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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수환 추기경 이야기] 제68화 침묵의 교회, 북한

바래미나 2010. 9. 22. 00:57

 

 

1989년 11월 9일. 동구권에 불어닥친 자유화,개방화 물결에 힘입어 동서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오랜 동안 냉전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있어서 동구권의 붕괴는 하나의 기적이었다. 이제 세계 질서는 재편될 것이고 인류는 새로운 시대에 직면하리라는 것을 예감할 수 있었다.

"동구권 붕괴는 정말 글세 전문가들에게는 모르겠지만 우리들에게는 뜻밖의 일이었죠... 아무튼 우리 편에서도 어떤 변화가 있지 않겠는가."

그런 기대 속에 91년 12월에 열린 제5차 남북고위급 회담은 남북한 관계에 있어서 하나의 전환점이 됐다.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채택된 것이다.

"내가 그걸 그 애기봉에 가서 성탄을 앞두고... 아무튼 여러 가지 교류가 있었고."

"그래서 우리도 인제 적극적으로 남북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자신으로서 대처해야되겠다... 그게 인제 비축이 돼가지고 나중에 북한을 돕는데 상당히 큰 몫을했다고 보여집니다."

90년대 북한 선교 운동이 활발해진 것은 성체대회를 거치면서 높아진 선교 의식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결국 대내외적인 정치 상황과 한국 교회의 내적인 성숙이 맞물려 북한과의 활발한 교류를 추진케하는 힘이 되었고, 분단 이후 꾸준히 이어온 북한 교회에 대한 관심도 그 밑바탕이 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86년이라고 기억하는데, 평양에서 그때 전 세계적으로 비동맹국가연합이라는게 있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두 분을 보낼 수가 있었습니다."              

"아마 내가 확실한 건 모르지만 한 4박5일인가 그렇게 있지않았던가... 이런 걸로서 알 수 있다고 이렇게 말했어요."

"그렇게 하고 몇 달이 지난 다음에 이번에는 그런 접촉을 조금 어떤 의미로 지속시키기 위해서... 그러다가 그렇게 돌아갔습니다."
      
"또 하나는 장익 신부님이 돌아왔을 때 이북측에서 저를 초대하는 그런 초대장을 가지고 왔어요... 말만 자꾸 계속 있었죠."

그 사이 북한에선 장충성당이 세워지고 개신교 측의 봉수교회가 지어지는 등 일부 변화가 감지됐다. 그러나 신부 파견 의사를 밝혔을 때 북한으로부터 돌아온 것은 침묵 뿐이었다.
      
"우리는 장충성당 짓고 난 다음에 그 기회를 타서 교회라는, 성당이라는 것은 신부가 상주해야 된다... 그 성과도 오늘까지 별로 없고."

"북한교회는 그야말로 명실공히 침묵의 교회예요... 그런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있지 않겠는가 이런 기대가 있죠."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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