제39군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하여 1주일 동안에 걸쳐서 전개한 방어전투이다.

최초 국군 제1사단이 청천강을 건너 한·만국경선의 수풍 발전소를 목표로 진격작전을 전개 중 10월 25일 운산 북쪽에서 중공 제39군과 조우하여 일대 교전을 벌였다.

10월 28일 오후 6시경, 2명의 중공군 포로를 획득하였는데 이들은 현재 북부전선에 중공군의 정규군이 들어와 있다고 진술하였으나 유엔군은 이를 믿지 못하였고, 오히려 당시 국군 제1사단의 우측 인접부대인 국군 제2군단이 중공군의 포위공격으로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원북상한 미 제1기병사단으로 하여금 국군 제1사단을 추월공격하게 하였다. 이로써 10월 30일, 미군과 중공정규군이 한국전쟁에서 최초로 정면충돌하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한·미 양사단은 1주일 동안 중공군의 침입을 저지하며 그들에게 상당한 타격을 가하였으나 결국에는 방어에 실패하고 대부분의 장비를 잃은 채 영변과 용산동 지역으로 철수하게 되었으며, 특히 미 제8기병연대는 운산에서 중공군에게 포위되어 과반수의 병력을 손실하였다.

11월 1일 밤 8시에 안주에서 열린 유엔군사작전회의에서는 청천강 이남으로의 철수를 결정하였으며, 이에 따라 전선을 조정하기 위하여 미 제8군 좌익의 미 제24사단과 영 제27여단도 평균 50마일을 뒤로 물러서도록 하였다.

 

이 전투로 미 제8군은 그동안의 진격작전을 중단하고 청천강 연안으로 병력을 철수시켜 방어태세로 전환하게 되었으며, 중공군은 전과를 확대하여 구장동-영변-용산동 선까지 침입하게 되었다.

 

 이때 중공군은 처음으로 미군과 접전을 한 후 그들 나름대로 미군을 분석한 '운산전투 평가'라는 팜플렛을 만들어 예하부대에 배포함으로써 미군과의 전투를 대비하였다.

이 내용에는 미군은 보,전,포 협동작전능력 특히 항공기의 위력에 대하여 높이 평가하였으나, 미군의 보병은 나약하고 겁이 많다고 지적하였으며 특히 후방차단에는 속수무책인 부대로 평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