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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센 경기관총 경기관총의 선조

바래미나 2019. 1. 7. 14:32

마드센 경기관총 경기관총의 선조
마드센 경기관총 <출처: Public Domain>

개발의 역사

기관총은 원래 ‘무거운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가장 처음으로 기관총이라 불릴만한 무기였던 개틀링부터 시작해 19세기에 잇따라 등장한 가드너나 노르덴펠트 등 여러 종류의 수동식 기관총, 그리고 최초의 진정한 기관총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 맥심 기관총에 이르기까지, 1880년대까지의 기관총은 하나같이 무거우면 몇 백 킬로그램, 가벼워봤자 본체만 해도 몇십 킬로그램에 달하는 중량급 무기였다.

개틀링으로 대표되는 수동식 기관총의 시대에는 이런 덩치와 무게가 나름 이유가 있었다. 수동 조작으로 발사 속도를 높이려다 보니 대부분의 경우 발사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여러 개의 총열이 필요했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무게도 부피도 커져야 했다. 하지만 최초의 완전자동식 기관총인 맥심의 경우는 좀 달랐다. 맥심이 제법 무겁고 큰 기관총이 된 것은 오랜 시간 동안 연속 사격이 가능한 충분한 내구성과 기계적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심지어 총열의 과열을 막기 위한 수랭식 설계까지 도입됐다- 총열을 문자 그대로 물속에 담궈 식게 한 것이다.

                 
맥심기관총은 냉각수만 보충하면 수만발까지도 연속사격이 가능한 진정한 기관총이었다. <출처: Public Domain>

이런 설계 상의 배려로 인해 맥심은 냉각수만 꾸준히 보충해주면 수천 발, 경우에 따라서는 수만 발까지의 연속 사격에도 견딜 수 있었다. 과열보다 오히려 총열 등의 부품 마모가 먼저 걱정될 수준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맥심은 기존의 수동식 기관총들과 달리 단 하나의 총열과 노리쇠만으로도 얼마든지 1초에 10발대의 높은 발사 속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단 맥심이 자동 사격이라는 봉인을 풀자 다른 설계자들이 완전자동 혹은 반자동 기구를 더 작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결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실 총탄이 발사될 때 생기는 반작용이나 고압의 가스 등을 이용해 총기를 자동, 혹은 반자동으로 작동시킨다는 아이디어 자체는 맥심만 떠올린 것이 아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여러 발명가들이 비슷한 아이디어를 떠올려 설계를 진행하고 있었고, 그중 두 명이 덴마크의 포병 장교인 빌헬름 올루프 마드센(Vilhelm Oluf Madsen)과 덴마크 정부 조병창의 병기 기술자인 루스트메스터 라스무센(Rustmester Rasmussen)이었다. 1883년에 마드센은 총탄이 발사될 때의 반작용으로 총열을 후퇴시켜 작동 에너지를 얻는 복좌 작동 기구(Recoil operation)을 이용해 반자동 소총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이 아이디어를 기초로 라스무센이 설계를 진행해 1888년에는 최초의 ‘자가 장전식 소총(Forsøgsrekylgevær: Self Loading rifle)을 만들어냈다.

포병장교이자 총기설계자였던 빌헬름 올루프 마드센 <출처: Public Domain>

그러나 초창기의 무기들 대부분이 그렇듯 이것도 성공적이지 못했다. 작동 신뢰성부터 시작해 개선해야 할 점이 많았고, 결국 본격적인 생산에는 도달하지 못한 채 개량이 추가되면서 1896년에는 나름 개선된 형태인 1896년형 반자동 소총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 반자동 소총은 덴마크 해병대에 채택은 되었으나 해안 방어 요새를 경비하는 병력이 사용하는 외에는 쓰이지 않았고 생산량도 많아야 60정 정도였다.

이처럼 소총은 성공적이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덴마크군에 납품이 되어 “세계 최초의 군용 반자동 소총”이라는 타이틀은 얻었고, 이처럼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자 1898년에 투자가들이 DRS(Dansk Riffel Syndikat: 덴마크 소총 합자회사)라는 회사를 차린 뒤 마드센과 라스무센으로부터 관련 특허를 사들였다. 이 무렵 마드센은 회사를 떠나 덴마크 국방장관으로 취임했지만, 그래도 마드센과 라스무센 모두 이 회사에서 그들의 특허를 응용한 총을 만들 때마다 일정한 로얄티를 받기로 했다.

