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나·시라네급 호위함
냉전 시기에 대잠작전에 중점을 두고 등장한 헬기탑재 호위
개발의 역사
거함․거포주의가 중요한 2차 대전 초기에 발생한 진주만 기습은 항공모함을 이용하는 장거리 타격작전이 실제로 가능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항공모함 자체는 항공기를 탑재하고 대양에서 작전하는 플랫폼(platform)이지만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헬리콥터(helicopter)가 등장하면서 그 가치가 더 높아졌다. 2차 대전 이후 발전을 거듭한 헬기는 제자리 비행이 가능하기에 장시간 머물면서 끈질기게 잠수함을 추적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초창기에 개발된 헬기는 대부분 항속시간과 탑재량이 부족하였고 장시간 비행이 어려웠다. 따라서 헬기를 탑재하는 군함이 필요하였는데 불행히도 당시의 수상 전투함은 갑판에 각종 무장과 레이더가 가득 차 있어 헬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비행갑판을 설치하기 힘들었다.
해상자위대의 경우 창설을 준비하던 시기에 대잠전대(Hunter-Killer Group)를 계획하면서 수상 전투함에 의존하는 대잠작전의 한계성을 느끼고 있었다. 미 해군은 해상자위대의 창설을 지원하면서 대잠작전 능력을 확보하기 위한 TBM-3M/S 대잠초계기를 공여하였는데, 소형 항모에 대잠초계기를 탑재한다면 더 넓은 해역에서 효율적인 대잠작전이 가능하였다. 해상자위대는 창설 초기에 미 해군의 호위항모(escort carrier) 2척을 임차하려고 시도하였으나 미 해군의 반대로 포기하였다. 이후 1959년에 해상자위대는 대잠헬기를 탑재하는 기준배수량 8,000톤급 소형항모(CVH)를 독자적으로 개발하려고 계획하였으나 다시 중단하였다.
해상자위대는 제2차 방위력정비계획(第2次防衛力整備計画, 1962~1966년)을 추진하면서 대잠작전 능력을 확충하였고, 당시 최고의 성능을 가진 HSS-2 대잠헬기를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HSS-2 대잠헬기의 기본형인 SH-3 시 킹(Sea King) 대잠헬기는 미 해군의 항공모함에만 탑재하는 최신형 기종이며, 구축함에 탑재하는 SH-2 시 스프라이트(Sea Sprite) 대잠헬기보다 기체가 크고 장시간 작전이 가능한 장점이 있었다. 다만 대형 헬기인 관계로 구축함에 탑재하기 어려운 기종이었다.
1960년대 후반에 해상자위대는 제3차 방위력정비계획(第2次防衛力整備計画, 1967~1971년)을 추진하면서 HSS-2 대잠헬기를 호위함에 직접 탑재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였다. 규모가 작은 호위함에 대형 대잠헬기를 탑재하는 것 자체는 무리가 있었으나 해상자위대의 입장에서는 대잠헬기를 탑재하는 소형 항모의 확보를 단념한 상황에서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당시 해상자위대는 8․6함대 체제를 추진하였는데 이는 효과적인 대잠작전을 위해 8척의 호위함으로 구성된 1개 호위대군(護衛隊群)에 6대의 헬기를 배치한다는 구상이었다. 6대라는 헬기의 수량은 작전 중인 헬기를 4대로 설정하고, 나머지 2대는 호위함에서 재보급, 정비를 받는다는 개념이었다. 해상자위대는 8․6함대 구상에 따라 1개 호위대군에 6대의 대잠헬기를 배치하기 위하여 3대의 헬기를 탑재하는 신형 헬기탑재 호위함(DDH, Destroyer, Helicopter) 2척을 배치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구상에 따라 해상자위대는 헬기를 탑재하는 3종류의 신형 호위함을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호위함의 선형을 검토하는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점은 함포와 비행갑판의 위치이었다. 주포는 당시 호위함의 중요한 무장이었는데 헬기와 함께 2문의 함포를 배치하려다보니 위치의 결정에 어려움이 많았다.
3가지 방안을 살펴보면 첫째는 비행갑판의 앞뒤로 함포를 배치하되 선체 내부에 격납고를 설치하는 방안, 둘째는 헬기 격납고를 선체 내부가 아닌 비행갑판에 설치하는 방안(주포는 헬기 격납고의 앞뒤에 설치), 셋째는 2문의 주포를 선수에 집중 배치하고 비행갑판과 격납고를 선미에 설치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헬기 이․착함의 안전성을 고려하여 1안과 2안은 제외되었고 결국 3안으로 결정되었다. 물론 3안으로 추진할 경우 호위함 뒤쪽의 방어력이 약해지는 단점이 있었는데, 이를 보완하고자 RIM-7 시 스패로우(Sea Sparrow) 함대공 미사일 발사기를 헬기 격납고의 위쪽에 설치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등장한 신형 헬기탑재 호위함은 1967년 7월에 기본설계를 마치고 1970년 3월부터 건조가 시작되었으며 선도함인 하루나(はるな, DDH-141)는 1973년 2월에 준공되었다. 하루나급 호위함은 2척이 건조되었으며 2개 호위대군의 기함으로 활동하였다.
