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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살아있는 역사: 서울 수복 60주년| 심은경의 한국 이야기

바래미나 2010. 10. 14. 20:47

#89 살아있는 역사: 서울 수복 60주년

심은경의 한국 이야기

 

네티즌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9월의 마지막 주 어느 맑은 가을날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으로부터의 서울 수복 6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에릭 K. 신세키 미국 보훈부 장관 내외께서 대통령 대표단을 이끌고 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하셨는데요, 다른 UN 참전국 대표단과 서울의 자매도시인 아디스 아바바와 방콕 시장님들과 함께 자리를 빛내주셨습니다. 9 27일과 28일 이틀 동안 각국 대표단과 전세계에서 모인 한국전 참전용사, 한국 국민들이 함께한 여러 감동적인 기념행사가 열렸습니다. 각국 대표들은 용산 전쟁기념관과 국립묘지에서 헌화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주최한 잊지 못할 수복행사 기념식에 참석하였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신세키 장관 내외 

신세키 장관 내외께서 경복궁에서 식전 공연을 관람하고 있습니다.

 

전쟁기념관에서 묵념하고 있는 미국 대통령 대표단  

지난 9 27일에는 서울에 있는 제 관저에서 신세키 장관님과 대표단을 위한 리셉션을 개최하였답니다. 정확히 60년전인 1950 9 27일은 북한군이 장악했던 주한미국대사관저를 되찾은 날이었습니다. 지금 관저에는 이 순간을 기록한 사진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당시 19살이었던 미 해병대 제1연대 루터 르과이어 이병이 대사관저 지붕에 올라가 미국 국기를 게양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입니다. 당시는 서울이 완전히 수복되기도 전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를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미 해병대 제 1연대의 루터 르과이어 이병이 서울 수복 후 미국 대사관저에 성조기를 게양하는 모습 

저는 이렇듯 중요한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관저에 살면서 그 당시의 기록들을  찾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당시 주한미국대사관의 1등 서기관이었던 해롤드 노블은 1953년에 쓴 저서,Embassy At War」에서 곁에서 직접 지켜본 당시 주한미국대사의 삶이 어떠했는지 생생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노블은 당시 주한미국대사였던 존 J. 무초 대사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초대 주한미국대사로서 그는 1950 6 25일 새벽,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기습 남침한 사실을 워싱턴에 알렸습니다. 또한 노블은 이 책에서 무방비 상태였던 한국군과 미국 군사 고문단이 미국과 UN군이 속속 도착하는 대로 지원을 받지만 결국 낙동강까지 밀려가면서 북한군이 급속도로 한국의 대부분 지역을 장악하는 과정, 그리고 부산 방어선을 구축해 그곳에서 군수물자와 증원군을 받게 되는 상황을 자세히 그리고 있습니다.    

지난달, 닷새동안 이어진 를 통해 저는 노블이 묘사한 곳들을 직접 돌아보았습니다. 낙동강 방어전투는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한국전쟁의 전세를 뒤집는 계기가 되었으며 9월 말, 한국과 미국, 그리고 UN군은 마침내 서울로 진격해 치열한 전투 끝에 서울을 탈환하였습니다.  

대한민국 건국 직후 초대 주한미국대사로 부임한 존  J. 무초 대사가 1948 8 24일 김포 공항에 도착하는 모습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정부를 이끌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을 때 해롤드 노블도 무초 대사와 함께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당시 무초 대사와 해롤드 노블이 목격한 상황을 묘사한 부분을「Embassy At War」에서 발췌해 아래에 소개할까 합니다. 

“폐허가 되어버린 길거리에는 남녀노소할 것없이 많은 시민들이 나와 이승만 대통령의 차량행렬이 지나가자 태극기를 흔들며 열렬히 환호하였다. 모두들 굶주림과 질병으로 야위고 지쳐보였다. 이런 환호는 자발적인 것이 분명했다. 이들에게 거리에 나와 환호하라고 지시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 모두 서울을 되찾고 정부가 돌아온 사실에 기뻐 열광하였고 머지않아 예전과 같은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눈물을 흘렸다.    

부서지고 불에 타버린 서울의 모습은 한마디로 처참했다. 부산에서 브리핑과 소식을 전해들었지만 이 정도로 참혹한 모습일줄은 상상도 못했다. 시간이 흐른 후 찬찬히 도시의 모습을 살펴보니 더욱 암담하고 끔찍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요코하마와 도쿄에 있었지만 서울은 그보다 훨씬 심각한 피해를 입은 모습이었다. 파괴된 도시의 모습에 우리 모두 참담함을 금치 못했다.  

노블은 또한 1884년부터 미국의 공식 대사관저로 쓰인 무초 대사의 관저에 돌아온 날도 기록하고 있는데요, 관저는 매우 심하게 파손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 무초 대사와 내가 살았던 대사관저 1지역으로 차를 몰았다. 얼핏 보아도 포격으로 인한 물리적 피해를 절감할 수 있었다. 관리인들이 살던 2층짜리 숙소 측면은 정면으로 포탄을 맞아 산산조각이 났고 옆에 있는 두 채의 작은 집도 피해를 입었는데 그 중 하나는 복구가 불가능한 정도였다. 특히 무초 대사는 평생 전세계를 다니며 모은 수집품들이 사라진 데 크게 상심하였다. 관저가 피해를 입은 모습에 무초 대사는 무척이나 마음 아파했고 다시 관저에서 살 엄두가 나지 않는 듯했다. 

루터 르과이어 이병이 대사관저에 성조기를 게양하는 사진을 옆에 두고 신세키 장관님과 나란히 섰습니다.   

2010 9 27, 우리는 60년 전의 희생과 고통을 되돌아보면서 당시 굳건한 의지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누리게 된 모든 것, 즉 풍요롭고 민주적인 한국,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수도 서울, 그리고 아주 특별한 한미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관저에 모여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의 도전과제 해결을 위한 협력을 기대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