                 
마드센과 라스무센이 만든 M1888 자동장전소총 <출처: Danish Arms & Armour Society>
1899년, DRS에는 옌스 슈오뵈(Jens Schouboe)라는 중위가 합류하게 된다. 그는 곧 이 회사에서 마드센이 만들었던 소총 및 기타 연구 결과를 토대로 추가적인 개량을 시작하는데, 그런 그가 착수한 것이 1896년형 반자동 소총을 기관총으로 개조하는 것이었다.
덴마크 박물관이 소장한 마드센 1888년형 반자동 소총 <출처: Statens Forsvarshistoriske Museum>
사실 반자동 소총 그대로는 시장성이 없었다. 총 자체도 일반 소총으로 쓰기에는 크고 무거운 데다 비싸다는 평가가 많았고, 거의 모든 나라가 아직 소총을 반자동으로 전환할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을 기관총으로 바꾼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차라리 조금 더 무겁게 만들어도 완전자동 사격이 가능한 ‘가벼운’기관총으로 만든다면 고객들은 좀 비싸더라도 구입할 것이고 시장에서의 수요도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덴마크 박물관이 소장한 마드센 1896년형 반자동 소총 <출처: Statens Forsvarshistoriske Museum>

1901년, 슈오뵈의 주도로 마드센 소총은 마드센 기관총으로 재설계 되어 특허가 출원되었고 곧 덴마크를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에 특허가 출원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새로운 장르, 즉 사람 한 명이 휴대할 수 있는 ‘경(輕) 기관총’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그 이전까지의 기관총은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중(重) 기관총이 되었다.

이 새로운 총은 마드센 경기관총으로 불리게 되며, 오래지 않아 세계 최초의 실용 경기관총일 뿐 아니라 최초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경기관총이 되었다.

마드센 경기관총 <출처: Public Domain>


특징



마드센은 아직 자동화기의 작동 구조가 정립되지 않은 극초기의 설계인 만큼 지금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기묘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더 신기한 것은 이 기묘한 방식으로도 상당한 작동 신뢰성과 나름 콤팩트한 몸통 구조를 완성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반대쪽에서 본 마드센 경기관총 <출처: Public Domain>
마드센은 롱 리코일(Long Recoil), 즉 총열이 거의 탄 전체의 길이에 맞먹는 긴 거리를 왕복하는 방식이다. 간단하게 말해 대포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사실 자동화기의 작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탄피가 약실 압력이 충분히 떨어지기 전에 배출되지 못하게 막아주는 것이고, 롱 리코일은 총열이 길게 후퇴하면서 충분한 시간을 벌어주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는 매우 우월하다. 또 총열의 왕복 시간이 긴 만큼 발사 속도도 느리다. 마드센의 발사 속도는 1초에 7~8발 사이(분당 450발)라는 매우 느린 수준이라 조금만 익숙해지면 한 발 씩 끊어 쏠 수 있을 정도인데, 덕분에 사수가 쉽게 탄 소모를 제어할 수 있다- 물론 무거운 총열의 왕복으로 인한 진동은 만만치 않지만, 대신 탄의 발사 그 자체로 생기는 반동만큼은 상당 부분 완화할 수 있다.
마드센의 작동 모습 <출처: 유튜브>
물론 롱 리코일 방식은 총열의 왕복으로 인해 명중률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단점은 있고, 이 때문에 마드센 1896 소총을 1903년에 테스트한 미군의 평가도 이를 단점으로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기관총은 애당초 소총만큼의 단발 명중률이 요구되는 총기가 아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소총을 기관총으로 장르 변경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덴마크군 교범에 나온 탄약띠 급탄형 마드센 <출처: Public Domain>
롱 리코일 기구는 총기에 쓰인 사례가 많지는 않으나 없지는 않다. 기관총이나 산탄총 등 일부 총기들이 롱 리코일 기구를 답습한 바 있다. 그러나 노리쇠의 작동 구조는 정말 전무후무한 것이다. 보통 총열이 앞뒤로 움직이면 노리쇠도 이를 따라 앞뒤로 움직이게 마련이다. 맥심이나 루거처럼 노리쇠에 상하 방향으로 꺾이는 관절이 붙어있는 토글액션 총기도 노리쇠의 작동 방향 자체는 전후 직선이다. 그러나 마드센 기관총은 다르다. 노리쇠가 위아래로 움직인다.
마드센 경기관총의 내부 단면도. 복잡한 노리쇠의 작동 방향을 보여준다. <출처: Public Domain>

발사 순간에는 당연히 노리쇠가 총열과 같은 축선에 머무른다. 그러나 총열이 대략 12.7밀리쯤 후퇴하면 노리쇠가 위로 들어올려진다. 총열이 끝까지 후퇴하는 과정에서 탄피가 배출된 다음(탄피를 끄집어내는 갈퀴는 별도의 레버 형태 부품으로 총열 아래에 있다) 다시 총열이 전진하면 노리쇠는 탄창 맨 위의 탄을 밀면서 아래로 내려가고, 탄은 약실로 밀려 들어가면서 노리쇠가 총열 뒤에 닫혀 재장전 과정이 끝난다.