하루나급을 개량하여 등장한 시라네(しらね)급 호위함은 기본적으로 하루나급과 선형이 같으나 선체가 커져 기준배수량이 5,200톤으로 증가하였다. 하루나급과 비교할 때 시라네급은 1970년대 당시 보급되기 시작한 함정탑재 지휘통제체계(C4I), Link-11 데이터링크(Datalink), 수동형 대잠전투체계, 대함미사일방어체계(시 스패로우, CIWS), 견인식 소나(sonar)를 탑재한 점이 특징이다. 시라네급은 2척이 건조되었으며 해상자위대가 8․6함대 체제를 8․8함대로 확대하면서 4개 호위대군을 편성하자 4척의 하루나급, 시라네급 호위함(DDH)은 각 호위대군의 기함을 담당하였다.
3대의 대형 대잠헬기를 탑재하는 호위함은 다른 나라에서도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며 이탈리아 해군의 안드레아 도리아(Andrea Doria, 기준배수량 7,300톤, 헬기 4대)급 순양함 2척이 유일한데, 일본 해상자위대는 비슷한 규모의 함선을 순양함이 아닌 호위함(구축함)으로 분류하고 있다.
특징
선체
건조 당시 하루나급의 기준배수량은 4,700톤으로 2차 대전의 기준으로는 순양함에 해당하는 대형 전투함이었다. 해상자위대는 전통적으로 평갑판 선형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하루나급의 경우에도 평갑판을 채택하고 있다. 대형 선체의 앞쪽 1/3은 2문의 함포와 ASROC 대잠어뢰발사기를 배치하고 중간 1/3은 함교 구조물과 헬기 격납고가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선미 방향의 1/3은 대형 비행갑판이 자리 잡고 있으며, 2대의 헬기가 이착함할 수 있다. 헬기를 탑재하기 위해 대형 격납고를 설치하면서 선체의 길이에 비해 폭이 좀 넓은 편이며 파도가 심할 때 헬기가 안전하게 이․착함할 수 있도록 선체 아래에 핀 안정기(Fin Stabilizer)가 설치되어 있다. 함교 구조물은 3층 구조이며 함교, 연돌과 격납고가 하나로 이어져 있고 갑판에 다른 구조물이 전혀 없다.
시라네급은 기본적으로 하루나급과 같은 선체를 사용하지만 각종 센서와 무장을 추가함에 따라 선체를 6 m 연장하였다. 그리고 함교 구조물도 대형화되어 4층 구조로 변경되었다.
기관
미 해군의 스프루언스(Spruance)급 구축함이 등장하기 이전에 건조가 시작된 하루나급 호위함은 당시 수상전투함의 표준적인 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증기터빈(steam turbine)을 채택하고 있다. 보일러(boiler)에서 발생하는 고압 증기는 증기터빈(각 35,000마력)을 회전시킨다. 증기터빈은 추진축을 거쳐 대형 프로펠러를 회전시키는 2축 추진방식이다. 군함이니만큼 보일러, 증기터빈, 추진축과 프로펠러는 모두 좌우 독립적으로 배치되어 있어 침수 피해에 대비하고 있다.
전투체계/센서(sensor)
하루나급의 센서는 앞서 등장한 타카츠키(たかつき)급 호위함과 유사하며 OPS-11B 대공탐색 레이더, OPS-17 대수상탐색 레이더, NOLR-5 ESM(Electronic Support Measures, 전자전지원장비)을 탑재하고 있다. 대잠작전의 핵심장비는 선수(bow)에 탑재한 OQS-3 소나이다. 하루나급은 원래 OQS-101 저주파 소나, 가변심도 소나를 탑재할 계획이었으나 건조 단계에서 취소되어 대형 전투함으로는 소나 장비가 빈약한 편이다.
