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천마(K-SAM, Korean Surface to Air Missile system, 天馬)는 1980년대 한국군 방공의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해 국방과학연구소(ADD, Agency for Defense Development)와 방위산업체 등이 약 11년 동안 개발해 1999년부터 전력화하기 시작한 최초의 국산 방공유도무기다.
북한은 이미 1970년대부터 전투기의 저고도 침투 능력과 전자전 능력을 향상시켰으며, 무장 헬리콥터의 원거리 공격 능력도 강화했다. 이는 아군의 야전기동부대에 큰 위협 요소로 부각되었고, 아군의 방공체계 강화는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육군은 고도 5km, 사거리 10km에 이르는 공역(空域) 방어를 위한 총체적인 방공 개념을 정립하기 시작했다. 20mm 발칸포를 비롯해 30mm 대공포, 휴대용 지대공 유도무기(PSAM, Portable Surface to Air Missile system) 및 단거리 지대공 유도무기(SAM) 체계를 혼합 편성한다는 것이 그 요점이었다.
육군은 사거리 3~5km의 휴대용 지대공 유도무기(PSAM)를 우선 보유할 수 있기를 희망했지만, 당시 우리나라 연구개발 기술 수준(휴대용 지대공 유도무기 개발이 더 어렵다)을 감안해 단거리 지대공 유도무기(SAM) 개발이 현실적으로 더 적합하다는 결론이 나오자 1985년에 유도탄을 좌우 4발씩 모두 8기 장착·발사할 수 있는 형태의 단거리 지대공 유도무기를 연구개발해달라는 소요를 합참에 제기했다.
이때 육군이 요구한 형태와 성능은 외형상으로는 지금의 천마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제시된 작전운용성능(ROC, Required Operational Capability)에는 유도탄의 복합유도방식뿐만 아니라 광학추적장치(Electro Optical Tracking System), 대공 및 대전차 공격을 위한 이중 목적의 탄두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스위스의 ADATS, 프랑스의 크로탈(Crotale)-NG, 독일·프랑스 합작인 롤랜드(Roland) 등 당시 첨단으로 꼽히던 단거리 지대공 유도무기들의 장점을 거의 다 포함하는 것이었다.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국방과학연구소로서는 이 요구를 모두 수용하기 어려웠다. 20여 가지가 넘는 장비·장치 가운데 특히 유도탄의 경우, 광학추적장치가 적용되는 사거리 10km급의 단거리 지대공 유도무기를 개발 운용하는 사례가 세계적으로도 없는 데다 설사 그렇게 개발한다 해도 좌우 2기씩 4기 탑재하는 것이 적절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8기를 장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소형화해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유도탄 내에 들어갈 탐색기의 크기를 그렇게 작게 만들 수는 없었다. 또 유도탄 적외선 돔(IR Dome)이 비행하는 유도탄의 항력을 증대시킬 것이므로 적정의 비행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유도탄을 오히려 더 크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8기의 유도탄 탑재’를 포기할 것도 아니어서 국방과학연구소는 연구에 들어가기에 앞서 1987년 12월 합참과 육군본부 등에 작전운용능력(ROC) 수정 건의안을 제출했다. 여기에는 기후 조건에 따라 추적 성능이 달라져 전천후 작전 수행이 곤란한 광학추적장치 대신 시선지령유도방식(CLOS, Command to the Line of Sight)의 추적 레이더를 채택해줄 것, 이 경우 대전차 작전이 사실상 어려우므로 이중탄두를 사용하는 대전차 임무를 삭제해줄 것 등의 내용이 포함되었고, 국방부는 1988년에 이를 승인했다.
천마는 이듬해인 1989년 7월부터 선행개발에 들어감으로써 비로소 개발이 본격화되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유도탄을 비롯한 사격통제장치, 발사 터렛(Launcher Turret), 탑재차량 등은 국내에서 독자개발하기로 결정하고, 국내 개발 경험과 기술이 미흡한 탐지·추적장치는 기술이전에 의한 국내 생산을 목표로 해외에서 도입하기로 하고 해외 도입 업체를 프랑스의 톰슨 CSF(현재의 탈레스)로 선정했다.
1993년 12월까지 천마의 선행개발에 대한 시험평가 결과, 탐지 레이더의 근거리 및 저속 헬기 탐지 성능이 다소 미흡하고 영하 30도 아래로 내려가는 저온 환경에서 체계 작동 준비시간이 과다하게 소요되는 등의 보완사항들이 도출되기는 했지만, 유도탄 명중률이 82%로 나타나는 등 군에서 요구한 대부분의 성능을 만족시켰다.