마치 전차포의 포미 구조와도 비슷한 이 노리쇠 작동 구조는 1870~80년대에 영국군이 쓰던 마티니-헨리 단발 소총의 구조를 참고한 것인데, 비록 후대에 그 어느 총에도 이어지지 않았다. 사실 이 구조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게 신기한 기묘한 구조이기도 하지만, 부품 숫자가 많고 복잡하다.

마드센용 탄창 <출처: Public Domain>

사실 이 총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바로 탄창이다. 상자형 탄창을 총 위에 장착해 급탄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시기에 교체식 상자형 탄창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었으나, 많은 기관총 발명가들은 맥심의 탄약띠 방식처럼 장시간의 지속 사격이 가능한 급탄 방식의 발명을 위해 많은 애를 썼다. 그러나 마드센은 욕심을 버리고 단순하고 평이한 상자형 탄창을 채택했으며 이것이 상업적 성공의 비결 중 하나였다. 비록 지속 사격 능력은 탄창의 용량으로 제한되지만, 사격의 신뢰성이 높은 데다 재장전 시간도 빠른 데다 복잡하고 큰 기계적 구조가 필요 없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운용의 역사


마드센은 사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기관총이다. 그러나 1차세계대전까지 나온 경기관총으로는 가장 실용성 있는 총들 중 하나였고, 1909년 이전에는 경기관총이라는 총이 필요한 고객에게는 사실상 유일한 선택이었다. 삼각대 등의 다른 부속이 필요한 중기관총들과 달리 한 사람이 휴대할 수 있고, 또 사격 자체도 양각대만 펼쳐서 쉽게 거치 사격이 가능한데다 급하면 소총처럼 사격을 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가능했다.

마드센 경기관총 실사격 <출처: 유튜브>

이 때문에 이 총은 무려 50년의 시간 동안 34개국에 채택되었으며 각종 탄약의 베리에이션도 12종에 달한다. 그야말로 당대의 주요 탄약들은 다 거쳐갔다고 해도 좋을 수준이고, 그만큼 많은 나라들에 보급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초기에 이 총을 구입한 나라들은 기병대나 산악부대 등 누가 봐도 가벼운 총이 필요한 부대들을 위해 배치했다(기병대라고 해도, 이 시기에는 대부분이 기마보병, 즉 이동만 말을 타고 하며 전투는 내려서 하는 부대이기 때문에 말 위에서 총을 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휴대의 편리함 때문에 사용하는 총의 부피와 무게를 중시했다). 대표적인 나라가 러시아로, 1,250정을 구입해 기병대용으로 배치한 뒤 이를 러일전쟁에서도 사용해 나름 성과를 거두었다.

체코슬라비아군단 소속의 병사가 마드센 기관총을 발사하고 있다. <출처: Public Domain>

1차세계대전에서도 마드센은 여러 나라에서 사용되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독일이었다. 독일군은 1914년에 대량의 마드센을 자국군용의 7.92mm탄 버전으로 덴마크에서 수입한 뒤 이를 산악부대나 기병대 등에 배치했지만, 전쟁 후반에는 적 참호를 기습하는 돌격부대용으로도 애용했다. 사실 1차세계대전 중 독일군은 노획한 연합군 경기관총들도 이런 용도로 많이 쓴 만큼 마드센을 이런 용도로 쓰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마드센의 고객 국가 중에는 중남미의 국가들도 있었다. 이 나라들은 돈이 없는 만큼 맥심이나 비커스 등 연사 능력이 높은 중기관총을 살 돈도 부족한데다 정글 등으로 교통이 열악한 곳에서 싸울 가능성이 높아 가벼운 마드센이 유리했다. 실제로 파라과이와 볼리비아는 1932~1935년 사이에 벌어진 양국 간의 전쟁에서 모두 마드센을 사용했는데, 심지어 사용 탄약도 두 나라가 같았다.

