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표적인 총기제작사인 레밍턴(Remington Arms Company, LLC)은 1816년 뉴욕주 일리온에서 엘리파렛 레밍턴(Eliphalet Remington)에 의하여 E. Remington & Sons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즉 미국의 총기회사 가운데 가장 오래된 회사가 레밍턴으로, 지금도 소총과 산탄총의 최대 생산업체가 바로 레밍턴이다. 총기를 개발하면서 탄환도 생산하여 레밍턴은 미국의 대표적인 탄환제작사이기도 하다.
레밍턴의 대표적인 산탄총은 모델 870으로 현재에도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이와 쌍벽을 이루는 소총이 바로 모델 700 볼트액션 소총이다.
개발의 역사
레밍턴은 1차대전이 끝나자 이상적인 볼트액션 소총을 개발하고자 했다. 1차대전으로 소총의 대세가 볼트액션 방식으로 정해지면서 상업적으로 성공할만한 볼트액션 소총이 없이는 민수시장에서도 성공을 거둘 수 없음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레밍턴이 개발한 소총이 모델 30 볼트액션 소총이었다.
모델 30은 M1917 엔필드(Enfield)소총에 바탕했는데, 이 소총은 1차대전에 파병된 미군 원정군의 주력소총이었다. 미군의 M1917 엔필드 소총은 레밍턴이 면허생산하여 납품했는데, 레밍턴은 양산 후 남은 부품들을 조합하여 레밍턴의 설계자인 루미스(Oliver H. Loomis)와 로위(A.L. Lowe)가 모델 30 소총을 개발했다. 모델 30은 당대의 소총으로 쳐도 무겁고 가격도 비쌌으며, 그 결과 1921년부터 1925년 사이에 불과 2,900여 정 만이 판매되어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한편 1926년이 되자 레밍턴은 모델 30 익스프레스(Express) 소총을 선보였다. 모델 30 익스프레스는 좀더 짧은 총열을 채용하고 무게도 감소시켰으며, 작동방식에서도 약실 폐쇄시가 아니라 개방시에 장전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익스프레스 모델은 방아쇠도 개선되었을 뿐만 아니라 외양도 더욱 가다듬어졌다. 그리고 1930년에는 더욱 개량된 모델S 스페셜 그레이드 볼트액션 소총이 발매되었다. 이 시리즈의 소총은 1949년에 생산이 종료되고, 그 자리를 대신하여 모델 720 계열이 주력 상품으로 등장했다.
모델 720은 레밍턴이 야심차게 준비한 회심의 역작이었지만, 2차대전으로 인하여 개발이 엄청나게 지연되었다. 1940년부터 레밍턴은 모델 720을 약 4천 정을 만들었는데, 미 정부가 대부분을 사들였지만 이들은 실전에 배치되지 않고 치장되었다. 1944년 무렵 전쟁은 끝이 보여가고 있었고, 레밍턴은 이제 슬슬 전후의 총기시장을 걱정하기에 이르렀다. 2차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레밍턴은 소총판매에 있어서는 윈체스터(Winchester)와 새비지(Savage)에 이어 3위에 불과했다. 전후에 다시 부흥할 민수소총시장에서 필승할 수 있는 볼트액션소총의 개발을 위해 레밍턴은 다시 모든 능력을 모았다.
이에 따라 1948년 레밍턴은 모델 720을 그대로 생산하지 않고, 멀 워커(Merle "Mike" Walker)와 호머 영(Homer Young)의 설계로 2가지 신형 볼트액션소총을 선보였다. 30-06 스프링필드(Springfield)탄과 270 윈체스터 탄환을 사용하는 모델 721 롱액션 소총과 300 새비지 탄과 257 로버츠(Roberts)탄을 사용하는 모델 722 쇼트액션 소총이었다. 이들 총기에는 원형 리시버가 사용되면서 제작단가가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중심을 잡기가 편해져서 정확성이 더욱 향상되었다. 특히 모델 721은 구조를 단순화하기 위해 독일의 마우저 Kar98 볼트액션 소총을 참조했다.