1994년 10월부터 1997년 12월까지 실용개발(체계개발) 단계에서는 시제 2문과 유도탄 20기를 제작했는데, 선행개발 단계에서 미흡하게 나타났던 부분을 보완하고 향상시킴으로써 시험평가 중 유도탄 사격시험에서 15기 모두 표적을 명중시키는 등 전 항목에서 요구도를 충족시켜 1997년 12월 합참으로부터 개발 성공을 의미하는 ‘전투사용가(可)’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연구개발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해외 기술이 적용되었던 고부가가치 품목에 대한 국산화 노력이 계속되었다. 대표적인 예로서 탐지 레이더의 경우 삼성전자(현 한화시스템)가 당시 100억 원이 넘는 개발 예산을 투자하여 1997년 2월부터 2001년 1월까지 국산화에 성공했으며, 유도탄 가격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지령수신기 역시 국방과학연구소와 LG이노텍(현 LIG넥스원)이 2003년 5월까지 개발을 완료하고 그해 양산 물량부터 적용함으로써 천마의 국산화율을 가격 기준 60%, 부품 기준 약 85%로 끌어올렸다.
특징
천마는 탐지 및 추적장치와 유도탄 8기, 사격통제장치를 단일 궤도형 장갑차량에 탑재한 집중형 유도무기다. 거리 20km, 고도 5km 이내로 들어오는 항공기 표적을 탐지·추적해 10km 이내에서 격추할 수 있는 한반도 전장 환경에서 효율성이 가장 높은 대공 유도무기체계로 평가받는다.
구성품별로 보면, 천마의 유도탄은 유도조종장치, 신관, 탄두, 구동장치, 지령수신기, 추진기관, 기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도탄이 표적 근처에 도달하면 근접신관에 의해 파괴력이 높은 집중 파편식 탄두가 폭발해 표적을 타격하게 된다.
탐지 레이더는 펄스 도플러 방식이며 분당 40회 회전하면서 360도 전 방위를 관측한다. 탐지 레이더는 이동하는 표적을 탐지해 위협평가 및 탐지 간 추적을 실시한다. 추적 레이더는 탐지 레이더가 찾아낸 표적을 추적하며, 유도탄 발사 후 유도탄 추적과 유도명령송신 기능을 수행한다. 추적 간 건물이나 산(山)에 가려 표적을 놓치게 되면 그때까지의 표적 정보를 바탕으로 표적의 이동 방향을 예측한 후 예측된 방향에 빔을 발사해 표적을 찾는 예측 기능도 갖추고 있다.
적외선측각기는 유도탄 발사 초기에 유도탄을 추적 레이더 빔폭 안으로 유도할 때 유도탄의 위치를 탐지하는 장치이며, 주간감시카메라는 주간에만 운용하는 영상장비로 표적 주변의 영상을 제공한다.
구성품별로 보면, 천마의 유도탄은 유도조종장치, 신관, 탄두, 구동장치, 지령수신기, 추진기관, 기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도탄이 표적 근처에 도달하면 근접신관에 의해 파괴력이 높은 집중 파편식 탄두가 폭발해 표적을 타격하게 된다.
탐지 레이더는 펄스 도플러 방식이며 분당 40회 회전하면서 360도 전 방위를 관측한다. 탐지 레이더는 이동하는 표적을 탐지해 위협평가 및 탐지 간 추적을 실시한다. 추적 레이더는 탐지 레이더가 찾아낸 표적을 추적하며, 유도탄 발사 후 유도탄 추적과 유도명령송신 기능을 수행한다. 추적 간 건물이나 산(山)에 가려 표적을 놓치게 되면 그때까지의 표적 정보를 바탕으로 표적의 이동 방향을 예측한 후 예측된 방향에 빔을 발사해 표적을 찾는 예측 기능도 갖추고 있다.
적외선측각기는 유도탄 발사 초기에 유도탄을 추적 레이더 빔폭 안으로 유도할 때 유도탄의 위치를 탐지하는 장치이며, 주간감시카메라는 주간에만 운용하는 영상장비로 표적 주변의 영상을 제공한다.
일반적으로 유도탄을 표적 방향 근처로만 발사하면 유도탄이 알아서 목표물을 추적, 명중시키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천마와 같은 지령유도방식에 따라 유도되는 유도탄은 발사 초기에 추적 가능한 각도(범위) 안에 반드시 들어가야만 한다.
천마에서 발사된 유도탄은 발사관을 이탈한 직후 곧바로 추적 레이더가 방사하는 빔 폭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추적 레이더 옆에 장착된 적외선 측각기를 가동시켜 유도탄이 추적 레이더 빔 폭 안으로 들어가도록 0.3~2.5초 동안 제어해줘야 한다. 이어 유도탄이 추적 레이더 빔 폭 안에 들어오는 그 시점부터 표적을 격추할 때까지 추적 레이더를 이용해 유도탄을 유도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천마는 발사점에서 추적 레이더를 통해 유도탄과 표적이 일직선상(시선축)에 위치하도록 유도하는 시선지령유도방식(CLOS)을 적용한다. 유도탄과 표적이 추적 레이더의 정중앙에 일직선을 이루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측정하고, 또 그렇게 일치하도록 유도탄에 지령을 내려 비행시킨다. 사격통제장치에서 모든 유도 데이터를 산출하고 명령하므로 유도탄은 지령에 의해 마치 무선조종 비행기처럼 움직이게 된다.