마드센으로 무장한 2차 대전 직전의 노르웨이군 병사 <출처: Public Domain>
마드센은 2차세계대전 중에도 꾸준히 사용됐다. 노르웨이와 덴마크군은 몰려오는 독일군을 맞아 마드센을 사용했고, 이 두 나라를 점령한 독일군은 노획한 마드센을 후방에서 사용했다. 심지어 덴마크는 1942년까지도 독일 점령군을 위해 마드센 생산을 계속해야 했다. 네덜란드 역시 식민지인 동인도제도(오늘날의 인도네시아) 지역 주둔군을 위해 마드센을 사용했고, 이 총들 중 일부는 2차세계대전 중 일본군에 노획되어 사용되기도 했다.
전용 삼각대를 대공용으로 변형시켜 대공사격 중인 덴마크군 병사 <출처: Public Domain>
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마드센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구식으로 도태되었지만, 사라진 것은 절대 아니었다. 종주국 덴마크에서는 1955년까지 운용되었고, 아일랜드군도 1950년대까지 장갑차 무장용으로 사용한 마드센 경기관총을 버리지 않았다. 포르투갈군은 1960~70년대 사이에 앙골라나 모잠비크, 티모르 등에서 벌인 식민지 반란 진압을 위해 마드센을 사용한 바 있다.
브라질 경찰은 최근까지도 마드센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갱단들과 교전했다. <출처: laststandonzombieisland.com>

하지만 가장 오랫동안 마드센을 사용한 나라는 역시 브라질이다. 브라질 군이 사용하던 마드센은 1996년까지 사용되다 퇴역한 뒤 브라질 경찰에 이전되어 중무장한 범죄자들을 상대로 오랫동안 사용되었는데, 이 총들이 보다 현대적인 총으로 대체된 것은 2008년의 일이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공식 발표일 뿐이고 2013년에도 브라질 경찰이 마드센을 사용하는 모습이 목격되었다고 한다.


베리에이션


1926년형 마드센 수랭식 버전 <출처: Public Domain>
마드센은 적어도 12가지의 다양한 탄약에 맞는 변형들이 만들어졌지만, 총 자체는 꽤 오랫동안 큰 변함없이 만들어진 편이다. 하지만 전차나 장갑차량, 항공기 탑재를 위해 탄창 대신 탄약띠를 사용하는 베리에이션도 만들어졌고, 이것이 몇몇 국가에서 꽤 오랫동안 장갑차량 무장용으로 사용된 바 있다. 심지어 1920년대에는 수랭식 버전도 만들어졌다.
또 다른 탄약띠 급탄형 마드센. 차량이나 항공기 거치용으로 만들어진 버전이다. <출처: Public Domain>
마드센의 베리에이션 중에는 영국에서 만든 ‘렉서(Rexer)’ 기관총도 있다. 이 총은 마드센을 영국군에 채택시키기 위해 영국의 대리점 역할을 하던 업체인 렉서에서 제작한 것인데, 문제는 이 총이 정식 면허 없이 만들어진 불법복제품이라는 것이다. 결국 정품 마드센도 해적판 렉서도 영국군에 채택되지는 못했지만, 남아프리카의 나탈 지역 민병대에서 원주민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목적으로 소수를 구입했다. 결국 렉서 기관총은 법적인 문제로 인해 1906년부터 1911년까지만 생산되었다.
마드센의 23mm 기관포 버전 <출처: Public Domain>

또 다른 베리에이션은 1930년대부터 2차세계대전 사이에 사용된 20mm 기관포 버전이다. 그야말로 경기관총의 덩치를 키워서 기관포를 만든 것 같은 물건으로, 덴마크군은 물론 스웨덴 등 약 20개국에서 사용된 나름 인기작이었다. 원래의 20mm 버전 이외에도 23mm 버전도 존재하며, 항공기나 고속정, 장갑차량 등의 무장으로 사용되었다.


제원


- 무게: 9.07kg
- 길이: 1.143m
- 총열 길이: 584mm
- 발사속도: 450발/분
- 탄창: 25연발, 30연발, 40연발
- 사용탄: 8x58mm R, 7x57mm, 7.92x57mm 등 약 12종


저자 소개  


홍희범 | 군사전문지 편집장

1995년 월간 플래툰의 창간멤버로 2000년부터 편집장으로 출간을 책임지고 있다. 2008년부터 국군방송 및 국방일보 정기 출연 및 기고를 하고 있으며, <세계의 총기백과>, <밀리터리 실패열전> 등을 저작하고 <2차세계대전사>, <컴뱃 핸드건>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