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사진--후기--

[오지여행] 봉화 구마동 큰터마을-2-

바래미나 2011. 12. 19. 19:22

 

[오지여행] 봉화 구마동 큰터마을
흐르는 계곡에 시간까지 흘려보낸 듯
십승지 중에서도 오지로 남은, 자연과 함께 사는 그곳

▲ 1 경북 봉화 소천계곡 발원지에서 멀지 않은 첩첩산중 심산유곡에 덩그러니 안세기 옹의 집 한 채가 있다. 2 옛날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무쇠솥과 아궁이의 모습이 안세기 옹의 집에는 아직 그대로다.

주변을 한 번 죽 둘러봤다. 사방이 산으로 에워싸여 십승지 중의 한 곳이 될 수밖에 없는 지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물은 철철 넘쳐흐른다. 몸을 숨기며 농사를 부쳐 먹고 살 만했던 땅이 바로 십승지일 것이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십승지 중에서도 가장 오지에 해당하는 곳이 봉화이기도 하다. 다른 곳 대부분은 이미 개발됐거나 상당히 노출돼 십승지로서의 입지를 잃어버린 지 오래됐다.


소천면에서 큰터마을 도착 전 약 4㎞쯤 떨어진 곳에 노루목이란 곳이 있다. 노루의 목같이 급격히 좁아진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물론 노루목도 계곡 옆으로 나 있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탈출할 만한 길이 없는 외길이다. 대개 십승지는 군사·경제·사회적으로 가치가 별로 없어 발전이 없으며, 전쟁이 일어나도 군인들의 접근이 거의 없었다.


태백산 사고지가 각화산 뒤쪽에 위치
바로 인근 각화산에 있는 태백산 사고지(史庫地)만 해도 그렇다. 조선은 여러 난리를 겪으며 역사기록서가 불에 타 없어지자, 외적이 침입할 수 없는 험준한 산지를 선택해서 기록을 보존했다. 서울의 춘추관 사고 외 전국의 오지 중의 오지 4곳에 고루 안배했다. 평안도 영변의 묘향산 사고, 강원도 평창의 오대산 사고, 강화도 마니산 사고, 그리고 나머지 한 곳이 바로 봉화 각화산에 있는 태백산 사고지였다. 적도 없고 아군도 없는 오로지 산과 물, 자연만 있었던 곳이다.


폭이 10m는 족히 될 법한 계곡 양쪽 산 사면으로 과거의 영화를 아는 듯 모르는 듯 적송들이 우거져 있다. 한창 자라고 있는 애송이 적송들이다. 산 사면은 도저히 길을 낼 수 없는 경사진 비탈이다. 첩첩산중 심산유곡 그 자체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평지는 없다. 이 노부부가 깊은 오지에서 그동안 무얼 먹고 살았을까. 그래도 자식을 9명이나 반듯이 키워 결혼까지 시켰다고 한다. 


“농사랄 것도 없지. 당귀와 천궁 같은 약초와 옥수수, 고추, 감자 등을 심어 먹고 살았지. 요즘은 농사지을 사람도 없고, 쌀 두 가마면 우리 부부가 1년을 먹을 수 있어. 자식 9명을 키우려고 전국으로 장사하러 다녔지. 지금은 다 도시로 나가 살아.”


흐르는 시간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살다 지금은 세월에 시간을 맡기고 사는 노부부다. 시간이 가면 가는 대로, 오면 오는 대로 자연과 함께 지낸다. 노부부가 함께 있어 외롭지도 않고, 도시에 사는 자식들이 부럽지도 않다.


“옆집에 사는 사람이 누구인지, 이웃도 모르고 사는 그런 동네에 우리가 왜 살아. 우린 그렇게 못 살지. 사람 만나면 반가워할 줄 알아야지, 겁내고 사는 세상이 뭐가 좋아.”
큰터마을엔 안 옹 부부를 포함해서 총 3가구가 살고 있다. 각화산 방향으로 100m쯤 떨어진 곳에 다른 집이 있다. 하루 종일 있어도 사람 만나는 일이 가뭄에 콩 나듯 드물다. 다행히 큰터마을 1㎞쯤 위, 계곡 발원지가 가까운 곳에 새터마을이 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마지막 장소이기도 하다. 그곳에 안 옹의 9남매 중 유일하게 살아 있는 여동생이 있다. 그 여동생이 유일한 말벗인 것이다. 큰터마을과 새터마을에는 조그만 절까지 포함해서 총 8가구가 듬성듬성 흩어져 살고 있다.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큰터마을, 안 옹의 집엔 커다란 장독대와 나무지게, 그리고 옛날 아궁이와 무쇠솥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 옛날 우리 농촌의 정감 있는 모습이다. 그곳에서 노부부가 오손도손 자연과 함께 살고 있다. 그 옆으로, 길이로 치자면 한국에서 가장 길 법한 소천계곡이 시간과 함께 흐르고 있다. 


▲ 1 일제가 나무를 수탈해 간 흔적을 기록한 비석. 안 옹이 증언한 내용이 비석에 새겨져 있으며, 안 옹의 집에서 500m 남짓 위에 있다. 2 안세기 옹의 집 한쪽에 장작더미 옆에 지게가 가지런히 세워져 있다.

INFORMATION


교통 서울 출발인 경우 중부~영동~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풍기IC에서 빠져나와 931번과 5번·36번 도로로 이어간다. 36번 도로로 계속 달리다 현동삼거리에서 좌회전 한 뒤 고선2리에서도 좌회전 하면 이때부터 계곡 따라 외길이 계속된다. 승용차 한 대 올라갈 수 있는 꼬불꼬불한 산길로 계속 올라가면 길의 종점 부근에 큰터마을이 나온다. 새터마을은 큰터마을에서 1㎞쯤 더 올라가면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끝 지점, 집 한 채와 조그만 절이 있는 그곳이다.
봉화 구마동 큰터마을까지 대중교통으로는 접근 불가능하지만 시외버스와 택시를 탄 뒤 걸어서 가면 된다.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춘양행 버스가 하루 5차례 운행한다. 첫차가 오전 7시40분에 출발하며, 9시40분, 11시50분, 13시50분, 16시10분, 18시10분 등에 있다. 요금은 1만9,000원, 약 3시간 소요. 춘양읍에서 택시로 고선계곡 중간쯤까지 3만 원가량 한다. 그 뒤부터는 걸어서 가야 한다.
숙식(지역번호 054) 큰터마을 주변엔 식당이 없다. 계곡 하단 현동삼거리 부근에 명산휴게소(랜드와 온천)가 있다. 거의 유일한 식당이라고 보면 된다. 문의 673-9977(식사), 673-9988(숙박). 민박은 안세기 옹(672-7366)의 집에서도 한다. 


1 · 2