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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수환 추기경 이야기] 제67화 문민정부가 가져다 준 여유

바래미나 2010. 9. 22. 00:57

 

 

1992년 12월 18일. 제14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실질적으로는 3당 합당으로 여당에 합류한 김영삼 후보와 또다시 대권에 도전하는 김대중 후보의 승부였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지금 각 정당과 대통령 후보 자신들은 필승을 다짐하면서 모든 두뇌와 조직과 능력을 동원하여 전력 투구할 것입니다. 그와함께 이제 선거열기는 날로 더욱 뜨거워질 것입니다. 따라서 국민의 관심도 점차 그 대선에로 집중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뜻있는 국민들의 관심은 대통령 후보 자신들이나 각 정당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국민을 위해서는 누가 당선되고 어느 정당이 이기느냐는 이차적인 문제입니다. 이 선거에서 이겨야 할 것은 특정인이나 어느 정당이 아니라 국민이요, 나라입니다." - 1992.10.27.종교지도자 초청 심포지움 기조연설 중에서 -

"언제든지 선거는 공명정대하기 되기를 바라는 거고... 그런 것이 마음의 소망이었고."

"그때 선거에 김영삼씨가 됐거든. 근데 김영삼씨가 날 찾아왔단 말이야... 그 말이 언론에까지 나갔어요."

어찌됐건 오랜 숙원이었던 문민정부가 마침내 들어서면서 수환은 어느 만큼의 안도를 느꼈다. 더이상 시국에 관여하지 않고 종교 본연의 자리로 돌아왔으면 하고 바래왔던 수환의 오랜 소망이 비로소 그 때를 만난 듯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 6.29 선언 이후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고 그때도 벌써 그런 생각했지만... 나까지 나서서 말할 필요가 없었지 자연히."

"마음이 좀 편했겠지... 내적으로 좀 여유롭게 됐다고도 표현할 수 있겠지."

그 때문일까.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수환의 외출이 잦아진다. <쉰들러리스트>, <포레스트검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과 <명성왕후> 등은 모두 이때에 관람한 영화와 공연들이다.
      
"옛날에는 사실 내가 젊었을 때는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혼자서 방 안에서 운 때도 있고 그래요."

 "내가 영화보고 운 거는 벨라뎃다의 종이라는 루르드의 성녀 벨라뎃다의 그 영화가... 혼자서 눈물을 주르르르 흘리도록 만들었어요."

"네 조금 약간. 그렇게 뭐 일반 인기 가수들이나 이런 것처럼 그런 건 아니고...나는 그 말 많이 듣습니다. 이렇게 허허."

"아마 등산을 한 것이 80년대 중반부터가 아닌가 싶어요."

"특별히 테니스도 못하게 되고 이렇게 된 다음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운동이라면 등산이니까... 요즘은 뭐 못간지 오래됩니다만."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또다시 새로운 시기를 맞이한 교회도 사목 방향을 다시 한번 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소공동체 운동이다.
      
"우리가 거듭되는 거는 해마다 사목지침으로 내건거는 복음화였을 거예요. 교회의 복음화... 그래가지고 그때부터 복음묵상나누기가 시작돼가지고 지금도 하고 있는 줄 알고."       

"한국교회는 사회의 산업화와 국제화의 큰 변화에 직면하고 있으며, 정치 문화적 격동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목활동도 본당 중심이고
성직자 위주인 가부장적이며 획일적 패턴에서 변화를 시도해야 할 것이며, 아울러 전문직 사목, 특수분야 사목에 많은 성직자들이 봉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근본문제는 이것입니다. 즉, ‘그리스도를 닮은 사제’를 양성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떤 분야에 전문지식을 갖고 있고, 여러 가지 언어를 할 줄 안다해도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의 사제로서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살 줄 모르면, 그런 의미로 기도하는 사제, 투신하고 봉사하는 사제가 아니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먼저 인간 성숙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 1994.7.8. 사제양성자 연수회 강연 중에서 -

"우리가 복음에 보면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죠... 나부터 되지 못하고 말만 그렇게 하게 되는 아쉬움이 있죠."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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