시선지령유도방식은 장거리에서는 오차가 크기 때문에 비교적 사거리가 짧은 유도탄에 많이 적용되는데, 비교적 저렴하고 단순한 반면 명중될 때까지 계속 발사체로부터 유도되어야 한다.
천마의 차체는 소구경 포탄이나 파편으로부터 승무원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장갑 구조로 새롭게 개발, 제작되었으며 한국과 같은 산악지형에서도 야전군 기동부대와 동시 기동성을 보유할 수 있도록 최고 시속 60km의 속도로 비행하고 10초 안에 30km까지 가속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운용 현황
천마는 공식적으로 1989년부터 1993년까지 선행개발을, 1994년부터 1997년까지 실용개발(체계개발)을 마쳤다. 그런데 1995년부터 1999년까지 포대 단위 물량의 시제를 추가로 제작해 수도권에 배치한 후 정식으로 양산된 물량을 배치하는 특이한 연구개발 사례를 보였다. 시제를 전력화한다는 것은 초유의 일이었다. 이는 개발 과정을 분석한 육군이 천마를 조기에 전력화해도 충분할 만큼 그 성능을 매우 높게 평가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무기체계 규격화까지 마친 후 정식 절차에 의해 진행되는 양산은 1999년 11월 24일에 시작되어 2년 5개월여가 지난 2001년 5월 초 양산 1호기가 출고되었다. 마침 2002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의 ‘안전 개최’를 위해 최대 지원을 폈던 군은 1호기를 지체 없이 천마대대(2001년 12월 1일 창설)에 보내 서울의 방공태세를 강화시키는 등 전력화에 박차를 가했다.
방위사업청은 2011년 12월 19일 국방기술품질원, 육군, 공군, 업체 관계자 등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천마사업종결회의를 가졌다. 이때까지 100여 문의 천마가 육군·공군의 방공부대에 배치되었으며 높은 신뢰성을 확보했다고 보고되었다. 실제 천마는 야전 작전 배치 이후 2004년 10월 19일에 첫 실사격을 공개 실시한 이후 2017년 11월 22일 실시된 육군의 2017년 대공사격훈련까지 13년 동안 적기로 묘사된 표적을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100% 명중, 격추시키는 탁월한 성능으로 명성과 신뢰를 함께 쌓아왔다.
이 같은 천마 개발의 의의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무엇보다도 우선 북한의 공중 침투에 대응할 수 있는 무기체계를 독자적으로 갖추게 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즉, 그동안 취약성이 지적된 고도 5km 미만의 중·저고도 공역(空域)에 대한 방공력을 확보하여 주요 시설 보호 및 기동부대의 생존성을 크게 제고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나아가 당시 개발한 유도무기 관련 최신 기술들을 향후 유도무기 개발에 접목함으로써 현재의 신궁, 청상어, 홍상어, 천궁 등을 낳는 선도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개발 완료 시점으로 돌아가보면, 천마와 유사한 단거리 방공무기체계를 개발한 나라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이스라엘, 러시아 등 선진국들이다. 이들이 개발한 무기체계 가운데 우리보다 10여 년 앞서 전력화된 스위스의 ADATS, 프랑스의 크로탈(Crotale)-NG, 독일과 프랑스가 공동개발한 롤랜드(Roland)-Ⅲ 등과 비교할 때 천마는 성능 면에서 동등하거나 오히려 더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더욱이 가격경쟁력도 월등하다. 전력화 시기인 1999년 기준으로 천마는 체계 1문당 약 150억 원, 유도탄 1기에 2억 8,000여만 원으로 약 288억 원에 달하는 ADATS, 약 230억 원 이상인 크로탈-NG 등에 비해 80~100억 원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정치적으로도 각별한 의미를 지녔었다. 천마가 일반에게 공개된 1997년 10월 27일 시사회 당시에는 북한의 장거리 유도탄 개발로 인해 국민들이 심리적 위협감을 느끼고 있었다. 천마는 응징이 가능한 장거리 유도탄은 아니지만 우리도 유도탄 개발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자신감을 국민들에게 심어주었다.
단국대를 졸업하고 1989년 4월부터 《국방일보》 기자로 일해왔다. 육·해·공군 각급 부대를 두루 취재하며 군사적 시야를 넓혔으며, 특히 국방연구개발(R&D)과 획득 분야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다. 저서로 『무내미에는 기적이 없다』와 『한국의 어뢰 개발 비화』(공저), 『방위산업 40년 끝없는 도전의 역사』(공저)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