그러나 1928년에 처음 등장한 윈체스터 M70 소총은 30년 가깝게 전문적인 사격수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어왔다. 모델 721이나 모델 722는 뛰어난 소총이었지만,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M70 소총을 제압할만한 특별한 상품성이 없었다. 결국 레밍턴은 M720 시리즈의 모든 노력을 모아 모델 725 소총을 1958년 발매했다. 그러나 역시 모델 725도 윈체스터를 압도할만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지는 못했다.
레밍턴을 딜레마를 맞이했다. 윈체스터 M70을 능가할만한 우수한 성능을 가지면서도 생산가격을 급격히 낮추어 경쟁력이 있는 소총을 만들어야만 했다. 이 임무는 이제는 레밍턴 사의 수석 엔지니어가 된 마이크 워커에게 주어졌다. 벤치레스트 사격(benchrest shooting) 전문가였던 워커는 모델 40-X 벤치레스트 소총의 특징을 새로운 소총에 적용하여 민수고객들의 요구사항을 만족시키고자 했다. 또한 7mm 레밍턴 매그넘 탄환을 개발하여 탄도특성도 만족시켰다. 이렇게 1962년에 새롭게 등장한 것이 바로 레밍턴 모델 700 소총이었다.
레밍턴 700은 발매와 동시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특히 윈체스터 모델 70을 저격총으로 사용하면서 불만을 갖던 해병대가 1966년부터 M40이라는 제식명으로 채용했다. 해병대는 M40을 집요하게 집착하여 1970년대에는 M40A1, 2001년부터는 M40A3를 거쳐, 2009년에는 M40A5까지 선보였다.
특히 세계 최고수준으로 평가되는 미 해병대 스카우트 스나이퍼의 총기였기에 결국 미 육군도 레밍턴 M700을 군사화한 모델을 채택하여 M24 저격무기체계(Sniper Weapon System)를 선정하게 되었다. 인기는 군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경찰에서도 저격용소총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경찰용 저격총기시장의 90%를 레밍턴 M700이 장악했다.
레밍턴 700 소총은 50여년간 무려 500만 정 이상이 생산되어 팔려나갔다. 오래된 총기이고 방아쇠 스캔들이 발생하는 등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대중과 군의 인기를 받는 저격총으로서 현역을 지키고 있다. 미 육군은 M24를 개량하여 레일 등 현대적 감각을 가미한 M2010 ESR(Enhanced Sniper Rifle)을 선보였는가 하면, 모델 700 택티컬 샤시(Tactical Chassis)처럼 개량형이 등장하면서 레밍턴 700은 여전히 현역을 지켜나가고 있다.
특징
레밍턴은 모델 700을 발매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견고한 볼트액션 소총"으로 홍보했고, 양산소총 가운데 가장 정확성이 높다고 자부해왔다. 이러한 내구성과 정밀도는 원형 실린더, 플로팅 배럴, 매우 짧은 폐쇄격발 간격, 그리고 섬세한 방아쇠 등에 기인한다.
레밍턴 700은 마우저 방식의 노리쇠를 채용하여 전형적인 이중폐쇄 방식의 노리쇠를 채용했다. 이중폐쇄돌기로 확실히 약실을 폐쇄하며 반동도 잘 버틸 수 있어 신뢰성과 정밀성이 높은 볼트액션을 구현하고 있다. 특히 노리쇠의 움직임 만으로 탄환을 장전하는 푸쉬 피드(push feed) 방식으로 인하여 단순한 구조로 생산이 용이해졌을 뿐만 아니라 운용과 정비도 편해졌다. 또한 다양한 탄종을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다만 같은 볼트액션이라도 .308 윈체스터(7.62mm NATO탄의 민수 명칭) 이하의 탄환에는 쇼트 액션을, .30-06탄 이상의 강력한 매그넘 탄환들은 대부분 롱액션을 사용한다.