개량형인 시라네급은 소나가 강화되었는데 시라네함은 SQS-35(J) 가변심도 소나, 구라마(くらま)함은 SQR-18A TACTASS 견인식 소나를 탑재한다. 그리고 일본에서 개발한 OYQ-101 ASWDS(Anti-Submarine Warfare Direction System)을 탑재하여 각종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 한편 시라네급은 대잠능력 및 방공능력의 강화와 더불어 OYQ-3 TDPS (Tactical Data Processing System, 전술정보처리체계)를 탑재하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시라네급은 해상자위대 최초로 전술정보처리체계와 Link-11 데이터링크를 탑재한 호위함이다. 그리고 대공탐색 레이더도 OPS-12 3차원 레이더로 개량되었다.
무장
전통적으로 해상자위대는 함포 무장을 상당히 중요시하며, 하루나급의 경우에도 무겁지만 발사속도가 빠른 73식 54구경 5인치(127 mm) 단장 속사포를 72식 사격통제장치와 함께 탑재하고 있다. 당시 호위함의 5인치 함포는 타타(Tartar) 함대공 미사일을 보조하는 중요한 무장이었다. 함포의 수량은 1문과 2문을 검토하였으나 결국 2문으로 결정되었다.
대잠작전을 위해 대잠헬기를 운용하면서 공격 무장으로 74식 ASROC(Anti-Submarine ROCket) 발사기를 함교 앞에 탑재하며, 68식 3연장 경어뢰 발사관을 함교 옆에 설치하고 있다.
하루나급은 대잠무장에만 중점을 두어 대공방어 무장이 없었으며 성능개량 이후 대공방어 무장이 추가로 탑재되었다. 시라네급부터는 대공방어를 위해 RIM-7 시 스패로우 발사기를 탑재하였다. 그리고 시라네급 2번함인 구라마함은 해상자위대 최초로 근접방어무기(CIWS)인 페일랭스 20 mm 기관포를 탑재하였다.
대잠헬기
하루나급 호위함의 핵심은 3대의 대잠헬기이며 2대가 이․착함할 수 있는 대형 비행갑판(길이 50m, 폭 17 m)을 확보하고 있다. 다만 2대가 동시에 이․착함할 수는 없으며 시간 차이를 두고 연속으로 이․착함한다. 대형 격납고에는 3대의 대잠헬기를 동시에 격납할 수 있으며 헬기의 정비작업도 가능하다. 탑재하는 기종은 HSS-2B 시 킹을 거쳐 현재는 최신형 SH-60J 시 호크(Sea Hawk)를 탑재한다. 그리고 하루나/사라네급은 대잠작전에 중점을 두고 건조되어 MH-53E 대형 소해헬기는 탑재하지 못한다.
성능개량
당초 하루나급 호위함은 RIM-7 시 스패로우 함대공 미사일, 팰랭크스 20 mm 근접방어 기관포, 지휘통제체계(C4I), 사격통제장비, OPS-20 항해 레이더 등을 탑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장비는 나중에 등장한 시라네급 호위함에서 탑재가 시작되었으며, 특히 하루나급은 전술정보처리체계(NTDS, Naval Tactical Data System)를 중심으로 하는 지휘통제체계가 없어 약점으로 지적되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1981~1982년에 걸쳐 하루나급 호위함은 대규모 성능개량이 실시되었으며 NTDS, Link-11 데이터링크, 레이더 및 전자전장비 교체, 방공능력 강화를 실시하였다.
동급함
하루나급(총 2척)
시라네급(총 2척)
운용 현황
모두 4척이 건조된 하루나/사라네급은 4개 호위대군의 기함으로 취역하여 일선에서 활동하였다. 기준배수량 5,000톤급 호위함에서 3대의 대잠헬기를 운용한다는 점은 실전배치 당시 상당히 획기적인 특징이었으며 현재까지도 비슷한 사례가 거의 없는 일본 특유의 작전개념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5년간 현역에서 활동한 하루나/시라네급은 항모형 호위함인 휴가(ひゅうが)/이즈모(いずも)급이 취역하면서 순차적으로 퇴역하였다.
시라네급의 선도함인 시라네(DDH-144)함은 2009년 12월 14일에 요코스카(横須賀)기지에서 전투정보센터(CIC)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주요 지휘통제체계가 모두 소실되었다. 해상자위대는 심하게 손상된 시라네함을 복구하려면 많은 비용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그대로 퇴역시키고 당시 퇴역할 예정이던 하루나함의 퇴역을 미루고 수명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였다. 그러나 하루나함 선체의 노후화를 감안하여 하루나함의 CIC 부분을 절단하여 시라네함에 설치하는 방식으로 수리하였다. 수리 이후 시라네함은 6년간 더 활동한 다음 2015년에 퇴역하였다. 시라네함은 퇴역 후에 2017년 3월까지 표적함으로 개장을 마치고 자위대가 개발한 XASM-3 신형 공대함미사일의 발사시험에서 표적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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