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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오지를 찾아서] 춘천시 북산면 대곡리-1-

바래미나 2011. 12. 19. 19:30

 

[마지막 오지를 찾아서] 춘천시 북산면 대곡리
우리나라에서 가장 조용한,‘육지 속의 섬 마을’
소양호의 수몰민 박기모 전 이상이 들려주는 마을 이야기

▲ 소양댐을 찾는 관광객들이 보지 못한 깊숙한 소양호의 풍경이 대곡리에 가면 있다.

섬이 된 마을이 있다. 춘천시 북산면 대곡리 대곡마을은 내륙의 섬이다. 여기를 섬이라 부르는 건 배로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경춘선이 개통된 마당에 춘천에 그런 오지가 있을까 싶지만 춘천 사람들도 잘 모르는 오지다.


대곡마을이 있는 북산면은 이름처럼 춘천 북쪽의 첩첩산중이다. 정확히 말하면 춘천시내에서 북동쪽이며 화천·양구·홍천 경계에 있다.


46번국도를 타고 꼬불꼬불 배후령을 넘는다. 산을 넘자 길이 좀 편해지나 싶더니 쭉 뻗은 대로를 두고 비탈진 산길로 든다. 춘천-양구 간 구도로다. 구도로에서 풍기는 어감처럼 풀이 높고 차선이 유실된 곳도 있는 소외된 길이다. 작은 나루터에서 마중 나온 이건형 이장의 보트를 타고 소양호를 가른다. 소양댐에서 보던 소양호와 다르다. 관광객의 눈길이 닿지 않는 깊숙한 안쪽 소양호다.


사람이 만든 호수지만 사람 흔적이 없다. 초록이 지배하는 곳, 물 속에도 산이 있고 물 밖에도 산이 있다. 물빛보다 파란 건 8월의 하늘이다. 호수를 가르며 달리는 보트의 속도에 바람이 머릿결을 헝클이며 장난친다. 피부에 와 닿는 바람의 촉감과 단순하면서도 섬세한 호수의 풍경이 감미롭다.


▲ 1 대곡리 사과밭에서 본 소양호. 2 들짐승의 과수원을 침입을 막기 위한 고압선. 주민들의 갈등의 도화선이기도 하다.

보트로 10분쯤 달리자 호숫가 양지바른 곳에 대곡마을이 있다. 초승달처럼 부드럽게 휘어진 해안선에 집들이 드문드문 있다. 이장은 마을의 큰 어른인 박기모(74) 전 이장댁으로 안내한다. 이장은 “박기모 어르신은 마을의 살아 있는 역사”라고 설명한다.


박 전 이장은 마을이 수몰되기 전부터 살아온 대곡리 토박이다. 소양댐이 준공된 1973년부터 2009년까지 무려 37년 동안 이장을 맡았다. 비공식 최장수 이장이라는 것이 마을사람들의 설명이다. 그는 “산으로 둘러싸여 도로를 이으려면 수백억이 드는데 가구 수가 적고 경제성도 없어서 길을 낼 수 없는 여건”이라고 한다. 호수만 건너면 46번국도가 있어 배가 유일한 왕래수단이 되었다. 대곡리 주민들은 가구당 차량 2대, 보트 1대를 가지고 있다. 마을 안에서 이용할 차량, 호수를 이동할 배, 호수 건너 나루터 앞에 세워둔 차가 있다.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배편이 없고 민박 같은 숙소가 없다. 때문에 외부 사람은 마을에 아는 사람이 있어 마중 나오지 않는 이상, 들어가기 어렵다.


수몰되기 전 130가구가 살았으나 지금은 10가구 15명의 주민이 산다. 10가구 중 토박이는 두 집이고 나머지는 도시에서 들어온 이들이다. 6가구가 이곳에서 생업을 하며 살고 있고 나머지는 수시로 드나드는 이들이다. 고기잡이와 사과·복숭아·장뇌삼이 이들의 수입원이다. 특히 장뇌삼에 신경을 많이 쓰는데, 토지가 비옥하고 산세가 험해 사람들의 접근이 어렵고 삼이 자라기 좋은 천혜의 환경이라 “대곡리 산양산삼이 효험이 있다”고 얘기한다.


▲ 고목 아래에서 수몰된 마을이 있던 소양호를 바라보는 박기모 전 이장.

마을 앞에는 아담한 섬이 있는데 중뫼산이다. 댐이 생기기 전 마을 가운데에 솟은 산이라 그리 불렀다. 한때 강원개발주식회사에서 수출 목적으로 다람쥐 3,000마리를 풀어 키워 다람쥐섬이라고도 한다. 다람쥐 사업은 실패로 끝났다. 좁은 터에 지나치게 많은 다람쥐를 풀어놓으니 생존 경쟁이 심해져 스트레스를 받은 다람쥐들이 증식이 되지 않았다.


마을은 서쪽으로 바다를 둔 듯 트여 있어 오후 내내 힘센 여름 햇살이 든다. 더군다나 물에 반사된 빛까지 더해 쳐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덥지만 과수원을 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라 한다. 저물녘이 되자 댄스곡에서 발라드로 노래가 바뀐 것처럼 풍경이 감성적으로 변한다. 짝사랑하는 남정네 앞에선 시골 처녀마냥 순식간에 하늘은 분홍으로 물든다. 핑크빛은 호수 위로 싸르르 번지며 묶여 있는 배마저도 드라마 속 한 장면으로 만들어 버린다.


박 전 이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조용한 마을”이라고 말한다. 뒤로는 첩첩 산이, 앞으로는 호수와 산이 감싸고 있어 그 어떤 소음도 이곳에 와 닿지 못한다. 멀리 춘천-양구 간 구도로가 보이지만 오래도록 보고 있어도 지나는 차가 없다. 평화로운 풍경이지만 대곡마을 사람들은 문명의 편리함에서 동떨어져 있는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산증인이 박기모 어르신이라고 입 모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