총기의 정확성은 MOA로 표시한다. 1 MOA는 통상 100야드에서 1인치 내에 탄착군이 형성된다는 의미로, 100m로 환산하면 약 2.9cm 이내에 탄착군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MOA는 총기 자체가 얼마나 정밀히 가공되어 있냐에 좌우되지만, 탄환에도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통상 군용 소총은 4~6 MOA 정도의 정밀성을 갖는데, 일례로 M16A4 소총의 경우 4.5 MOA로 알려진다. 저격총의 경우 통상 1~3 MOA 정도이다. 레밍턴 700의 정밀성은 1 MOA로 알려지는데 실제로는 1 MOA이하로 평가되며, 어떤 탄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정밀도가 차이가 나기도 한다. 좀 더 낮은 MOA를 확보하기 위해 레밍턴 700을 바탕으로 커스텀 총기가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미 육군의 M24 저격총의 경우 통상 0.5 MOA의 명중률을 자랑한다.
방아쇠는 4파운드 무게로 격발시 날카롭게 끊기는 크리스프 트리거(crisp trigger)이다. 4파운드면 저격총 치고는 무겁다는 주장도 있으나, 미 해병대의 M40 저격총도 3.5~4 파운드 정도의 방아쇠 당김무게로 이보다 가벼우면 일반적으로 야전에서는 안전하지 않다고 평가된다. 단순한 구조의 방아쇠가 가끔 문제가 되기도 하여, 세팅을 가볍게 할 경우 오발이 나기도 한다. 한편 레밍턴 700은 방아쇠를 격발하지 않고서도 볼트에 약한 충격만 가해져도 발사되는 문제가 종종 발생하면서 레밍턴 700은 전면적인 리콜이 일어나기도 했다.
레밍턴 700의 오격발 문제를 보도한 CNBC의 탐사보도 <출처: 유튜브>
총열은 해머포징으로 가공하는 크롬몰리 강재로 만들어지는데, 스테인레스로도 만들어졌다. 초기 스테인레스 총열들은 건블루 도색을 위하여 납도금 등의 표면처리 작업 후에 도색이 되기도 했지만, 이후 모델들은 도색 없이 스테인레스 그대로 출시되었다. 총열은 약실에만 결합되어 있고 총몸에서는 떠 있는 형상이므로 소위 플루팅 배럴이 되어 그만큼 정밀도가 높아졌다. 레밍턴 700에서는 방아쇠 당김에서 격발까지 3.2밀리초가 걸렸으며, 당대 저격총 가운데 가장 빨라 정밀도는 더욱 높아졌다.
탄환은 통상 .308 탄환이 유명하며, 군에서도 오랜 기간 7.62mm NATO탄이 주력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외에도 중형 크기 이상의 소총탄이라면 거의 모든 탄종을 사용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338 라푸아 매그넘(Lapua Magnum)탄까지도 사용가능하다. 최근에는 .308탄을 대신하여 사거리가 최대 1.2km에 이르는 .300 윈체스터 매그넘 탄환을 채용한 레밍턴 700 계열들이 군용으로 채용되고 있다.
아랫총몸, 즉 프레임은 애초에 목재가 된 것이 주가 되었지만, 이후 합성소재를 사용한 프레임이 주가 되어 군과 경찰용 저격소총에서 애용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여러가지 부가장비 장착을 위해 피카티니 레일을 포함하는 금속제 프레임이 대세로 자리잡았으며, 심지어는 모델 700 택티컬 샤시 같은 모델들은 M4 카빈에서 사용하는 M16/M4 계열의 악세사리들을 모조리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미국에서 총기의 인기여부를 판가름 하는 척도는 미국의 유명 총기악세사리 회사인 맥풀(MagPul)에서 전용 악세사리를 만드느냐의 여부라고 할 수 있다. 맥풀은 레밍턴 700용 폴리머(플라스틱) 프레임을 만들고 있으며, 레밍턴 본사의 라인업에 포함되어 있다.
저자 소개
양욱 | Defense Analyst
서울대학교 법대를 거쳐 국방대학교에서 군사전략을 공부했다. 중동지역에서 군 특수부대를 훈련시키기도 했고, 아덴만 지역에서 대(對)해적 업무를 수행하는 등 민간군사기업을 경영하기도 했다. 현재는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수석연구위원 겸 WMD 대응센터장으로 재직하면서 대학에서 대테러실무를 가르치며, 합참·방위사업청, 해·공·육군 정책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본 연재인 '무기백과사전'의 총괄 에디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